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대치동은 '7세 고시 전쟁중'··· "레벨테스트 신청 대리 알바도 성행"
예비 초1 레테 보기 위해 북새통
온라인 레테 신청 대리 알바도
유명 영유-7세고시가 대치동 공식
"과한 학습에 틱장애 겪는 아이도"
유아 영어사교육 과열 규제 목소리도
“이렇게 까지 하는 이유요? 영유(영어 유치원) 보낸 게 아까워서죠.”
지난 2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A 영어학원 앞. 유아 대상 영어학원(영어 유치원) 가방을 맨 학부모 50여 명이 초조한 얼굴로 학원 앞 골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대부분 엄마들이었지만 넥타이 차림을 한 아빠들과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 할아버지도 1시간 30분을 꼬박 서서 아이들을 기다렸다. 모두 ‘예비 초1’을 대상으로 한 입학 레벨테스트를 치르기 위해 학원을 찾은 이들이었다.
유아들의 영어 학원 졸업을 앞둔 10월이 되면 서울 강남 학부모들 사이에선 ‘레테(레벨테스트)’ 전쟁이 치러진다. 이른바 ‘빅5’ ‘빅10’으로 꼽히는 강남의 유명 초등 영어학원들이 이때 테스트를 통해 예비 초1 수강생을 모집하기 때문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에 따르면 전국 영유아 영어학원 847곳 중 144곳(17%)이 사전 레벨테스트를 활용해 원아를 선발한다.
듣기·쓰기·어휘·회화 등을 평가하는 레테는 미국 초등학교 5학년 수준과 맞먹을 정도로 난도가 높아 대치동에선 ‘7세 고시’로 통한다. 이마저도 신청이 어려워 인기 연예인 콘서트 티켓팅을 방불케 할 정도다. 이날 학원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던 30대 학부모는 “10월이면 레테 보기 위해 대치동 인근 유명 영어학원을 돌아 다니는 부모가 많다”며 “인기 있는 학원에 가려고 10~15만원을 들여 레테를 대신 신청해주는 알바를 쓰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4세 영유 대비 학원-5세 영유-7세 영어학원’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대치동에선 영어 교육 엘리트 코스로 통한다. 현행법에 따르면 유치원 인가를 받지 않은 사설학원이 영어유치원 명칭을 사용해선 안된다. 하지만 유아 대상 영어학원들은 ‘유치원’ 명칭만 사용하지 않은 채 사실상 유치원처럼 운영하고 있다.
이날 레테를 보러 온 아이들 역시 십중팔구는 인근 유명 영어 학원 출신이었다. 이미 사교육 시장에 발을 들인 학부모들은 보상 심리와 공교육에 대한 불만족 탓에 사교육 광풍에 올라타 있었다. 레테를 마치고 나온 아이에게 시험이 어땠는지 한참이나 묻던 한 학부모는 “초등학교에선 4학년 때 기본적인 단어를 배운다”며 “시간과 돈을 들여 영어 유치원 보낸 게 아깝지 않으려면 수준 높은 강의를 하는 학원에 보낼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7세 고시’ 광풍이 지속되자 영어 학원이 입학 조건으로 내세운 영재 검사와 영어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 각종 과외도 성행 중이다. 아이 둘을 영어 학원에 보내 졸업시킨 한 학부모는 “요즘 영유 입시 과외에선 외우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하는 태도까지도 가르쳐준다고 홍보한다”며 “회당 7~10만원 선으로 주 2회 이상 수강하도록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나치게 과열된 교육열에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잠실에서 대치동으로 아이를 등원시킨다는 김 모 씨는 “주변에서 과한 학습에 틱 장애가 오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봤다”며 “솔직히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생각들 때가 많지만 다들 이렇게 하니까 울며 겨자먹기로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도 “아이 영어 교육에만 매달 200만 원 가까이 지출된다”며 “경제적 여유가 있어도 교육비가 부담이 안된다고 하면 거짓말”이라고 울상을 지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지나치게 어린 나이부터 언어 교육을 하면 학습에 미리 지치는 소진 현상이 발생한다”며 “심한 경우 실어증과 대인 기피증을 겪기에 아이의 반응과 실제 학습 효과를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유아 대상 영어 학원의 월평균 교습비는 2021년 107만 원, 2022년 115만4000원에서 올해 6월 기준 123만9000 원으로 늘었다.
구본창 사걱세 정책대안연구소 소장은 “대만의 경우 초등교육보수법에서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영어 사교육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영어 학습 시간과 교육비 등을 구체적으로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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