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방송들이 시사토크 프로그램 늘리는 이유는
한선 언론정보학보 논문, 경영 악화·인력 부족 심층 시사프로 전멸 위기
비교적 제작 쉬운 대담 프로그램 확대…오피니언 리더·정치담론 과잉 우려
[미디어오늘 윤수현 기자]
지역 방송사들이 경영상황 악화·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심층 시사프로그램을 폐지하고 대담·토크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지역사회 오피니언 리더의 목소리가 확대·재생산되고, 정치담론이 과잉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선 호남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이달 발행된 한국언론정보학보에 게재한 논문 <지역방송 보도프로그램의 저널리즘 실천양상의 변화 탐구>에서 지역 방송사의 시사 프로그램 변화 양상을 살펴봤다. 한 교수는 광주·전남 지역방송에서 보도프로그램을 생산한 경험이 있는 기자·PD·작가 10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결과, 광주전남 지역방송에선 보도프로그램이 전반적으로 축소되고 있었다. 한선 교수는 “2023년 현재 광주전남의 지역방송에서 자체 제작하는 보도프로그램 중 VCR 현장취재가 포함된 이른바 PD저널리즘을 구현하는 심층·시사 프로그램은 전무했다”며 “지난해까지 간헐적으로 유지되던 심층시사 프로그램이 모두 폐지된 것”이라고 했다. 인터뷰 참여자들은 현장취재 보도를 “현장성과 심층성이 높은 저널리즘의 꽃”이라고 표현했지만, 제작비와 인력난 때문에 폐지 수순을 밟는 것이다.
실제 광주전남 지역 지상파 방송사는 심층·시사 프로그램을 없애고, 대담·토크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있다. 대담·토크 프로그램은 심층·시사 프로그램과 비교해 제작비가 저렴하고, 방송 제작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 종합편성채널 역시 출범 후 대담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한 정치평론에 주력한 바 있다.
한선 교수는 “현재 광주전남 지역방송에서 뉴스 이외에 제작되는 보도프로그램은 진행자와 패널이 출연해 특정 주제에 대해 논의하는 토론이나 토크(대담) 프로그램뿐”이라며 “열악한 제작여건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사 프로그램이 이들 형식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역방송에선 종합뉴스와 대담 프로그램 형식이 결합되고 있다. 한선 교수는 방송 저널리즘 전반에 나타나는 연성 뉴스화와 열악한 제작여건을 두 장르가 합쳐지는 원인으로 꼽았다. 한선 교수는 “(인터뷰이들에 따르면) VCR 현장취재가 포함된 심층시사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없는 현재의 제작 여건, 주어진 분량의 종합뉴스를 감당하기에도 빠듯한 지역방송의 제작 현실이 다양하게 존재하던 장르와 포맷을 하나로 뒤섞어 제작하는 포맷의 혼종화로 이어졌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대담·토크 프로그램의 과잉이다. 한선 교수는 “토크프로그램의 과잉생산은… 지역사회의 오피니언 리더의 목소리와 정치담론이 과잉 매기(매개)된다는 점에 서도 문제적”이라면서 “제작자들 스스로 인정하듯이 토크 형식의 프로그램은 '현장성, 맥락성, 심층성'이 제거된 보도프로그램이다. 저널리스트가 저널리즘 실천의 금과옥조로 여기는 현장성과 탐사성이 결여된 보도프로그램이 제작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방송저널리즘에서 견지해야 할 사회적 약자나 주변인, 자기발언의 기회를 쉽게 갖지 못하는 일반 대중의 목소리를 전달할 기회가 현재의 보도프로그램 형식에서는 취약하다”고 비판했다.
지역 방송사들이 심층 프로그램을 제작하지 못하는 주요 이유는 인력난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방송산업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광주·전남 지역 KBS의 기자는 34명, PD는 14명이다. 광주·여수·목포 MBC의 경우 기자 33명, PD 29명이다. KBC는 기자 28명, PD 10명이다. 이는 취재업무에 종사하지 않는 심의실 근무자, 파견근무자까지 포함된 수치다.
한선 교수는 “보도국에서 매일 뉴스를 제작해야 하는 인력은 부장단 등을 제외하면 KBS의 경우 12명에 불과하다”며 “KBC는 2021년 포털과 뉴스콘텐츠제휴 계약을 체결한 뒤 디지털뉴스를 담당하는 콘텐츠미디어국을 확대해 수치상으로는 MBC보다 많은 기자를 확보하고 있지만 현장에 투입하는 취재인력은 KBS와 유사한 10여명 선”이라고 했다. 인력이 많이 투입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전문적인 시사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시사PD도 부족하다고 한다. 한선 교수는 “이른바 PD저널리즘을 구현하는 편성국 상황도 보도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대다수 응답자들은 시사PD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 지역방송에서는 정보성 교양 프로그램과 시사프로그램을 순환하며 제작하기 때문에 전문성을 요구하는 시사프로그램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지역방송의 고질적인 인력난 때문에 다양한 주체들이 방송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방송작가, VJ, 디지털콘텐츠 제작자, 아마추어 제작자 등이 보도 프로그램 제작에 나선 것이다. 실제 광주KBS는 영상 아카이브를 활용해 <뉴스 되감기> 코너를 만들고 있으며, 대학생 아마추어 제작자들이 참여하는 <Z뉴스>와 뉴스캐스터가 참여하는 <찾아가는 K>를 제작하고 있다.
한선 교수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주 5회 40분짜리 뉴스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하는 상황에서 보도국 기자들로만 주어진 방송분량을 채우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이뤄진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면서 “제작 여건이 충분하다면 새로운 생산 주체들 중 상당수는 참여를 제한하자는 것이 보도국의 일반적인 정서”라고 했다. 즉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다양한 참여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며, 보도국 내 '구분짓기' 정서는 유효하다는 것이다.
한선 교수는 “열악한 지역방송의 제작여건을 타개할 획기적인 방안이 도출된 않는 한 이들의 참여비중이 갈수록 증대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지역방송은 새로운 진입자를 보조적인 인력으로 활용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수용자의 니즈를 반영한 새로운 형태의 뉴스를 개척하고 유통시키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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