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상저하고’ 전망에…추경호표 ‘금고 잠그기’ 경제정책 진퇴양난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재정의 역할에 선 그어
재정 건전성을 금과옥조로 민간주도 성장을 앞에 내세웠던 ‘추경호’표 성장 전략이 진퇴양난에 처한 모습이다. 하반기부터 경기가 개선된다는 ‘상저하고’ 전망이 주요국의 긴축과 전쟁 유탄을 맞으며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중동 분쟁이라는 변수까지 돌출하면서다. 민생 경제 위축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을 주문하는 목소리는 점점더 커지고 있지만, 금고를 걸어 잠그겠다고 천명한 마당에 마땅한 대응 수단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실시된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정부·여당과 야당은 현재 경제상황을 두고 극단적인 시각차를 드러냈다.
야당은 나라 안팎에서 잇따르고 있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 하향 수정과 물가 상승에 현 정부의 무능과 정책 실패를 캐물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년 경제성장전망을 2.4%에서 2.2%로 0.2%포인트 하향 수정하고, 국회예산정책처가 올해 성장전망을 1.5%에서 1.1%까지 대폭 하향조정한 내용 등이 주요하게 거론됐다.
이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계절로 보면 겨울인데 여름 환경을 가지고 과일이 열렸냐는 식의 비교는 맞지 않다”(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로 요약된다.
전세계 경제가 위축된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물가와 경제 성장률은 선진국 대비 선방한 수준이라는 게 반론의 골자로, 추 부총리는 “선진국 대부분의 국가들이 9~10%대로 물가가 상승하고 성장은 대개 1% 안팎”이라며 반박했다.
‘상저하고’ 전망이 실패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상반기 0.9% 성장했는데 3분기 1%대 초반, 4분기 이스라엘 등 외생 충격이 없다면 1.4%의 성장률 전망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반박했다. 내년 성장률과 관련해서도 “내년 (성장률) 2.2%는 1조달러 이상의 경제 국가 중 최고 성장률”이라고 강조했다.
경기회복의 마중물 역할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재정의 역할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현 정부의 경제 기조에서 한치의 변화도 수용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인기가 좀 없더라도 국민들을 앞으로도 계속 편하게 모시기 위해서 건전재정 기조를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추 부총리 스스로 경계했듯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확전 대외 불확실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다, 내년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고물가와 경기회복 지연에 따른 민심 악화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한국갤럽이 실시한 정기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 이유로 ‘경제·민생·물가’가 17%로 가장 높았다. 직전주에 이어 경제상황에 대한 불만이 2주 연속 부정평가 이유로 가장 많이 꼽힌 것으로, 고물가 등 나빠진 경제여건으로 유권자들의 관심이 정쟁에서 경제로 옮겨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현재의 경제 상황에 대한 정부의 판단과 별개로 ‘경제가 나쁘다’는 인식이 점증하고 있는 것으로, 설명보다는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여권의 고민이 깊어지는 대목이다.
실제로 여권 일각에서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복원, 소상공인 지원 등 내년도 예산 증액에 대한 목소리가 분출하기 시작하는 배경으로, 정부도 전기요금 인상 결정에서 ‘국민부담’을 고려한다는 언급이 등장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재정건전성의 기반 위에 인위적인 경기부양은 지양한다는 정부의 기조가 스스로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경제상황을 “1960~70년대 오일쇼크 이후 가장 어려운 시기”라고 평가하면서도, ‘체질 개선’ 같은 장기 과제 외에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대응책이 전무한 배경이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경제학)는 “한 두 국가가 위기에 빠지면 그 국가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해서 살아날 수 있지만 전세계가 이렇게 어려울 때에는 수출을 잘해서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하는 건 시스템적으로 안되는 것”이라며 “세계 각국이 재정을 동원해서 경기가 이렇게 너무 급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하고 있는데 한국만 거꾸로”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은 정부가 아무것도 안하거나 아니면 재정 정책을 동원하는 방법 둘 중 하나 뿐”이라며 “정부가 재정건전성은 계속 유지하겠다고 하니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을 마련해서 지출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호준 기자 hjlee@kyunghyang.com, 이창준 기자 jch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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