'놀면 뭐하니?' 그라피티 무단노출…법원 "작가에 500만원 배상"

2020년 6월6일 MBC '놀면 뭐하니?' 제45회에서 송출된 심찬양씨 그라피티 작품/사진=DLK파트너스 법률사무소 제공.

방송국이 프로그램을 송출할 때 작가의 동의 없이 촬영한 그라피티(벽에 분무기 등으로 그린 그림) 등 저작물을 노출하면 저작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62부(부장판사 이영광)는 지난 13일 그라피티 작가 심찬양씨가 MBC와 김태호 PD 등을 상대로 낸 저작권 침해 금지 등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MBC와 김 PD가 심씨에게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또 해당 방송 영상 가운데 심씨 작품이 노출된 부분을 삭제하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방영분을 송출하지 못하도록 했다.

해당 그라피티는 2020년 5월30일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 제44회에서 송출됐다. 같은 해 6월6일 제45회에서 노출됐다. MBC는 해당 방영분을 포털사이트나 SNS에 게시했다.

재판부는 "MBC와 김 PD는 저작물을 배경으로 촬영해 프로그램을 제작한 경험이 많다. 저작물을 촬영해 방송하기 전 저작권자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그런데도 MBC와 김 PD는 이 사건에서 저작권자가 누구인지 등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채 프로그램을 제작한 과실이 있다"고 밝혔다.

또 "프로그램에서 이 사건 저작물(심씨 그라피티) 전체가 온전히 인식될 수 있도록 방영됐다"며 "출연자와 함께 심씨 그라피티 전체가 화면에 보이게 촬영되는 등 그라피티 인용 의도가 있었다고 보인다. 그라피티가 배경으로 쓰인 만큼 중요도가 낮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MBC와 김 PD가 심씨 그라피티를 '부수적 복제물'로 이용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는 뜻이다. '저작권법' 제35조의3은 '녹화 과정에서 보이는 저작물이 주된 촬영 대상에 부수적으로 포함되는 경우에는 이를 복제·공중송신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아울러 '이용된 저작물의 이용 목적 등에 비춰 저작권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는 경우 그러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MBC와 김 PD가 그라피티를 촬영·방송한 방식이 심씨 이익을 침해했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영상이 불특정 다수에게 지속해서 제공된다는 점에서 파급력이 매우 크다"며 "해당 그라피티가 프로그램에서 차지하는 양적, 질적 비중과 중요성이 가볍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심씨 소송을 대리한 DLK파트너스 법률사무소(백세희·김기현 변호사)는 "저작물을 만들어 수익을 올리는 방송사가 정작 개인 창작자의 저작권을 무시한 처사는 공정치 못하다"며 "제정된 지 얼마 안 된 '저작권법' 제35조의3을 적용한 이번 판례는 판결례로서도 유의미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거대 지상파 방송사가 올린 수익에 비해 심씨 손해로 인정된 액수가 적은 것은 아쉽다. 국내 저작권침해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경향이 반영된 것"이라며 "국제적으로 저명한 아티스트인 원고가 제기한 문제의식이 공론화되면 인식 개선에 일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정경훈 기자 straight@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