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윤석열式 `제3의 길`이 필요하다

2023. 10. 2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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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평택이 무너지나, 아산이 깨어지나.' 흔히들 끝장을 보기 위한 싸움을 일컫는 속담이다. 얼핏 평택과 아산 사람들의 싸움으로 생각하지만 실상은 일본군과 청나라 군인의 전쟁이다.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한양의 일본군은 남하하여 평택에, 청나라 해군은 아산 백석포에 착륙해 대치했다. 그리고 성환에서 전투를 벌였다. 청일전쟁이다. 평택과 아산의 농민들은 바쁜 농사철에 동원되어 일본군과 청군의 식사준비, 빨래, 수송 등의 노역을 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희생당한 사람들도 많았다.

130년 전의 청일전쟁을 떠올린 이유는 지금도 그 후유증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과 중국은 직접 대립하지는 않고 있지만 우리 스스로 일본 편과 중국 편으로 나눠 갈등을 벌이고 있다. 지난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몽'을 언급하며,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 나라'로 추켜세운 것, 윤석열 대통령이 광복절에 일본을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협력 파트너'라고 부른 것은 중국과 일본을 보는 입장 차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최근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과 광주 정율성 공원 건립을 둘러싼 논란 역시 이 연장선에 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국민통합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인사와 정책에서는 국민통합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여 왔다. 얼마 전 임명된 유인촌 문화체육부 장관이나 신원식 국방부 장관, 또 자진 사퇴한 김행 여성가족부장관 후보자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들은 보수 중에서도 오른쪽에 위치한 사람들이다. 이러한 인사는 대통령이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갸우뚱하게 만든다.

열흘 전 끝난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엘로우 카드'였다. 민주당 후보가 17.15%포인트 차이로 국민의힘 후보를 누른 것은 한마디로 야당의 정권심판론이 효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3년 전 국민의힘 구청장을 뽑았던 국민들이 왜 등을 돌렸는지 곱씹어야 한다.

지난 20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에서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부정평가는 61%에 달했다. 반면 긍정평가는 30%에 그쳤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년 4월 총선이 치러진다면 그 결과는 강서구청장 선거와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자칫 윤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를 제대로 펼치기 전에 레임덕의 순간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지금부터 내년 총선까지 6개월 기간은 정권의 명운을 결정짓는 시기이다.

만약 윤 대통령이 변화를 도모한다면 1990년대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을 참고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1993년부터 2000년까지 미국 경제의 호황기를 이끌었던 클린턴 대통령을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It's the economy, stupid)'라는 캐츠프레이즈로 많이들 기억한다. 하지만 그의 경제정책은 '삼각화'(Tri-angulation)로 요약된다. 좌-우 직선 대립을 뛰어넘는 중간 꼭지점을 지향하는 실용주의 정책이다. 민주당의 전통적 큰 정부를 버리고, 세금감면과 성장을 중시하는 공화당의 정책을 채택했다.

그렇기에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섹스스캔들에도 불구, 그는 재선에 성공했으며 퇴임 당시 지지율은 66%에 달했다. 토니 블레어의 영국 노동당은 이를 모방, '제3의 길'이라고 부르며 1997년부터 11년 장기집권하기도 했다. 클린턴의 '삼각화'나 블레어의 '제3의 길'은 모두 좌-우 개념을 버리는 실용주의 정책의 대명사이다. 이념을 버려야 하고, 목표는 중도층의 마음잡기라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코로나19 이후 넘치는 유동성은 금리인상을 촉발했고, 이는 국민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은 완전고용에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며 금리를 인상하지만, 우리는 불황속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여기에 2년간 계속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최근 점화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은 우리 경제에 지속적인 불안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의 정치적 지향점과 지향할 가치에서 중요한 게 이념"이라는 대통령의 말은 공허하게 들린다. 지금 중요한 것은 중산층에게 어필하는 실용주의 모습이다.

외교 역시 '제3의 길'이 필요한 상황이다. 중국과 일본은 모두 경제 협력 파트너이고 동아시아의 번영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하는 대상국이다. 중국과 미국이라는 초강국의 갈등과 압박이 심해지더라도 우리만의 '삼각점'을 지향해야 한다. 외세와 이념의 극한 대립 속에 130년 전 조선의 민초들처럼 힘없이 희생당하는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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