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의 일본 친구들' 맞이한 이재용 … 한일 민간외교 탄력

최승진 기자(sjchoi@mk.co.kr) 2023. 10. 22.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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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협력사교류회 4년만에 복원
승지원서 'LJF' 정례회 주재
TDK·무라타 등 日기업 만나
한종희 노태문…경영진 배석
이재용 "천리 길 함께 가는 벗"
한일관계 개선 물꼬 '기대감'

일본을 뛰어넘겠다는 평생의 목표로 반도체·TV 등 각 분야에서 일본 기업을 넘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누구보다 일본 지인(知人)과의 교류를 소중히 여겼던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일본 협력회사 모임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복원했다.

삼성의 일본 협력회사 모임은 해마다 열려왔지만, 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이 선대회장이 별세한 2020년 이후에는 모임이 취소되거나 비대면 형태로 열렸다. 그러다 이 선대회장 별세 3주기를 앞두고 이 회장이 4년 만에 직접 대면 행사를 주재한 것이다.

22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 회장은 지난 2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승지원에서 삼성의 일본 협력회사 모임인 'LJF' 정례 교류회를 주재했다. LJF는 '이건희의 일본 친구들(Lee Kunhee Japanese Friends)'을 뜻하는 말로 1993년 이 선대회장의 '신경영' 선언과 함께 발족한 모임이다.

올해로 발족 30주년을 맞았으며 삼성전자와 일본 내 반도체·휴대폰·TV·가전 등 전자업계 부품·소재 기업으로 구성됐다. 이 선대회장은 당시 "부품 경쟁력이 완제품의 경쟁력을 좌우하므로 삼성이 잘되려면 부품회사와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번에 열린 모임은 이 회장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주재한 LJF 정례 교류회로, 한국에서 대면 교류회가 열린 것은 2019년 이후 4년 만이다. 당시 이 회장은 와병 중이던 이 선대회장을 대신해 교류회를 주재했다. 이후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확산하며 대면 접촉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이 선대회장이 작고하자 LJF 대면 교류회를 열지 못했다.

지난 주말 진행된 LJF 교류회에는 이 회장을 비롯해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 노태문 MX사업부장, 김우준 네트워크사업부장, 박용인 시스템LSI 사업부장, 최주선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최윤호 삼성SDI 사장, 고정석 삼성물산 사장 등 관계사 경영진이 대거 참석했다. 일본 측에서는 TDK, 무라타제작소, 알프스알파인 등 전자 부품·소재 분야 8개 협력회사 경영진이 자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교류회 환영사에서 "삼성이 오늘날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일본 부품·소재 업계와의 협력이 큰 힘이 됐다"며 "지난 30년 동안 LJF 회원사와 삼성 간 신뢰와 협력은 한일 관계 부침에도 흔들림이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삼성과 일본 업계가 미래 산업을 선도하고 더 큰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는 '천 리 길을 함께 가는 소중한 벗' 같은 신뢰·협력 관계를 앞으로도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LJF 교류회에서는 지난 30년간의 협력 성과를 돌아보고 미래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이 회장과 LJF 회원사들은 "전 세계 경기 침체와 더불어 코로나19 팬데믹, 미국·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연이어 겹치는 글로벌 복합 위기 상황을 함께 극복하자"고 다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인공지능(AI)을 비롯한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을 선도해 글로벌 윈윈을 달성할 수 있도록 미래 개척을 위한 동반자 관계를 한층 강화하자는 데 공감했다.

승지원에서 열린 교류회에 앞서 삼성과 LJF 회원사 경영진은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만나 삼성 주요 관계사의 미래 사업 전략을 공유하고, 향후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한일 양국 기업의 신뢰·협력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이 선대회장과 이 회장 의지로 LJF는 30년간 양국 관계의 부침에도 변함없이 지속돼왔다"며 "삼성과 LJF 회원사들은 정례 교류회로 사업장 교차 방문, 신기술 세미나 공동 개최 등을 진행하며 협력관계를 강화해왔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이 LJF 정례 교류회를 주재한 것은 광범위하면서 깊은 것으로 알려진 이 선대회장의 '일본 네트워크'를 계승·발전시키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이 회장은 2013년 이 선대회장과 함께 LJF 교류회에 참석했고, 그로부터 6년 뒤인 2019년 교류회를 대신 주재했다. 이어 올해는 회장으로서 첫 교류회를 진행한 것이다.

특히 올해 교류회는 삼성이 주요 손님을 맞고 핵심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승지원에서 열렸다. 이는 선대회장의 유지를 계승하고 더욱 발전시키겠다는 이 회장 뜻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이 회장이 한국과 일본 양국 민간 부문에서 가교 역할을 담당해 왔다는 것은 재계 안팎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회장은 2019년 7월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로 한일 간 무역갈등이 본격화하자 LJF를 포함한 일본 재계 네트워크를 즉각 가동해 삼성과 한국 산업계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무역분쟁 조기 해소에 기여하는 데 주력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은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 이 선대회장 때부터 이어진 일본 재계와의 네트워크를 더욱 굳건하고 두텁게 키워왔다"며 "일본 수출규제로 한일 관계가 사상 최악이었던 2019년 9월 일본 재계가 '2019 일본 럭비 월드컵'에 한국 기업인으로는 유일하게 이 회장을 초청했던 점은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최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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