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인간 중심으로 생각하지 말고…홍은전의 ‘나는 동물’

이유진 기자 2023. 10. 22.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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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등급제는 장애에 등급을 매겨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다.

이 행동을 오마주해 한국의 장애인들은 '나는 개가 아니다, 나는 ○○○이다'라는 구호를 장애등급심사센터 건물 외벽에 쓰는 시위를 했다.

비장애 중심주의와 인간 중심주의 양쪽을 모두 비판하는 저자는 "나는 동물"이라고 선언한다.

동물과 장애인이 억압받는 방식은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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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장애·동물 포용하는 ‘인권·동물권기록활동가’의 <나는 동물>
동물권단체 디엑스이(DxE) 활동가가 종돈장에서 생후 2주 된 새벽이를 구조하는 모습. DxE 제공

장애등급제는 장애에 등급을 매겨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다. 국가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장애인에게 서비스를 덜 주려고 하는 일이다. 이를 비판하는 장애인권 운동가들은 시민들에게 ‘한우 1등급’ 그림을 보여주면서 서명을 받았다. “장애인은 소, 돼지가 아니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에서도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질병수당을 받느라 갖은 고난을 넘고 넘었는데 결국 돈을 받지 못한 주인공 다니엘은 사회복지제도에 환멸을 느끼고 지원기관 벽에다 스프레이로 글씨를 쓴다. 이 행동을 오마주해 한국의 장애인들은 ‘나는 개가 아니다, 나는 ○○○이다’라는 구호를 장애등급심사센터 건물 외벽에 쓰는 시위를 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했다. 동물을 차별했다는 것이다. 격렬한 설전이 오갔다. ‘개돼지’에 감정을 이입하는 존재들과 ‘우리가 지금 개돼지에게 밀린 거야?’라는 사람들 사이에는 접점이 없는 것 같았다. 링에 오른 양쪽 선수들 모두 상처를 입었다.

<나는 동물>(봄날의책 펴냄)은 인간밖에 모르던 세계가 무너진 자리에 다른 근육과 감각을 갖고 재탄생한 작가 홍은전이 쓴 책이다.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과 다른 지면에 실은 글을 함께 묶은 이번 칼럼집은 장애와 동물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2019년 고양이 카라를 입양한 뒤 홍은전의 세계는 바뀌었고 그는 ‘인권기록활동가’에서 ‘인권·동물권기록활동가’가 됐다. 비장애 중심주의와 인간 중심주의 양쪽을 모두 비판하는 저자는 “나는 동물”이라고 선언한다. 저항에 대한 또 다른 렌즈를 장착한 작가는 틈만 나면 자신의 부끄러움을 한여름 뙤약볕처럼 뜨겁게 고백한다.

책 속에는 동물권에 관한 기념비적 책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중 하나가 수나우라 테일러의 <짐을 끄는 짐승들>이다. 관절굽음증이라는 장애를 지닌 테일러는 어떤 몸을 열등하다 낙인찍고 감금하고 죽일 수 있는 존재로 간주하는 한 동물해방이든 장애해방이든 이뤄질 수 없다고 본다. 동물과 장애인이 억압받는 방식은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동물 홀로코스트>를 보며 저자는 동물의 가축화가 종차별과 인종차별의 씨앗이 됐다는 점을 깨닫는다. 미국의 도살장과 나치 독일의 가스실 공정은 똑같이 고도로 능률화됐고 탈주나 저항이 불가능하다는 측면에서 공통적이었다. 책을 읽으며 저자는 인간과 동물의 죽음이 겹쳐 보이는 환시를 느꼈다. 새끼를 빼앗기고 거세당하고 도살당하는 동물과 동물이라 칭해진 인간들이 감금되고 낙인찍히고 도륙당하는 모습은 구분이 모호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2023년 3월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앞에서 체포영장 사본을 전달받은 뒤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은전의 동지들은 집단시설 안에서 콧줄 끼고 무표정하게 누워만 있던 장애인이 탈시설 뒤 외출해서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았다.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이 지역사회로 나와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장애인 탈시설 운동’은 장애인 격리·수용의 오랜 역사를 종식하는 첫 단추지만 종교계와 가족 등 많은 저항에 부닥쳤다. 2022년 봄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는 탈시설이 ‘일부 장애계(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주장’이라며 ‘강하게 제동을 걸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탈시설 권리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 명시된 장애인의 보편적 권리다. 시설에 투입하는 자원을 증가시키거나 시설을 개조한다고 해서 비인간적 상황이 변화될 수 없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공통된 의견이다.

비장애·인간 중심주의 사회에서 ‘짐’과 ‘짐승’이라 일컫는 존재에 감정이입하는 이들은 서로 손을 맞잡을 수 있다. 이 책은 하나의 세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세계가 태어나는 이야기, 한 세계의 슬픔에 눈뜨며 그만큼의 책임감을 느끼게 됐다는 어떤 ‘인간 동물’의 어마어마한 이야기다.

강원도 인제군 꽃풀소 보금자리에서 ‘소 돌보미’ 가족인 가야(5·오른쪽)가 꽃풀소 ‘메밀’에게 바나나를 먹이고 있다. 바나나는 꽃풀소들의 인기 간식이다. 류우종 기자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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