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서 못판다"…가동율 108%, LS전선 해저케이블 전용공장 가보니
#지름 42m의 거대한 턴테이블(회전 장치)에 해저케이블 3000t(톤)이 휘감겨져 있었다. 지난 19일 찾은 강원도 동해시 LS전선 동해공장 한 켠에서 미국 수출을 기다리고 있는 물량이다. 270kV(킬로볼트) 규모 초고압으로 일반 케이블보다 값이 2~3배는 비싼 '귀한 몸'이다. 밀려드는 해저케이블 주문 탓에 공장 곳곳에선 대화하기 조차 어려울 정도의 굉음이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이날도 공장 인근 동해항에선 제작을 완료한 또 다른 7.2㎞짜리 해저케이블이 LS마린솔루션의 전용 선박에 탑재되고 있었다. 길이에 따라 선박에 완제품을 싣는데만 2~3일에서 길게는 보름까지 걸린다. 케이블을 천천히 운반하는 이유는 미세한 제품 손상을 막기 위해서다.
LS전선 동해공장은 해저케이블을 주력으로 생산하고 있다. 해저케이블은 이 공장 전체 매출액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제품이다. 해저케이블 전용으로 만들어진 4공장은 연면적이 3만4816㎡(약 1만500평) 규모다. LS전선은 2008년 국내에서 처음 해저케이블 전용 공장을 추진해 지난해까지 8555억원을 투자했다. 올해 상반기 기준 수주 잔고는 3조7949억원에 달한다.
이 날도 동해공장에선 해저케이블이 쉴새 없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올해 상반기 초고압 케이블 가동률은 108%에 달한다. 수십가닥의 구리선을 꼬아 전기가 흐르는 길을 만들고, 초고압에도 견딜 수 있도록 하는 화학처리까지 6단계를 거치면 두께 30㎝ 안팎의 두툼한 해저케이블이 만들어진다. 송전효율이 높은 고부가가치 제품 HVDC(초고압직류송전) 해저케이블도 눈에 띄었다.
HVDC 해저케이블은 올해 5월 준공된 VCV타워에서 주로 제작된다. 해저케이블 전용 공장과 연결된 VCV타워는 아파트 63층 높이인 172m 규모로 한번에 수십km를 끊김없이 연속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이다. 아시아에서 최대 규모다. 동해안에서 가장 높은 건물 중 하나인 VCV타워에선 인근 전경부터 먼 바다까지 훤히 보일 정도였다. LS전선은 VCV타워에 1900억원을 투자했다.
수직으로 해저케이블을 만드는 이유는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초고압 케이블은 내부에 작은 기포·이물질이 있으면 폭발 위험이 커지는데, VCV타워에선 중력방향으로 고르게 성형할 수 있고 절연체 분포도 쉽다. 해저케이블은 육지-섬을 연결하거나, 해상풍력단지의 전력을 수송하는데 쓰인다. 주로 국가·지역 간 전력망 공급에 사용된다. 만약 전력 공급에 문제가 생기면 막대한 피해가 불가피하다.
해저케이블의 품질이 안정적인 전력망 운용을 좌우하게 된다. 여상철 LS전선 공장장은 "초고압 해저케이블은 한 번 포설하면 20~30년 가량 사용되고 유지보수도 까다롭기 때문에 제조·운반 과정의 안정성을 최대한 높여야 한다"며 "아주 작은 기포나 먼지가 하나라도 들어가면 수년 뒤라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완성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완성된 해저케이블은 직선으로 700m 거리의 동해항에 정박한 전용 선박으로 향했다. 동해항을 끼고 있는 LS전선 동해공장은 해저케이블 제조·운반이 한 번에 가능한 복합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운반은 공장부터 동해항까지 연결 돼 있는 전동 이동장치로 한번에 진행된다. 케이블 무게도 무겁지만 운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최소화 하기 위한 장치다.
동해항에선 LS마린솔루션이 보유한 특수선 GL2030에 해저케이블 선적을 진행 중이었다. GL2030은 4000톤의 해저 케이블을 나를 수 있는 8000톤급 배다. 선적이 시작되자 60명의 선원은 초긴장 상태. 육중한 해저케이블이 턴테이블에 조금씩 말려 들어가기 까지 선원들의 무전 소리가 분주했다. 김동욱 LS마린솔루션 차장은 "작업이 마무리 되기까진 이틀 넘게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LS전선은 동해 공장에 대한 후속 투자도 진행할 방침이다. 1555억원의 해저케이블 제조 설비를 확충해 글로벌 경쟁업체와 격차를 벌이겠다는 계획이다. 세계에서 해저케이블 전문 업체로 불리는 곳은 LS전선을 비롯해 프랑스의 넥상스, 이탈리아의 프리즈미안, 독일의 NKT 등 4곳이 손꼽힌다. LS전선의 장점은 뛰어난 가격 경쟁력과 제조·운반·포설까지 턴키(일괄)로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장기적인 해저케이블 시장의 전망은 밝다. 베트남·대만 등 아시아를 중심으로 미국으로 수요가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 따르면 아시아 해저케이블 시장 규모는 올해 15억7000만 달러에서, 2027년 24억2000만 달러로 60% 가량 커질 전망이다. 미국은 노후 전력망을 교체하면서 해상풍력단지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LS전선 관계자는 "수주 제안이 오는 곳 중에서 선별적으로 진행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해(강원)=이재윤 기자 mto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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