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살아파트' 불씨된 설계비 … 20년째 동결
설계비, 2003년 후 인상없어
한국, 공사비 대비 비중 2~4%
美·佛 등 선진국 절반도 안돼
공공건축물 외 민간건축물도
설계 적정 대가기준 마련해야
게티이미지뱅크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 주차장 붕괴 사고로 건축물 안전이 도마에 오른 가운데 설계 단계가 이 같은 '순살 아파트'의 불씨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낮게 후려친 설계 단가 때문에 기초 작업인 설계가 부실하면 시공·감리에서도 문제점을 제때 발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현재 공공 건축물에만 규정된 건축사 설계비용 적정 대가 기준을 민간 건축물에도 적용해야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22일 대한건축사협회와 업계에 따르면 현행 건축물 설계비가 2003년 이후 인상된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려 20년째 제자리인 셈이다. 반면 공사비는 매년 물가에 연동해 상승하고 있다. 이에 국내 공사비 대비 설계비 비율은 건축사협회 집계 기준 3~8%에 그친다.
특히 기본 설계와 달리 현장에서 설계를 변경하거나 향후 감리할 때 발주처가 기존 건축사사무소와 다른 곳을 감리 책임자로 계약하는 일도 많다. 기본 설계, 실시 설계, 현장 변경 설계, 감리 등에서 모두 다른 건축사가 관여해 설계비를 더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국내 한 건축사사무소 대표는 "대다수 발주처가 사업비를 아끼기 위해 건축 단계별로 최저가를 제안하는 건축사사무소들과 계약하는 경우가 많다"며 "최종 건축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설계 담당자가 쪼개지는 상황이 많아지다 보니 건축상 문제점이 제때 발견되지 못하는 사례가 나온다"고 꼬집었다.
이 때문에 실제 국내 공사비 대비 설계비 비율은 건축사협회가 집계한 3~8%보다 훨씬 낮은 2~4%일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다. 반면 미국은 8~10%, 독일은 9~10%, 프랑스는 12%로 유럽과 미주에선 대체로 두 자릿수 비율을 보여 국내와 확연히 대비된다.
현재 국내 건축사법에도 설계에 대한 적정 대가 기준을 마련해 발주해야 한다는 규정이 공공 건축물에만 적용된다. 민간 건축물에 대해서는 규정이 아예 없다. 공공 건축물에 대해서도 명목 규정이라 어겨도 법적 처벌 대상은 아니다.
류치열 건축사협회 건축정책연구소장은 "처벌을 규정하지 않는 대신 적정 대가 기준을 마련해두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비율(공사비 대비 설계비 비율)이 상향될 수 있다"며 "결국 공공 건축물뿐 아니라 민간 건축물에 대해서도 설계 적정 대가 기준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는 민간 건축물에 대한 설계비가 현재 공공 건축물의 20~30%에 그친다고 본다. 공사비 대비 설계비가 가뜩이나 적은데, 민간 건축물의 경우 공공 건축물보다 낮은 단가로 설계비가 책정되고 있어 부실 시공의 씨앗으로 자리 잡는다는 얘기다.
이달 초 김학용 국민의힘 의원과 김수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동 주최한 '건축서비스업 정상화를 위한 토론회'에서도 이 같은 주장이 제기됐다. 석정훈 건축사협회장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건축을 민간과 공공으로 구분하는 곳이 없다"며 "건축은 공공재로 대가 기준도 민간과 공공을 구분하지 않도록 조속한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설계비 현실화는 국내 건축물의 심미적 수준을 높이는 데에도 일조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학용 의원은 "국가 경제 발전으로 과거 단순 주거 공간이었던 건축물의 미적 요소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데, 선진국들은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물을 많이 만들었다"며 "한국 역시 건축서비스업 발전 지원을 통해 아름다운 건축물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고 국가 경쟁력도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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