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조작 세력 놀이터` 키움증권… 미수금 5000억 `초비상`
라덕연 사태 이어 다시 도마올라
증거금률 40% 방치… 뒷북 조정
다른 증권사, 미리 100%로 올려
영풍제지 주가조작에 사용된 계좌 대다수가 키움증권에서 개설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키움이 또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개인투자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데다 증거금 비율을 낮게 유지해온 점 등을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리스크 관리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키움증권이 '주가조작 세력에게 판을 제공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로 약 5000억원의 미수금이 발생해 실적 타격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신한투자증권 등 상당수의 대형 증권사들은 올해 초부터 지난 7월까지 영풍제지 증거금을 100%로 상향 설정해 레버리지 투자의 가능성을 차단했다. 증권사가 증거금률을 100%로 설정하면 해당 종목은 오로지 현금으로만 매수할 수 있어 빚을 내 주식을 매수할 수 있는 미수거래가 차단된다.
반면 키움증권은 영풍제지 하한가 사태가 터진 지난 18일까지 증거금률을 40%로 유지하다가 거래가 정지된 19일에서야 100%로 조정했다. 증거금률을 40%로 설정했다면 현금 40만원만 있으면 주식 100만원어치를 살 수 있다. 나머지 60만원은 실제 주식이 계좌로 입고되는 날(거래일로부터 2영업일) 이전까지 납부하면 된다. 결제일까지 미수금을 내지 못하면 증권사가 주식을 강제로 처분(반대매매)한다.
금융투자협회의 '금융투자회사의 리스크관리 모범규준'에 따르면 금융투자회사(증권사)는 종목별 재무현황, 가격변동성, 유동성, 신용거래융자 비중, 기타 시장정보 등 다양한 요건을 토대로 증거금률을 산정한다.
또 해당 모범규준을 근거로 시장상황에 따른 변동성, 거래소의 시장조치 등을 모니터링하며 신용대출 가능 여부를 판단한다. 증권사가 신용융자와 담보대출, 미수거래 등을 제한하는 이유는 무리한 '빚투'로 인해 담보 부족 계좌들이 속출, 미수 채권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것을 방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투자자 보호는 물론 근본적으로는 회사의 자본 건전성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번 하한가 사태로 키움증권에 대규모 미수금이 발생했다. 키움증권은 지난 10일 향후 3년간 당기순이익의 30% 이상을 자사주 매입·소각과 배당 등 주주 환원 정책에 사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상반기 순이익을 고스란히 떼일 위기에 처했다. 미수거래는 개인 투자자가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매수하고 난 뒤 2영업일 후 실제 결제일(T+2일) 내 결제대금을 갚는 초단기 외상 거래로, 투자자들이 대금을 갚지 못하면 미수금이 발생한다.
키움증권은 지난 20일 "영풍제지 하한가로 고객 위탁계좌에서 약 4943억원의 미수금이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공시에서 "반대매매를 통해 미수금을 회수할 예정이며, 고객 변제에 따라 최종 미수채권 금액은 감소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영풍제지가 거래정지 종목으로 지정돼 있어 반대매매는 거래가 재개된 직후 진행될 예정이다.
영풍제지 하한가로 발생한 미수금 4943억원은 키움증권 상반기 순이익(4258억원)을 뛰어넘는 규모다. 반년 동안 번 돈에 해당하는 금액이 한 개 종목의 미수금으로 발생한 것이다. 이례적으로 미수금 발생 내용을 공시한 것도 액수가 커 중요 경영사항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키움증권은 "반대매매를 통해 미수금을 회수할 예정이며 고객의 변제에 따라 최종 미수채권 금액은 감소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반대매매가 나가더라도 문제가 된 종목을 매수하려는 규모가 이를 받쳐주지 못하면 거래가 체결되지 않을 수 있다. 반대매매 후에도 회수하지 못하는 미수채권에 대비해 증권사는 충당금을 쌓아야 하고 충당금은 회계상 손실로 인식된다.
증권업계는 키움증권의 미수금 규모가 알려지자 충격에 빠진 분위기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키움증권 정도 되는 대형사가 왜 영풍제지 같은 종목의 미수거래를 막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며 "내부 위험 통제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윤희기자 stel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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