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사라진 세상?…국가가 만드는 ‘이 돈’의 미래는 [뉴스 쉽게보기]

임형준 기자(brojun@mk.co.kr), 신화 기자(legend@mk.co.kr) 2023. 10. 22.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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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기념주화 이미지. [사진출처=연합뉴스]
몇 차례의 투자 열풍과 폭락 사태를 겪으며 이제는 어엿한 투자 상품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가상자산(암호화폐). 그런데 사람들이 지난 수년간 ‘코인 대박’을 꿈꾸거나 ‘코인은 사기’라는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동안 각국 정부는 일제히 특별한 코인 연구에 몰두해 왔어요.

바로 CBDC(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예요. 나라의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코인이죠. 우리나라 통화정책을 책임지는 한국은행도 이 코인을 열심히 개발해 왔고, 드디어 ‘CBDC 활용 테스트’에 들어가겠다는 공식 발표를 했어요.

언론이나 금융계는 ‘미래 통화 인프라 구축을 위한 실험’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번 테스트에 꽤 주목하고 있어요. 디지털 화폐 시대가 생각보다 빨리 다가오고 있다는 뜻인 데다, 한국이 세계적으로도 이른 시점에 본격적인 실험을 시작하기 때문이에요.

CBDC가 뭐야?
CBDC는 우리나라 원화나 미국의 달러화처럼 국가 공식 화폐(법정화폐)이지만, 실제 종이돈이나 동전을 찍어내지 않는 디지털 화폐예요. CBDC를 발행한다는 건 우리나라에선 한국은행이, 미국에선 연방준비제도가 마치 암호화폐 같은 가상자산을 만든다는 뜻인 거죠.

CBDC는 블록체인 같은 첨단 기술이 적용된다는 점은 기존 가상자산과 유사하지만, 가치가 정해져 있어서 비트코인처럼 시세 변동은 일어나지 않아요. 정부가 보증하니까 디지털 화폐라도 실제 종이돈과 가치는 다를 게 없어요. 사실 점점 종이돈이나 동전을 사용할 일이 줄어들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실물 화폐를 덜 찍어내는 대신 CBDC가 역할을 보완할 수도 있고, 먼 미래에는 아예 CBDC만 사용할 수도 있겠죠.

지금이랑 별로 다를 게 없네?
맞아요. CBDC가 본격적으로 도입된다고 해도 우리 삶은 지금보다 조금 편해지는 정도일 수 있어요. 이미 현금보다는 신용카드가 널리 쓰이고, ‘OO페이’ 같은 모바일 결제 서비스도 보편화되어 가는 상황이니까요.

하지만 국가 차원에서는 큰 차이가 존재해요. 돈을 주고받는 거래의 비용 자체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에요. 각 나라들이 어떤 방식의 CBDC를 개발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긴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블록체인 등의 기술을 활용하기 때문에 비용 절감과 보안 유지에 유리해요. 블록체인을 활용하면 은행 같은 중개 기관이나 복잡한 서류 작업 없이도 안전하게 운영되거든요.

예를 들어 정부가 국민에게 지원금을 지급할 때나 국민이 정부에 세금을 낼 때도 여러 금융 기관을 거칠 필요가 없어요. 그저 CBDC를 넣어둔 우리 전자지갑에서 정부 지갑으로 보내기만 하면 돼요. 이러면 중앙은행이 시중 통화량을 조절하는 정책을 쓰기도 훨씬 편하고, 탈세나 불법 거래를 단속하기도 쉬워져요. 돈이 오고 가는 대부분의 거래에서 효율성이 대폭 개선되는 거죠. 물론 실물 화폐를 찍어내고 관리하는 비용도 많이 아낄 수 있어요.

은행은 필요 없어지는 거야?
시중은행들의 현금자동입출금기 <연합뉴스>
만약 CBDC를 아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극단적으로는 은행의 역할을 많이 없애버릴 수도 있어요. 다만 이번에 한국은행이 실험할 CBDC의 경우는 은행의 역할을 줄이지 않는 선에서 금융기관들끼리만 사용하는 ‘기관용 CBDC’래요.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누구나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CBDC가 ‘범용’이라면, 이번에 테스트하는 건 ‘기관용’이라는 거예요. 한국은행과 국내 은행들은 기관용 결제망에서 서로 필요한 자금을 주고받는데, 여기에만 CBDC를 적용해 본다는 뜻이에요.

물론 개인도 이번 실험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 건 아니에요. 기관용 CBDC와 함께 ‘예금 토큰’이라는 걸 테스트할 예정이거든요. CBDC는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라면, 예금 토큰은 시중은행들이 CBDC를 담보로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예요. CBDC 자체는 기관들끼리만 쓰고 소비자에게 풀지 않되, CBDC를 담보로 하는 코인(토큰)을 은행들이 다시 발행해서 소비자도 간접적으로 사용해 볼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예금 토큰은 또 뭐야?
예금 토큰은 일반적인 은행 예금처럼 쓸 수 있게 만들 거래요. 송금이나 예치 등을 최대한 기존의 예금처럼 만들어서 소비자들이 쉽게 적응하게 한다는 계획이에요.

다만 디지털 자산인 예금 토큰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예금과 달리 일종의 ‘프로그래밍’이 가능하다는 점이에요. 조금 복잡하게 들리긴 하지만, 쉽게 말해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금융기관의 개입 없이도 자동으로 거래가 이뤄지도록 설정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예를 들어 계약 조건에 따라 환급이 자주 이뤄지는 보험 계약에서는 특정 조건을 충족할 때 알아서 환급하도록 설정할 수 있죠. 마치 정보기술(IT) 서비스처럼, 프로그래밍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혁신적인 결제 서비스를 시도하고 구현할 수 있다는 게 예금 토큰의 장점이에요.

또한 예금 토큰이 대중화되면 기존에 신용카드 결제 후 3일 정도 걸렸던 ‘정산 절차’가 필요 없어져서 결제 대금을 바로 판매자에게 줄 수 있고, 결국 금융 중개기관에 덜 의존하게 되니 결제 수수료가 적어질 수도 있어요.

CBDC, 무조건 좋은 건가?
중앙은행이 신중하게 만든다고는 하지만, CBDC도 여러 부작용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가장 대표적인 게 개인정보 보호 문제죠.

이 문제는 주요국 중 가장 앞서서 CBDC 보급에 나서고 있는 중국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중국은 CBDC인 ‘디지털 위안화(e-CNY)’를 개발해 시범 운영하고 있어요. 디지털 위안화를 쓸 수 있는 장소는 지난해 말 1120만 곳까지 늘었다고 해요. 특히 올해 중국 정부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국민에게 소비 지원금(쿠폰)을 풀 때도 디지털 위안화를 썼을 정도로 적극적이에요.

이런 현상을 보며 전문가들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정부의 통제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고 우려해요. CBDC는 디지털 화폐라서 돈의 흐름을 아주 쉽게 파악할 수 있어요. 중국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기업과 개인의 거래 내역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거죠.

미국 의회에서도 최근 들어 CBDC의 개인정보 침해 가능성을 두고 격돌이 벌어지고 있어요. 한쪽은 ‘CBDC 발행이 지연되면 미국이 글로벌 영향력을 잃게 된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은 ‘프라이버시 침해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너무 위험하다’고 팽팽하게 맞서는 양상이에요.

이런 우려를 알고 있는 한국은행은 “이번 테스트에선 CBDC를 일반인에게 직접 발행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은행이 고객 정보를 볼 수 없다”고 설명했어요.
한국 CBDC 실험, 모범사례 될까요
CBDC는 지난해 말 기준 세계 중앙은행 93%가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었을 정도로 국제적 관심사예요. 바하마와 나이지리아가 범용 CBDC를 도입했지만, 경제 규모가 큰 주요국들은 도입을 검토하는 단계에 있죠. 아직 ‘국제적 표준’이 정해지지 않은 분야라는 거예요.

한국은행은 테스트가 잘 진행되면 국제적 모범사례가 될 수 있다고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론 조심스러운 입장이래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중국이 일찍 시작하긴 했지만, 주요 국가 중에 우리만큼 연구한 곳이 없다”며 자신감을 내비치면서도 “우리가 빨리했다가 미국과 유럽이 다른 시스템으로 가면 곤란해질 수 있다”고 말했어요.

이번 실험의 구체적인 방식과 참가 은행 목록 등 세부 사항은 다음 달(11월) 말쯤 공개할 예정이에요. 아마도 일반 국민이 참여하는 테스트는 내년 4분기쯤이 될 것 같대요. 디지털 화폐 시대를 선도하기 위한 한국은행의 실험, 과연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을까요?

<뉴미디어팀 디그(d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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