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경의 홍익인간까지...'아라문'이 그린 만만찮은 세계의 문제의식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3. 10. 22.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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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문의 검’에 등장하는 논쟁들, 그 의미와 깊이가 다르다

[엔터미디어=정덕현] "그러니 너희는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라." tvN 토일드라마 <아스달의 검>에서 대제관 탄야(신세경)는 아스달의 왕비 태알하(김옥빈)와 치열한 대결을 벌인 끝에 그 말을 꺼내놓는다. '널리 인간 세계를 이롭게 하라.' 그건 다름 아닌 고조선 건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홍익인간의 이념이 탄야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이 장면은, 선사시대에서 국가가 탄생하는 과정을 그려낸 <아스달의 검>이 끝내 하려던 이야기를 압축해 보여준다. 아스숲에서 이나이신기 은섬(이준기)에 의해 역화공을 당함으로서 타곤(장동건)이 패전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아스달의 대혼전이 벌어진다. 그 틈에 탄야는 민중들을 이끌고 아스달을 손에 넣어 이나이신기를 맞음으로써 최소한의 희생을 치르려 하지만, 그의 앞을 태알하가 가로막는다.

태알하와 탄야가 대치해 벌이는 논쟁은 마치 아스달이라는 전쟁과 약탈을 앞세운 문명과, 형제와 동무들로 이어진 인간의 대결처럼 보인다. 문명의 힘과 욕망을 내세우는 태알하는 "무엇을 잃게 될 것인가"하고 묻지만 형제와 동무들이 만들어갈 생명의 연대를 내세우는 탄야는 "무엇을 지키고자 하는가"를 묻는다. 태알하는 자신들이 이어갈 아스달이라는 국가의 미래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하고, 탄야는 우리의 형제들과 동물들과 아이들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고 한다.

문명을 통한 강력한 군사력과, 옮고 그름을 알고 서로를 위해 용기를 내는 연대의 힘. 그 서로 다른 가치관의 대결을 태알하와 탄야는 논쟁으로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탄야가 꺼내놓은 '홍익인간'의 이념은 우리가 역사책에서 짧게 보고 넘겼던 것과는 사뭇 다른 깊이와 의미를 담는다. 그건 다름 아닌 신적인 것에 기대던 삶이 아니라, '인간이 서로를 위하고 이롭게 하는 것'으로서의 삶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기적은 내가 일으킨 것이 아니라 너희가 일으킨 것이다. 또한 나의 소리가 신의 소리가 아니라 너희의 소리가 신의 소리다. 보아라. 신은 자애롭지 않다. 자애로운 것은 너희 사람이다. 신은 돕지 않는다. 서로 돕는 것은 오로지 너희 사람이다. 너희들이 나고 자라고 사는 그 모든 것 중에 사람에 기대지 않는 것이 하나라도 있느냐? 그러니 너희는 서로 돕고 자애로우라. 그것이 너희를 돕는 것이다. 또한 너희들이 먹고 자고 입는 그 모든 것 중에 세상에 기대지 않는 것이 하나라도 있느냐 그러니 너희는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라.

그렇게 홍익인간을 주창함으로써 군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지만 아스숲에서 살아 돌아온 타곤은 무력으로 다시 아스달을 장악하고 탄야와 그를 따르는 이들을 반역자로 내몰아 성벽에 세운다. 와한족 사람들을 하나하나 죽이고 끝내 탄야를 죽음 앞에 세움으로써 아스달을 향해 다가오는 이나이신기가 이끄는 아고족 연합을 멈춰 세운다. 탄야는 마치 인간을 구원하러 온 예수처럼 성벽 말뚝에 세워진다. 과연 탄야는 끝내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부활시킬까.

<아라문의 검>에 등장하는 탄야와 태알하가 벌이는 이런 논쟁은 김영현, 박상연 작가가 그려온 사극들에서 익숙하게 등장하는 장면 중 하나다. <선덕여왕>에서 덕만(이요원)과 미실(고현정)의 논쟁이 그것이고, <뿌리 깊은 나무>에서 이도(한석규)와 정기준(윤제문)의 논쟁이 그것이다. 사극을 통해 논쟁적인 이슈들의 대결을 줄곧 끄집어내온 김영현, 박상연 작가는 이번 <아라문의 검>에서도 이러한 서로 다른 가치관이 대결하는 장면을 끄집어낸다.

마찬가지로 뇌아탈인 로띱이 같은 종족이지만 일찍이 갈라져 다른 곳에 이르케벡이라는 문명을 세우고 아스달까지 넘보기 위해 들어온 에크나드를 만나 벌이는 문명과 자연에 대한 논쟁도 흥미롭게 다뤄진다. 마치 인디언들을 모델로 한 듯한 로띱은 문명이란 자신들을 가두는 감옥이라며 "드넓고 거대한 대자연 어머니의 품만이 자유롭다"고 말하지만, 에크나드는 자연이 오히려 감옥이고 문명만이 진정한 자유를 준다며 이렇게 대꾸한다. "독수리가 바다를 거닐고 곰이 숲을 떠날 수 있나? 해바라기가 달을 향해 고개를 들 수 있나? 자연이라야말로 보이지 않는 수만 개의 벽에 모두를 가둔다. 문명은 그 수많은 벽을 부수고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준다."

<아라문의 검>이 그린 세계가 그저 근거가 희박한 공상과 상상에만 의지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이들 논쟁 장면들은 극명하게 드러낸다. 신에 의지하던 세계에 등장한 홍익인간이라는 새로운 가치관은 작품 속 탄야의 목소리를 통해 전해질 때 남다른 무게감이 느껴진다. 로띱과 에크나드가 벌이는 자연과 문명에 대한 논쟁도 마찬가지다. 에크나드의 그 말에 로띱이 "높고 낮음을 나누고 뒷줄을 생명을 짓밟은 채 맨 앞에 선 자들만이 누리는 그런 자유"는 위험하다며 그를 막아 세우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사야(이준기)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는 로띱의 모습에서 자연의 삶을 살아오며 문명과 대결하려 했지만 끝내 무너져버린 인디언들이 모습이 겹쳐져 보인다.

수천 년 전을 배경으로 하고 그 신화적 세계를 판타지로 그려낸 작품이지만 이런 논쟁들은 지금 우리에게도 전하는 울림이 적지 않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여전히 '신의 이름'을 호명하고 있지 않은가. 문명이 끝내 폭발시킨 욕망 속에서 몸살을 앓고 있는 자연은 결국 자연의 일부인 인간의 삶을 오히려 감옥 속에 가둬주고 있지 않은가. 신화의 세계에서 문명과 국가가 탄생하는 그 지점까지 거슬러 올라간 <아라문의 검>이 만만찮은 세계를 그려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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