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이번엔 中 흑연 수출통제 비상…핵심광물 근본 대책 마련해야
(서울=연합뉴스) 중국이 이차전지의 핵심 원료인 흑연에 대한 수출 통제에 나섰다. 대상은 고순도·고강도·고밀도 인조흑연과 천연 인상 흑연인 구상흑연·팽창흑연 등 3종이다. 중국은 지난 20일 이들이 군수용 전환이 가능한 품목이라면서 이번 조치가 특정 국가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국제적인 비확산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의 설명과는 달리 최근 발표된 미국의 대중 수출 통제에 대한 맞불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견제하기 위해 일정 기술 수준 이상의 생산 장비를 수출하지 못하도록 한 데 이어 지난 17일에는 사양이 낮은 AI(인공지능) 칩까지 수출 금지 대상에 포함한 바 있다. 정부는 중국의 발표 직후 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고, 미국 정부도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하며 회복력 있는 핵심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들과 협력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중국의 흑연 수출 통제는 세계를 무대로 공급망 경쟁을 벌이는 미국을 타깃으로 한 것이 분명하지만 상황이 악화할 경우 가장 큰 피해는 한국이 볼 가능성이 크다. 흑연은 이차전지의 4대 소재 중 하나인 음극재의 핵심 재료로, 우리나라는 지난해 93.7%를 중국에서 수입했다. 다만 정부는 중국의 조치가 수출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수출 허가 절차를 강화한 것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수출 통제가 시작되는 오는 12월 이전에 최대한 재고를 확보하고 이후 중국과 협의해 영향을 최소화하는 한편 공급 다변화도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내년으로 예정된 국내 인조흑연 생산 공장 가동을 최대한 앞당기고 탄자니아 등 제3국 광산과의 장기공급 계약이 조기에 이행되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그러나 현재 국내 흑연 재고량은 45일 치 정도인데 공급망 다변화에는 최소한 1~2년이 걸린다는 것이 대체적 분석이다. 중국이 앞서 갈륨과 게르마늄에 대한 수출 통제를 시행했을 때도 첫 달인 지난 8월의 수출량이 제로였다. 대중 의존도가 더 높은 흑연의 경우 타격이 훨씬 클 수 있다. 중국과의 관계가 그리 원만치 않다는 것도 걸림돌이다. 이차전지 생산 공장이 가동을 멈춰 신산업 초창기의 주도권을 잃는 일이 없도록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해 대응 시나리오를 짜야 한다.
이참에 주요 산업의 주재료로 쓰이는 핵심 광물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국가 전략을 새롭게 가다듬을 필요도 있다. 유럽연합(EU)에 따르면 주요 산업에 쓰이는 핵심 원자재 51종 가운데 33종은 중국이 세계 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0대 전략 핵심 광물로 지정한 희토류 5종과 리튬, 니켈, 코발트, 흑연, 망간 등의 대중 수입 의존도가 70~100%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광물 무기화를 갈수록 노골화하는 것은 단순한 경제적 피해를 넘어 장기적 국가 발전과 안보 측면에서 심각한 일이다. 지금까지는 요소수에서 희토류, 갈륨, 게르마늄에 이르기까지 문제가 터질 때마다 그럭저럭 위기를 넘겼으나 그것도 한두 번이다. 앞으로는 응급 처방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단기 대책과 함께 장기적,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우선은 최소한의 자생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흑연 매장량이 전 세계의 15%에 불과하지만 생산량은 60%인 중국의 사례에서 보듯, 부존자원이 없더라도 원자재 가공 능력을 제고하면 위기를 일정 부분 완화할 수 있다. 해외 자원 개발에 다시 힘을 쏟고 수입선도 다변화해 중국 의존도를 대폭 낮춰야 한다. 패권 경쟁의 당사자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미국이 주도하는 핵심광물안보파트너십(MSP)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중국과도 소통을 강화해 자원 안보의 외피를 겹겹으로 두껍게 하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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