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옷 입던 고객이 딸과 올 때 행복” 33년째 사랑받는 디자이너

김효혜 기자(doubleh@mk.co.kr) 2023. 10. 22.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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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영원한 로망 ‘섹시·페미닌·럭셔리’ 추구
백화점서 33년간 사랑받은 디자이너 브랜드
2011년부터 뉴욕패션위크 23회 연속 참가
“내가 죽어도 내 브랜드는 남아 있길 바라”

손정완 ‘손정완’ 대표 인터뷰

1990년 갤러리아 백화점에 첫 입점한 뒤로 33년간 국내 주요 백화점 여성복 층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가 있다. 바로 ‘손정완(SON JUNG WAN)’이다.

30년 넘게 디자이너의 이름 세 글자를 내세운 브랜드로서 주요 백화점 3사에 40개 매장을 유지하고 있는 브랜드는 현재 손정완이 유일하다.

33년은 강산이 세 번 변하고도 남는 세월이다. 꿈 많은 아가씨였던 여성이 어느덧 장성한 자녀를 둔 엄마가 되었을 수도 있다. 젊은 시절부터 찾던 옷가게를 수십년이 흘러 딸과 함께 방문하는 것은 여성들이 한 번쯤 꿈꿔 보는 로망이 아닐까.

지난 22일 서울 압구정 손정완 사옥에서 매일경제와 만난 손정완 대표는 고객에게 이러한 로망을 실현시켜주는 디자이너로서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손정완 대표 [이승환기자]
손 대표는 “세월이 흐르며 고객들의 연령대가 높아졌지만 그것을 나쁘게 생각하진 않는다”며 “내 옷을 입던 고객들이 딸과 함께 매장을 찾는 것을 보며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젊었을 때는 혈기가 왕성해 실험적이고 톡톡 튀면서도 임팩트 있는 디자인에 열중했지만, 지금은 어떤 걸 덜어내야 완벽할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됐다”면서 “우리 고객들도 점점 나이가 들면서 더 세련되어 지고 있다. 성숙해질수록 더 완벽해져가는 과정을 함께 볼 수 있어서 참 좋다”며 소녀처럼 맑게 웃었다.

손 대표에게 이토록 오랫동안 손정완이라는 브랜드가 사랑받을 수 있는 비결을 물었다. 그는 “성실하게 꾸준히 해온 덕분인 것 같다”며 “아무리 재능이 있는 사람도 성실하게 꾸준히 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재능이 뛰어나면 좋겠지만, 성실함과 꾸준함이 있어야 도태되지 않고 전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실함과 꾸준함은 손 대표의 강점이다. 그는 한국 디자이너로서 유일하게 지난 2011년부터 올해 9월 2024 봄·여름(S/S) 시즌까지 벌써 23번이나 뉴욕 패션위크에서 컬렉션을 진행했다. 매년 컬렉션을 진행하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지만, 그만의 성실함과 꾸준함으로 해내고 있는 것이다.

손정완 뉴욕 패션위크 24 S/S 컬렉션
손 대표는 “이걸 해내지 못하면 디자이너로서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는 마음을 갖고 매 컬렉션 때마다 시험 보는 학생처럼 임한다. 뉴욕 패션위크는 저에게 더 성숙해지고 더 완벽한 실루엣을 만들기 위해 거쳐야 하는 시험 같다”고 말했다.

그는 “공부를 열심히 하면 성적이 올라가지 않나. 열심히 공부하는 과정이 없다면 합격했을 때 기쁨을 맛볼 수 없다. 다만 100점이라는 게 없는 시험이라서 끝이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난 9월 뉴욕 트라이베카에 위치한 스프링 스튜디오에서 열린 손정완의 2024 S/S 컬렉션은 ‘하모니(HARMONY)’가 주제였다. 사람과 자연이 제시하는 풍부한 컬러와 질감, 패턴을 조화롭게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실크, 오간자, 쉬폰, 매쉬 등 비교적 가벼운 소재를 사용해 부드러운 섬세함을 표현하는 동시에 다양한 트렌드를 접목해 현지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손 대표는 “소재, 색상, 실루엣 등 상반되는 것들을 조화롭게 어우러지게끔 하는데 초점을 뒀다”며 “우리 삶도 조화롭게 어우러진다면 얼마나 살기 좋겠느냐”고 말했다.

내년이면 그가 ‘손정완’이라는 회사를 차린지 딱 30년이 된다. 1989년 서울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 앞에서 모친에게 돈을 빌려 제 이름을 내걸고 시작한 작은 부띠끄샵은 1994년 손정완이라는 패션 기업으로 거듭났고, 이어 대한민국 여성복 역사에 획을 그은 브랜드로 성장했다.

손정완 대표 [이승환기자]
손 대표는 “그때도 브랜드에 영어 이름을 쓰는 디자이너들이 많았다. 그런데 한국 사람이 왜 한국 이름을 안 쓰고 저러나, 그게 안 좋아보였다”면서 “내 스타일이잖아, 내 것, 그래서 내 이름을 걸었다”고 말했다.

이어 “유명해지고 싶다든지 큰 회사로 키워야겠다든지 이런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면서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뿐인데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게 참 행복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지금도 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브랜드가 지금처럼 꾸준하기만을 바란다는 손 대표는 “제가 디자이너로서 평생토록 추구해온 게 ‘섹시, 페미닌, 럭셔리’다. 이 3가지는 여성들의 영원한 로망”이라며 “그 영원한 로망처럼 내 브랜드가 내가 죽어도 살아있으면 하는 게 나의 꿈”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한국에서도 백년이 넘게 지속되는 브랜드가 나와야 한다”면서 “한국은 패션에 대한 역사가 짧아 디자이너에 대한 지원이 열악하다. 브랜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 하기 위한 제도적 지원이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She is… △1958년 서울 출생 △서울여고 △숙명여대 미술대 산업공예과 △1989년 ‘손정완’ 브랜드 설립 △1990년 백화점 입점 △1994년 (주)손정완 설립 △1994년 세계 패션 그룹 회원 △1997년 SFAA(Seoul Fashion Artist Association) 가입 △2006년 ‘who’s next’ 국내최초 파리초청 단독 패션쇼 △2011년 뉴욕패션위크 데뷔 △2012년 GS홈쇼핑 콜라보레이션 브랜드 ‘SJ. WANI’ 런칭 △2021년 남성복 라인 ‘와니니(WANINI)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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