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포커스] `車·항공` 시뮬레이션으로 생산성 ↑ … 135조 시장 열린다
비용절감·출시시간 단축 기대
현대차, 자율생산 팩토리 구축
관계자 "5년내 제조분야서 성과"
'메타버스 붐은 꺼졌나'.
팬데믹 사태로 비대면 경제가 부상하면서 디지털로 구현된 가상의 세계인 '메타버스'가 한동안 화제에 올랐지만, 엔데믹과 함께 '회의론'이 대두했다. 생성형 AI(인공지능)에 관심이 쏠리고, 킬러 서비스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타버스는 산업현장에 파고들며 또 다른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기술 '집약창'인 차세대 컴퓨팅 플랫폼으로 부상하고 있다. 생성형 AI의 부상도 메타버스 현실화를 앞당기고 있다. ◇ "메타버스 이제부터 시작"…산업 분야 기회 무궁무진 =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덜해진 상황에도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관련 기술 개발과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글로벌 전략 컨설팅사 맥킨지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메타버스 분야 투자는 1200억달러(약 162조3600억원)를 넘어섰다. 이를 바탕으로 5년 내에 기업 매출의 15% 이상은 메타버스를 통해 나올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메타버스는 가상·추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현실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다. 애플 '비전프로', 메타 '메타퀘스트3' 등 글로벌 빅테크들이 MR(혼합현실) 헤드셋을 속속 내놓으며 응용서비스가 빠르게 늘어날 전망이다. 애플은 비전프로를 선보이며 '공간 컴퓨팅'이란 새 개념도 들고 나왔다. 현재의 인터넷은 2D 콘텐츠로 구성됐지만, 미래의 인터넷 환경은 AI와 IoT(사물인터넷), NFT(대체불가토큰), XR(확장현실), 5G·6G 등을 바탕으로 완전히 다른 모습을 띨 전망이다.
메타버스는 특히 단순히 게임이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개념에 머물지 않고, 굵직한 산업 분야를 포함해 우리 삶에 더 크게 침투할 것으로 예상된다. 쇼핑, 게임 등 소비자용 메타버스는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기업용·산업용은 다소 낯선 분야다. 기업용 메타버스의 경우 가상 업무공간과 생산성 향상 도구 등 몰입형 비즈니스 협업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애플이 특히 강조하고 있는 분야다. 지난해 10월 메타와 MS(마이크로소프트)가 손잡고 내놓은 '메타퀘스트 프로'는 업무 생산성 중심 기기로 호응을 얻고 있다.
◇ 산업용 메타버스, XR로 문제 진단하고 시뮬레이션으로 생산성 UP =
산업용 메타버스는 실제 산업 현장에서 메타버스를 통해 비용 절감, 출시 시간 단축 등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가령 메타버스를 통해 설계·제조 현장에서 디지털과 실제 환경을 접목해 시제품을 검증하고 원격으로 실시간 협업을 할 수 있다. 해외에 수출한 기계에서 작동 불량이 발생하면 이메일이나 화상통화를 통해 문제를 진단하거나 직접 현지 출장을 가야 했지만, 산업용 메타버스가 구현되면 전문가가 실시간으로 XR을 통해 문제를 진단할 수 있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에 따르면, 산업용 메타버스 시장은 2030년까지 기업용·소비자용 시장의 2배 이상인 1000억달러(약 135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산업용 메타버스를 현장에 속속 도입하고 있다. BMW는 다른 곳에 떨어져 있는 기획담당자나 엔지니어, 설비 담당자 등이 메타버스 환경에서 디자인부터 기획, 설비, 생산공정 등 최적화에 협업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BMW는 전세계 31개 공장에서 5만7000여명의 직원들이 40개 차량의 모델을 생산한다. 각 모델은 100개 이상의 옵션이 있어 총 2100가지 이상의 조립 방식이 존재한다. 이같이 복잡한 공정에 메타버스를 도입함으로써 효율성을 30% 가량 높였다. 도요타는 사내 커뮤니케이션과 협업을 위해 재택·원격 근무자를 위한 메타버스 오피스를 도입했다.
지멘스는 베이징 신규 공장 건축 시 디자인, 모델, 테스트, 건축 과정 전반에서 메타버스를 통해 기계와 노동자, 로봇, 재료의 최적화 시뮬레이션을 구현했다. 이를 통해 기존 공장보다 생산성을 20% 이상 높였다. 이와 함께 지멘스는 자사 공장이 있는 독일 지멘스슈타트 지역을 메타버스로 구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산업용 메타버스의 성장 기회에 주목해 유럽·미국·중국·동남아시아 연구소에 총 20억 유로(약 2조9000억원)를 투입했하는 등 투자를 쏟고 있다.
항공 분야에서 에어버스와 보잉은 항공기 설계검증과 디자인 공정에 산업 메타버스를 도입하고 있다. 보잉은 짧은 시간에 개발자가 협업해야 하는 맞춤형 제품 생산 방식에 메타버스를 도입해 보잉777기의 설계 오류 90%, 개발 기간 50%를 개선했다.
◇ 메타버스 스마트팩토리 만드는 현대차 =
국내에서는 현대자동차가 메타버스 도입에 적극적이다. 메타버스와 AI, 로보틱스 등을 기반으로 자동차 자율생산을 하는 메타버스 스마트팩토리를 구축하고 있다. 지난 2020년 울산공장에 최초로 시범 적용한 데 이어 올해부터 미국, 싱가포르, 울산 신축 공장으로 확산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 전기차 공장 이름을 '메타플랜트'로 짓기도 했다. 현대차 울산공장에 제조 메타버스 플랫폼 실증을 한 산업용 메타버스 기술기업 슈타겐의 김원현 대표는 "메타버스는 로블록스, 제페토 같은 좁은 개념의 기술이 아니다"라며 "산업현장에서 시뮬레이션을 통한 최적화뿐 아니라 문제 해결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공시장도 움직이고 있다. 국제형사경찰기구인 인터폴은 지난해 10월부터 전세계 국제경찰 간 협업을 위해 메타버스 인터폴 사무국을 운영하고 있다. 두바이의 아즈만 알 누아이마이아 경찰서는 메타버스 시스템을 통해 경찰관의 행정업무를 돕고 있다. 취약계층 지원에도 메타버스가 활용된다. 미국의 렌드에버 VR은 미국, 캐나다, 호주의 450여개 시설과 협력해 커뮤니티 시설에 거주하는 노인에게 회상요법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서비스로 어르신들은 젊은 시절을 상기시키는 추억의 장소에 가보는 가상 경험을 할 수 있다.
◇ 빅테크 쏠림 피할 K-메타버스 생태계 키워야 =
미래 황금알을 낳을 산업용 메타버스 활성화를 위해 기술경쟁력을 빠르게 확보하고 전문기업과 전후방 산업생태계 육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제조 분야 메타버스의 성과가 향후 5년 내에 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전세계 산업 현장에서 메타버스가 빠르게 도입·확산될 것"이라며 "산업용 메타버스에 대한 적극적인 정부의 의지와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데이터가 중요한 만큼 디지털트윈 분야 데이터 수집을 지원하고 설비 투자를 돕는 정책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우진국 인포인 상무는 "디지털트윈을 위해선 정확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게 핵심인데 보안상의 이슈로 데이터 수집 단계에 어려움이 있다"면서 "관련한 정부 지원이 있었으면 한다. 또 중요한 설비들이 외산 위주라 설비 투자에 대한 금융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나인기자 silkni@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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