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 中企에 대기업 안전기준 적용 … 뭘 대비해야 할지 캄캄"
직원 10명 안되는 제조 中企
"맘 먹고 유료컨설팅 받았지만
노동법 설명만 3시간 늘어놔"
매출 100억 피혁업체 대표
"내가 구속되면 거래 다 끊겨"
업종별 특성·사고빈도 따져
현실에 맞는 구체적 기준 절실
"대비를 아예 못하고 있어요. 뭘 어떻게 더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입법 과정부터 논란을 일으켰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2년이 됐지만 제자리를 못 찾고 있다. 법 시행 결과 당초 목적이었던 사망사고 감소에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거꾸로 기업 활동만 위축시킨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더구나 내년 1월 27일부터는 임직원 5인 이상~50인 미만 소규모 영세사업장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다. 가뜩이나 불황으로 힘든 영세기업들이 중대재해처벌법 준비로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된 셈이다.
22일 매일경제가 만난 영세업체 대표들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할 수 있는 한도에서 최대한 대비를 했지만, 확신이 없고 추가 대비를 할 여력도 없어서다. 경기 화성시에 위치한 A사는 근로자가 채 10명이 안되는 플라스틱 성형 업체다. 이 회사 이 모 대표(62)는 내년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앞두고 아무런 준비를 못하고 있다. 이 대표는 "어떤 안전시설을 설치해야 하고 직원에게는 어떤 교육을 시켜야 하는지, 또 어떤 사항을 위반하면 처벌받고 어떤 부분을 준비하면 처벌을 피할 수 있는지 기준을 뚜렷하게 정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50인 이상 기업에 대해 발효됐을 때 안전 관련 컨설팅을 받았다. 이 대표는 "플라스틱 성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컨설턴트가 방문해 노동법에 대한 원론적인 설명만 3시간 하고 돌아갔다"며 "결국 구체적인 준비는 기업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용 문제도 언급했다. 이 대표는 "근로감독관이 '공장 바닥에 미끄럼 방지 에폭시를 새로 칠하라'는 요구를 했는데 이를 위해 1000만원이 필요하다"며 "연 매출 4억원이 채 안되는 회사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근로자 수 20여 명, 연 매출 100억원 규모 피혁가공 업체를 운영하는 오 모 대표(62) 역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그는 "법에 맞춰 공장을 새로 짓고 직원 교육도 끝냈지만 산업안전감독관이 올 때마다 미비점을 지적받는다"며 "준비를 하려면 계속 비용이 발생한다"고 토로했다.
예를 들어 법이 규정한 위험성 평가를 위해선 이전에 없던 관련 서류 수십 종을 비치해야 하고, 일정 기간마다 교육 및 안전점검을 실시해야 한다. 모두가 비용 증가 요인이다. 이를 성실히 이행한다고 해서 사고 발생 시 처벌을 100% 피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을 체계적으로 분류해 업종별 현실에 적합한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서울에서 컨벤션 및 행사대행 업체를 운영하는 최 모 대표(47)는 "중대재해처벌법 자체가 제조업 위주 법률이라 우리 같은 서비스 업종은 대응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행사대행 업체는 발주처와 계약을 맺고 공연이나 행사를 위한 가설무대를 설치·해체하는 작업을 한다. 안전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지만 현장별로 작업 시간, 무대 크기 등이 제각각이라 통일된 안전 매뉴얼을 만들기 어렵다. 동일한 공장에서 동일한 시간대에 작업이 이뤄지는 제조업체들과 다른 상황이다.
영세 업체들은 오히려 중대재해 발생 빈도가 낮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중장비나 대형기계 사용이 거의 없기 때문에 소규모 산업재해는 발생할지언정 근로자가 사망할 정도로 큰 사고는 없다는 것이다. 오 대표는 "업종별 사고 발생 빈도수와 업체의 과거 사고 발생 상황을 비교해 사고율이 높은 곳은 관리감독을 더 철저히 하고, 사고율이 낮은 곳은 감독을 완화해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중대재해 발생 시 받게 될 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표했다. 대구에서 근로자 10여 명과 고무 제품을 제조하는 노 모 대표(63)는 "내가 구속되면 지금 일감을 받고 있는 거래처는 모두 주문을 중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채찍만 휘두를 게 아니라 당근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준원 숭실대 안전융합대학원 교수는 "소규모 업체 여러 곳의 안전을 묶어서 관리해주는 공동안전관리자를 선임하는 등 영세 기업들이 실질적으로 요구하는 방식으로 정부 지원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기회에 실효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전반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김동은 기자 / 김시균 기자 / 박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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