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 개최’ 카이로평화회의, 결과도 빈손…요원해지는 중동 평화
서방·아랍권 시각차…공동성명 채택 불발
‘인질 석방’ 매개 카타르 중재자 떠올랐지만
이스라엘-하마스 인질 놓고 신경전 계속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전쟁으로 촉발된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소집된 카이로평화회의가 별다른 성과 없이 21일(현지시간) 마무리됐다. 당사자인 이스라엘은 불참했고, 미국도 무게감이 떨어지는 인사를 자리에만 앉혀 놓는 등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국제사회가 가장 우려하는 인질 문제를 놓고도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연일 신경전을 펼치고 있어 평화 협상 가능성은 더 요원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열린 평화회의엔 영국·프랑스·독일 등 서방 주요국과 카타르·요르단·쿠웨이트 등 아랍권 고위 관계자 20여 명이 참석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인도주의적 휴전을 통해 이 끔찍한 악몽을 끝내야 한다”고 호소했지만, 서방과 아랍권은 미묘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서방은 주로 ‘정치적 해법’을 강조하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봉쇄 등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지역 긴장 완화를 위해 더 많은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도 “전쟁 확대를 피하고 분쟁 당사자들이 해결책을 찾도록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아랍권에선 팔레스타인 권리 보호에 초점을 맞춘 메시지가 주를 이뤘다.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은 “팔레스타인인의 생명이 이스라엘인의 생명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며 “이스라엘 지도부는 불의의 토대 위에 국가를 세우면 번영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또한 “우리는 가자지구에서 우리 국민을 국경 너머로 이주시키려는 시도에 대해 경고한다”며 “우리 국민은 그들의 땅에 남아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가자지구 지상군 투입을 저울질하는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회의 불참을 통보했고, 미국에선 비교적 급이 낮은 이집트 주재 대리 대사를 내보냈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회의장을 떠났다. 결국 이날 회의는 공동성명 없이 끝났다.
뉴욕타임스(NYT)는 “가자지구 분쟁에 대한 전 세계 지도자들의 깊은 분열을 확인했다”며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민간인 포위 공격을 규탄하지 못하는 서방의 위선과 이중잣대를 비판했다”고 평가했다. 카타르 하마드 빈 칼리파대 중동학과 교수인 오언 존스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테이블에 앉지 않으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을 막을 만큼의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회의는 없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이해관계에 따라 국제사회가 둘로 쪼개진 상황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모두와 소통 창구를 두고 있는 카타르의 중요성이 주목받고 있다. AFP통신은 “카타르는 인질 사태를 풀기 위한 핵심 중재자로 떠올랐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전날 하마스가 미국인 모녀 2명을 석방한 배경엔 카타르가 있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직접 카타르 당국에 사의를 표했다.
일각에선 카타르가 인질 협상을 넘어 평화 중재에도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카타르는 가자지구뿐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예멘, 레바논, 시리아, 수단 등 전 세계 분쟁을 중재하는 국가”라고 치켜세웠다. 익명을 요구한 카타르 관리는 가디언에 “갈등 중재는 우리 외교 정책의 필수 부분”이라며 “현재 상당수의 인력이 중재 과정에 투입돼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이날도 인질 문제로 충돌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하마스 군사조직 알카삼 여단의 아부 오바이다 대변인은 이날 “인질 2명을 추가로 석방하려고 했지만, 이스라엘이 거부했고 이 사실을 카타르에 통보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곧바로 설명을 내고 “거짓 선전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며 반발했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가 지난 7일 기습 공격 과정에서 최소 210명의 인질을 끌고 갔다고 보고 있다. NYT에 따르면 여기엔 최소 20명의 어린이가 포함돼 있고, 일부는 암과 파킨슨병 등 중병을 앓고 있는 사람도 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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