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떠받치자" 금융지주 자사주 3조 소각
SK텔레콤 2조1천억 최다
현대차그룹도 1조 육박
주식 매입만으론 한계
"소각까지 해야 주주환원"
최근 상장사들이 자발적으로 자사주 소각에 나서는 이유는 자사주 매입만으론 실질적인 주가 부양의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기술주처럼 탄력적인 주가 상승 동력이 부족한 금융주들이 자사주 소각에 적극적인 편이다. 그동안 한국의 상장사들은 자사주 소각을 통한 주주가치 제고에 소홀했는데, 최근 행동주의펀드 및 소액주주들의 본격적인 주주행동으로 인해 변화에 나서는 모습이다.
22일 매일경제신문이 2021년 이후 올해 3분기까지 상장사들의 자사주 소각 현황을 분석한 결과 SK텔레콤이 가장 많은 2조1659억원에 달하는 자사주를 소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뒤로 메리츠금융지주(1조77억원), KB금융(8717억원), 신한지주(6859억원), 미래에셋증권(3430억원), 현대모비스(3327억원), 하나금융지주(2999억원) 순이다.
주로 금융지주사들과 현대차그룹, SK그룹이 적극적으로 자사주를 소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현대차, 기아는 각각 3154억원, 2245억원의 자사주 소각을 발표했다. 현대모비스까지 합한다면 8700억원 규모다. SK그룹은 SK텔레콤을 비롯해 SK스퀘어(1062억원), SK(1006억원), SK네트웍스(697억원), SK케미칼(499억원)이 해당 기간 자사주를 소각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주주총회 시즌을 맞아 지분을 보유한 주주들의 서한 발송 등 주주활동이 활발해질 것"이라며 "현재는 자사주 매입·소각을 통한 주주가치 제고가 주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지배구조에도 좋다는 점을 대주주들도 이해해가는 과도기"라고 밝혔다.
그동안 증권 업계에선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만으론 주가 상승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한국 증시에선 시가총액을 계산할 때 발행 주식 수를 기준으로 한다. 자사주를 매입해도 이 발행 주식 수엔 변함이 없어 공급량 감소에 따른 주가 상승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자사주 매입 후 소각까지 이어져야 주당순이익(EPS)이 개선돼 주가가 상승하는 패턴이 나타난다.
반면 미국 증시는 유통 주식 수에 주가를 곱해 시가총액을 계산한다.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만으로 미국 상장사들의 주가가 급등하는 건 이러한 차이에서 기인한다. 미국의 시총 1위 기업인 애플은 2021년 이후 약 2060억달러(약 278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사들이며 주가 상승을 이끌었다.
적극적인 자사주 소각을 통해 주가 상승에 성공한 표본으로 업계에서 자주 입에 오르는 종목은 메리츠금융지주다. 금융주임에도 메리츠금융지주는 2021년 대세 상승장 당시 348% 오르며 코스피 주가 상승률 5위를 기록했다. 메리츠금융지주는 종전 상장사였던 메리츠증권, 메리츠화재를 비상장 완전자회사로 편입하며 일원화에 나섰다. 올해에도 메리츠금융지주 주가는 22% 상승하며 코스피 수익률을 상회하고 있다.
자사주 소각은 배당 지급보다 뛰어난 주주환원 정책으로도 평가받는다. 배당금의 경우 배당금 지급 시 15.6%의 배당소득세가 발생한다. 세금을 뗀 후 배당금을 받는 것보다 자사주 소각으로 주가 상승 효과를 누리는 게 낫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향후 더 많은 상장사들이 자사주 소각에 나설지 주목된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국내 상장사들이 연초 기준 보유 중인 미소각 자사주 규모는 약 74조원(약 34억주)에 달한다. 기업들이 보유 중인 자사주를 향후 적극 소각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고질적 문제점으로 지목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결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 증시에선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장부상가치(1배)에도 미치지 못하는 대형주가 많은 실정이다.
주주권익 보호 비영리단체인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의 정의정 대표는 "많은 상장사가 주주환원을 명분으로 자사주를 매입하고 있다"면서도 "진정한 주주환원은 자사주 소각으로 이어져야 실효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김동영 삼성증권 매크로팀 수석연구위원은 "매입한 자사주를 대주주, 경영진을 위해 손쉽게 처분하는 관행이 사라져야 한다"며 "시총 기준 변경과 같은 제도적 정비가 자사주 제도 개선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연말을 맞아 주주환원 정책을 공개하는 상장사들이 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사항이다. 미래에셋증권은 유통 주식 수의 2.1%에 해당하는 자사주 1000만주 매입을 결정하면서 향후 자사주 소각을 포함한 주주가치 제고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아세아시멘트도 순이익의 40% 이상을 배당 지급, 자사주 취득 등 주주환원에 쓰겠다고 공시했다.
[차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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