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병원 참사, 윤곽 드러나나…“폭격 아니다”

김서영 기자 2023. 10. 22.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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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 폭발한 로켓 일부의 추락 가능성
전문가들 “로켓 오발 확률 높다” 분석
지난 17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의 알아흘리 아랍 병원 주차장으로 기자가 걸어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사상자 수백명을 낳은 가자지구 알아흘리 아랍 병원 참사의 실상이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해외 언론과 각국 분석을 종합하면 병원 폭발 원인이 폭격은 아니라는 쪽으로 방향이 잡힌다.

21일(현지시간) CNN은 알아흘리 병원 참사 원인을 두고 가자지구 내에서 발사된 로켓이 공중에서 폭발했으며 그중 일부가 병원 단지에 떨어졌을 가능성이 가장 유력하다고 보도했다. CNN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언론 등에 공개된 동영상 수십개, 자체 확보한 위성사진과 동영상 등을 무기 및 폭발물 전문가들과 함께 검토한 결과가 이와 같다고 전했다.

분석에 따르면 지난 17일 저녁 당시 알자지라의 카메라는 가자지구를 생중계하고 있었는데, 해당 영상에는 가자지구 내에서 발사된 로켓이 위쪽으로 이동하다가 방향을 바꿔 폭발하는 모습이 담겼다. 그러면서 밤하늘에 짧고 밝은 빛의 줄무늬가 남았고, 잠시 후 알아흘리 병원을 포함한 폭발 두 건이 지상에서 목격됐다. CNN은 이를 두고 “카메라 위치를 확인한 결과 로켓이 가자지구 남쪽에서 발사된 것으로 보인다. 폭발 직전 가자지구에서 로켓이 일제 사격하는 모습이 웹캠에 남았다”고 전했다.

CNN과 인터뷰한 8명의 전문가들은 이것이 로켓 오발을 나타낼 확률이 높다고 분석했다. 영상만으론 로켓 궤적을 정밀하게 추적할 수 없어 발사된 로켓이 알아흘리 병원에 폭발을 일으킨 원인과 같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으로 볼 때는 로켓 오발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8일(현지시간) 한 소녀가 대규모 폭발로 폐허가 된 가자지구 알아흘리 아랍병원 인근에서 소지품을 챙겨 걸어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8일(현지시간) 공중에서 내려다본 가자지구 알아흘리 병원 폭발 현장. 로이터연합뉴스

미사일 전문가 마커스 쉴러는 “로켓이 오작동해 완전히 추락하지 않았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공중에서 떨어져 로켓 본체가 (병원) 주차장에 충돌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그는 “주차장에서 연료 잔여물에 불이 붙었고 자동차 등으로 옮겨가며 우리가 본 바와 같은 큰 폭발이 일어났다”고 봤다. 쉴러는 “로켓이 오작동하면 비행경로와 동작을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일반적인 분석을 적용할 순 없다”고 덧붙였다.

미 공군 대령 출신 군사분석가 세드릭 레이튼은 관찰된 공중 폭발이 “로켓 오작동과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빛줄기 또한 “고도에 도달하기 위해 로켓이 연료를 태웠던 것”이라고 해석했다.

병원 폭발 현장에 남은 분화구의 크기가 작다는 점 또한 공중 폭격이 원인일 가능성을 축소한다. 수십년 경력의 유엔 전쟁범죄 조사관 마크 가르라스코는 “가장 작은 통합정밀직격탄(JDAM)도 3m 정도의 분화구를 남긴다”며 알아흘리 병원 참사 원인은 공습이 아니라고 말했다.

과거 가자 전쟁 당시 이스라엘 측의 무기를 조사한 경력이 있는 무기전문가 크리스 콥스미스 또한 “지금까지 사진으로 본 분화구는 이 지역에서 여러 차례 투하됐던 폭탄 유형과 비교하면 충분히 크지 않다”며 공중 투하 폭탄이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했다. 전 세계 분쟁 지역에서 법의학 조사를 해 온 또 다른 전문가도 “분화구와 현장의 피해가 일반적으로 폭격 현장에서 볼 수 있는 피해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전문가들은 “현장에 잔해나 파편이 없어 확신하기는 어렵다”는 한계를 강조했다. CNN 또한 “현장에서 독립적인 조사가 허용되고 증거가 수집될 때까지 폭발의 배후가 누구인지 알아낼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전제를 덧붙였다.

전쟁 중임을 고려하면 독립적이고 충분한 조사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가르라스코는 알아흘리 병원 현장에 증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기는 항상 누가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를 알려준다. 그런데 20년 동안 전쟁 범죄를 조사하면서 무기의 잔해를 전혀 보지 못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현장에서 물리적 증거가 이렇게 부족한 것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18일(현지시간) 대규모 폭발이 일어난 가자지구 알아흘리 아랍 병원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AP연합뉴스
대규모 폭발이 일어난 가자지구 알아흘리 아랍 병원의 18일(현지시간) 현장 모습. 신화연합뉴스

이날 CNN의 분석은 알아흘리 병원에서 일어난 폭발이 이스라엘의 공습 때문이 아닐 가능성을 시사한다. 참사 이후 각국 정보기관과 유력 언론이 내놓은 분석 또한 같은 방향으로 귀결된다.

캐나다 정보당국은 알아흘리 병원 공격의 배후에 이스라엘이 없었다는 “높은 신뢰도”를 갖고 있다고 이날 밝혔다. 캐나다 국방부와 캐나다군은 성명에서 “정보사령부의 독립적인 분석에 따르면 지난 17일 가자시티에서 이스라엘이 알아흘리 병원을 공격하지 않았다는 높은 수준의 확신”이 있다고 밝혔다. 캐나다군은 기밀 정보와 오픈소스 분석 등을 토대로 폭발 원인이 가자지구에서 발사된 로켓 오발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평가했다.

앞서 AP통신 역시 “궤도를 이탈한 팔레스타인 측의 로켓 추락이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CNN 분석과 마찬가지로 가자지구에서 발사된 로켓이 가자지구 내로 떨어졌다는 추정이 핵심이다.

알아흘리 병원 참사를 둘러싸고 이스라엘은 초기부터 팔레스타인계 무장단체 이슬라믹 지하드를 배후로 지목했다. 이스라엘은 감청 등 자체 정보를 바탕으로 이번 사태가 이슬라믹 지하드의 로켓 오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역시 이스라엘의 분석을 신뢰한다며 힘을 실었다. 그러나 이슬라믹 지하드와 하마스, 아랍권 국가들은 이를 부인하며 이스라엘과 미국을 규탄하는 상황이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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