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은의 어떤 날] 내게 맞는 쉼
[양희은의 어떤 날]
양희은 | 가수
많은 이들이 길에 나선 10월, 고속도로 정체 소식이 들려온다. 9월 말부터 개천절까지 또 10월 첫 주말 끼고 둘째주 초까지 다들 어디론가로 떠난 모양이다. 공항소식도 만만찮았다. 모처럼 제주행을 계획했다는 이웃도 비행기표 구하기 힘들었단다. 나 역시 지지난 주말과 지난 주말 정선과 인제 한계령에서 공연이 있어 아예 새벽에 출발했다. 신새벽에 문 여는 식당도 모르니 아예 삼시세끼 먹을 도시락을 준비하느라 5시에 일어나서 머리손질과 기초화장을 한 뒤(마무리는 차 안에서 하기로…) 전날 저녁에 만든 호박나물, 멸치볶음, 달걀말이랑 싸고 슴슴한 고명 넣고 비빈 유부초밥 50개를 만든 후 창난젓과 총각김치로 마감했다. 그렇지만 부족한 듯해서 땅콩버터바나나샌드위치 6개를 더해 이건 뭐 일하러 가기보다 새참 중참 이고지고 배달가는 아줌마 모양새였다. 정선에서는 ‘한국 치유관광 페스타’ 개막식이 열려 박미선과 둘이 힐링토크콘서트를 진행했는데 워낙 일찍 도착한 터라 큼지막한 원형식탁에서 이른 점심을 나누어 먹고, 케이블카를 타고 살짝 물들기 시작하는 울울창창한 숲을 내려다보며, 우리부터 즐겼다. 행사 시작하면서 한국관광공사와 문화체육관광부가 뽑은 ‘올해의 웰니스 관광도시’로 정선이 뽑혔다는 설명과 더불어 웰니스란 웰빙+해피니스+피트니스의 합성어라는 걸 알았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회적 관계도 원만하게 잘 살아간다는 뜻이란다. 쉽지 않은 말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두 행복하게 잘 살자고 일하지만 스트레스 받으며 정작 자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 건강은 돌보지 않고 죽자고 자신을 밀어붙인다. 돈 벌어야 행복한 삶이 보장된다는 믿음은 깨지고 저당 잡혔던 미래의 웰니스는 어느 날 갑자기 건강과 함께 무너져 내린다. 웰니스 프로그램은 뷰티·스파/힐링·명상/한방/자연·숲치유 등으로 운영되는데 사람들은 자연·숲치유 쪽에 스티커를 제일 많이 붙였다. 그 다음이 뷰티·스파… 나 역시 자연·숲치유 쪽이다. 나머지 3개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혼자서도 숲을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 누군가에게 추천을 한다면 한방 쪽을 권하고 싶다. 일상의 밥과 음료 등 내게 맞는 것을 공부하고 우리 땅에서 나는 것으로 먹고 마시기를 학습하면 최고의 보양섭생이 될 것을 믿기 때문이다. 충전을 하더라도 30~40% 정도 남아있을 때 해야 효율적이지 완전 방전이 된 뒤엔 시간도 많이 필요하다. 어느 날 갑자기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면서 누구라도 만나기 싫고 혼자만 있고 싶고 지나치면 불면과 우울이 우리를 억누를 때 과연 어떻게 해야 그 수렁을 벗어날 수 있는 걸까? 내게 맞는 온전한 쉼은 무엇일까? 내 인생 최대의 고비는 언제였지? 그때 나는 어떻게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나? 여러 가지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도 되었다.
바람결이 바뀌면서 휴일 이른 아침의 대중탕목욕은 내게는 최고의 힐링이며 한 주를 무탈하게 보낸 뒤 누리는 여유로움이다. 온탕의 따뜻함에 마음까지도 노골노골해진다. 오랜 단골이랑 제트탕 안에서 마주 본다. “보통 때 같으면 사람들 많을 시간인데 다들 강원도로 갔나? 거긴 하기사 산도 바다도 다 있으니까… 제가 예순다섯인데 어디 떠나면 네다섯 시간씩 운전하고 그러고 나면 온 삭신이 쑤시고 아파요. 난 우리 동네에 이 목욕탕이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 여기가 최고예요. 목욕하고 집에 가서 맛있는 거 해먹고 쉬는 것 이상 없다니까요? 그리고 요새 사람들이 그렇게 일본으로 간다네요. 엔화가 싸니까… 젊은 아이들은 몽골로도 많이 간다는데 거긴 왜 갈까요? 무얼 보러 갈까요? 궁금해! 가보셨지요? 여행 많이 다니시잖아요?” 자분자분 힘 안들이고 얘기가 끝이 안 난다. 이런 만남도 내게는 즐겁다. 사람마다 행복, 온전한 쉼의 기준이 다를 테니 내가 쉰다 할 때 그건 어떤 것일까? 생각해볼 일이다.
독일에서 친구가 아들, 딸 데리고 가족여행을 나왔다. 애들 어릴 때부터 한해 두어번씩 데리고 오더니 우리 말과 글을 잘하고 온갖 케이(K)소식을 재미있어 하며 서른 넘은 나이에도 엄마 따라오는 게 예뻐 보였다. 이번 한국여행에서 신기하게 배운 건 삶은 달걀 깨기였는데 자기네는 톡 하고 깨뜨린 뒤 하나씩 껍질조각을 뜯는데, “전주에서 어떤 언니가 식탁에 탁 친 뒤, 손바닥으로 누르면서 굴리니까 껍질 벗기기가 쉬워서 너무 놀라웠어요. 독일 가서 친구들에게 가르쳐줄 거예요.” 친구네는 전주, 제주, 차를 빌려서 남해부터 해서 동해안을 남쪽에서 쭉 훑어 재래시장을 양껏 구경하고 해수탕도 찜질방도 즐길 거라고 했다. 9월 중순에서 11월 중순까지 느긋하게 즐긴다. 남들은 죄 밖으로 남의 나라로 가는데 내 친구는 늘 우리나라로 온다. 와서는 석 달 남짓 머물다 간다. 느긋한 쉼이다. 제대로 쉬었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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