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연 90% 쥔 중국 ‘수출 통제’···배터리 업계 어쩌나

김상범·이진주 기자 2023. 10. 22.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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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잘츠기터에 위치한 폭스바겐 배터리셀 공장에서 한 연구원이 음극재 원료인 흑연 가루를 들어 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이 연말부터 흑연 수출을 통제하겠다고 나서면서 2차전지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연필심에도 들어가는 흑연은 값싸고 흔한 광물로 여겨지지만 최근 전기자동차 배터리 필수 재료로 쓰이며 그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흑연은 채굴부터 가공까지 모든 생산 과정을 중국이 꽉 잡고 있어 수입처를 다변화하기 쉽지 않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중국 상무부와 해관총서(세관)가 지난 20일 흑연 일부 품목에 대한 수출 통제를 실시한다고 발표하자 긴장된 상태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오는 12월부터 중국 흑연 수출업자는 상무부 허가 없이 외국에 흑연을 수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기차 배터리용 광물들의 높은 중국 의존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가 이번 ‘흑연 사태’를 예의주시하는 이유는 중국 외에 이렇다 할 대안이 없어서다. 리튬·니켈·코발트 같은 다른 배터리 광물은 중국이 ‘최종 가공자’ 역할을 하기는 하나 실제 채굴은 인도네시아·아르헨티나·호주 등 다양한 국가에서 이뤄진다. 하지만 흑연은 채굴부터 가공·정제까지 중국이 전 과정을 장악하고 있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흑연 채굴량 130t 가운데 중국이 65.4%(85만t)를 차지했다. 중국에서 정제되는 흑연 비중은 90%가 넘는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중국산 흑연 수입 비중은 2018년 82.9%에서 올해 9월 기준 95.9%로 매년 늘고 있다.

흑연은 배터리 수명과 충전 속도를 결정하는 음극재의 핵심 소재다. 전기차 배터리 1개당 흑연 함유량은 20~30%에 이른다. 흑연보다 에너지 밀도가 4배 이상 높은 실리콘이 차세대 음극재 소재로 주목받고 있지만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음극재를 양산하는 기업은 포스코퓨처엠이다. 중국에서 수입한 흑연을 음극재로 가공해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배터리사에 납품한다. 포스코퓨처엠 관계자는 22일 “중국이 수출을 금지하겠다는 게 아니라 심사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라서 아예 수입 통로가 막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수입 절차가 복잡해진 만큼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포스코퓨처엠은 한달 반 정도 사용할 수 있는 흑연 물량을 비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포스코퓨처엠은 일단 수입선 다변화로 현재의 사태에 대응할 계획이다. 포스코그룹의 무역 계열사인 포스코인터내셔널은 탄자니아·마다가스카르 등지에 흑연 조달망을 갖추고 있다.

음극재 시장 판도가 천연 흑연에서 인조 흑연으로 넘어가고 있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현재 전기차용 흑연 음극재는 인조·천연 흑연이 대략 6 대 4의 비율로 쓰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인조 흑연은 석유·석탄 등을 정제해 만든 ‘코크스’를 주재료로 삼는다. 지난해 포스코퓨처엠은 인조 흑연 국산화에 성공하기도 했다. 포스코 제철소에서 나온 부산물로 만든 코크스를 인조 흑연으로 가공하고 있다. 북미에도 인조 흑연 음극재 공장을 세울 계획이다.

배터리 업계가 받을 영향은 당분간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퓨처엠이 혹여 음극재 생산 차질을 겪는다고 해도, 중국 등 다른 납품사에서 받는 물량을 늘리면 되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은 전 세계 음극재 공급의 87%를 담당하고 있다. 물론 중국 상무부의 이번 통제 조치에 흑연이 들어간 ‘음극재 완제품’도 포함됐지만 수입 통로가 완전히 막힐 가능성은 작다. 전기차 시장 침체로 현지 소재업체들도 수출에 사활을 걸고 있어서다. 국내 배터리사 관계자는 “중국이 자국 음극재 기업들을 망하게 놔둘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산 음극재 비중이 늘어나면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양·음극재 등 배터리 광물을 가공해 50%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보조금을 지급하는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기준에 미달할 수 있어 이 역시 불안 요인이다.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이진주 기자 jinj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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