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시평] 신속한 재판을 위해 필요한 것들
법관 수 늘린다고 해결 안돼
재판구조 개혁에 앞서
법원에 대한 국민 신뢰 높여야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2년 민사 합의 사건의 평균 처리 기간이 420.1일에 이르렀다. 2021년 364.1일에서 두 달 가까이 늘어났다. 고등법원 민사부의 평균 사건 처리 기간은 332.7일인데 1년 전에 비해 29일이 늘어난 수치다. 민사 상고심의 경우 349.5일이 걸려 전년보다 3개월 이상 늘어났다. 대법원은 민사 사건의 70% 이상을 심리불속행으로 처리하고 있어 심리를 진행하는 사건만 따지면 상고 사건 처리 기간은 엄청나게 늘어난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법원의 사건 처리 지연은 심각한 문제다.
법원은 재판이 늦어지는 원인의 하나로 승소 가능성이 전혀 없는 여러 건의 소송을 반복적으로 제기하는 이른바 '프로 소송러'를 들어 왔다. 국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사소송법을 개정해 인지를 붙이지 않은 소장은 접수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하고, 청구 이유가 없는 소송을 반복해서 제기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제도 개선안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프로 소송러' 문제는 앞으로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사회가 발전하고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복잡한 사건의 수가 증가해 사건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고도 한다. 과거에 비해 현재 법원이 처리하고 있는 사건의 사실관계나 해당 법리가 복잡하고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 이런 변화에 발맞춰 우리 사법제도도 발전해 왔다. 미국식 로스쿨 제도가 도입됐고 경력 법관제도가 도입돼 시행된 지 이미 오래됐다. 그런데 이런 제도 변화에 따른 재판제도의 발전은 눈에 띄지 않는다.
판사가 되려면 5년 이상 법률사무직에 종사한 경력이 있어야 하고, 2025년부터는 7년 이상의 경력이 있어야 한다.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상당한 법조 경력을 지닌 사람이 판사로 임용되는데, 법원 조직은 과거 사법시험 제도에 바탕을 둔 낡은 제도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경력 법관제를 도입한 이상 법원 조직도 단독판사 중심으로 재편돼야 한다. 이에 따라 고등법원과 지방법원에 나뉘어 있는 항소심 구조도 바꾸어야 한다. 이런 구조 조정 없이 고등부장 제도만 폐지한 결과 사건 처리가 오히려 더 지연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변호사 수 증가에 따라 법원에 접수되는 사건이 증가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변호사 수가 는다고 분쟁 자체가 늘어나지는 않는다. 과거에는 법원에 오지 않던 분쟁이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소송으로 발전하는 사례는 있을 수 있다. 문제는 변호사 수가 증가하면서 변호사가 대리하는 사건 중에도 승소 가능성이 없는 무리한 소송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에서 변호사가 가장 많은 미국에서는 변호사가 법리에 맞지 않는 무리한 소송을 제기하거나 거짓 주장으로 법원을 속이려 하면 판사가 변호사를 징계한다. 해당 변호사에게 소송비용을 부담하도록 하거나 일정 기간 소송대리를 금지하는 등의 제재를 가한다.
법원은 사건 처리가 지연되는 이유를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그 원인을 제거하고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법관 증원을 요구하는 것 이외에 다른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법관 증원만으로 신속한 재판을 이룰 수는 없다. 재판 구조를 바꾸고 판사의 소송지휘권을 강화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필요하다. 그런데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법원의 신뢰도는 47.7%에 불과하다. 법원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사건이 배당되면 판사의 정치 성향과 변호사와의 친소 관계를 먼저 따지는 현실부터 바꿔야 한다. 국민의 권리 구제를 최우선으로 두고 신속한 재판을 위한 제도 개선 작업이 하루라도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강일원 변호사·전 헌법재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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