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쎈여자 강남순》, 주말드라마 코드와 히어로 소재의 ‘찰떡 케미’
(시사저널=하재근 국제사이버대 특임교수)
JTBC 토일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의 시청률이 급상승하고 있다. 10월7일 첫 방송은 시청률 4.3%로 무난하게 출발했다. 2회에 6.1%로 올라가더니 3회엔 8%, 4회엔 9.8%로 뛰어올랐다. 이대로라면 10% 돌파는 시간문제로 보인다.
선천적으로 놀라운 괴력을 타고난 3대 모녀가 서울 강남의 신종 마약 범죄를 파헤친다는 설정이다. 2017년에 방송된 《힘쎈여자 도봉순》의 후속이다. 당시 그 작품은 체구가 작은 여성이 괴력의 소유자라는 설정으로 웃음과 통쾌함을 안겨줬다. 시청률 9.7%까지 찍으며 히트작 대열에 올랐고 해외에서도 주목받아 할리우드 리메이크가 확정됐다.
그 작품의 후속으로 《힘쎈여자 강남순》이 등장한 것인데 불과 4회 만에 전작의 시청률을 뛰어넘었다. 넷플릭스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글로벌 TV쇼 부문 4위에 올랐다. 한국, 볼리비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나이지리아, 페루, 필리핀, 대만, 태국, 베트남 등에서 넷플릭스 시청 순위 1위에 올랐다. 세계적인 모델 나오미 캠벨이 보그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요즘 《힘쎈여자 강남순》을 즐겨 보고 있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버닝썬' 사건 당시 강남 클럽가에 만연한다는 마약 범죄에 대중이 공분했었다. 하지만 승리 같은 연예인만 부각됐을 뿐 '버닝썬' 마약 범죄의 실체는 미궁 속에 묻혔다. 이에 대한 아쉬움이 큰데 그것이 대중문화 콘텐츠에 반영되고 있다. 그래서 《힘쎈여자 강남순》처럼 강남 신종 마약 카르텔에 철퇴를 가하는 드라마가 등장하는 것이다. 대중의 분노를 반영하면서 통쾌한 대리만족을 선사하는 설정이다.
확장된 세계관에 시청자들 호응
《힘쎈여자 강남순》은 《힘쎈여자 도봉순》보다 판을 더 키웠다. 《힘쎈여자 도봉순》에선 괴력의 히어로가 도봉순 한 명이었지만 이번엔 강남순을 비롯해 어머니, 할머니까지 모두 히어로다. 젊은 세대, 중년 세대, 노년 세대의 히어로를 내세워 전 세대 시청자를 아우르는 것이다. 또 이들이 모두 여성이기 때문에 드라마 주 시청층인 여성의 공감을 더 쉽게 이끌어낼 수 있다. 체구가 작은 여성이 엄청난 괴력으로 덩치 큰 범죄자들을 날려버린다는 게 핵심 포인트다. 뉴스 속 사건에선 범죄자 남성에게 여성이 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 '힘쎈여자' 시리즈에선 그 구도를 전복시켜 시청자에게 쾌감을 안긴다. 걸크러시 열풍하고도 맞물려 《힘쎈여자 도봉순》이 주목받았는데, 《힘쎈여자 강남순》은 노년·중년 여성까지 추가로 등장시켜 걸크러시의 에너지를 더욱 키웠다.
강남순 어머니 역할의 김정은은 "여성이 사회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는데, 그것을 뒤틀어버리는 설정이 굉장한 카타르시스"라고 했다. 강남순 할머니 역할의 김해숙은 "우리 작품에는 할머니 히어로가 나온다. (할머니 히어로가) 젊은이들과 똑같이 뜨거운 사랑을 찾는다"고 말했다. 시청률이 폭발적으로 상승한 걸 보면 전작보다 판을 키운 전략이 맞아떨어진 것 같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되는 히어로 액션이 시원시원한 시각적 쾌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B급 코미디 느낌이어서 부담 없이 가볍게 보기에도 좋다. 신데렐라 코드도 등장했다. 강남 부잣집 딸인 강남순은 아기 때 몽골에서 부모를 잃어, 몽골 초원에서 양을 치는 양부모 밑에서 궁핍하게 자랐다. 한국에서 친어머니를 찾으며 일약 인생 역전을 하게 되는데 이런 설정도 오랫동안 시청자의 사랑을 받는 코드다.
전작이 도봉구 서민을 내세운 데 반해 이번엔 강남 부잣집이 주인공의 집안이어서 시청자의 몰입이 힘들 수도 있었다. 금수저 주인공에게 거리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주인공이 몽골에서 양치기로 자란 매우 순수하고 소박한 사람이라는 설정으로 피해 갔다. 그러면서 이번 작품이 내세운 회심의 카드는 바로 가족 코드다. 전작은 히어로가 젊은 도봉순 한 명이어서 주중 미니시리즈 분위기였지만, 이번엔 3대가 함께 등장해 주말드라마 분위기를 형성했다. 주말드라마 시청층에게 익숙한 구성이다.
이 가족 코드, 그리고 그것을 포함한 평범한 인간사의 희로애락이 짙게 느껴지는 그런 설정이 해외에서도 주목받는다. 서구 히어로들은 가정 문제나 평범한 삶의 문제에서 분리돼 악만 징치하지만, 한국 히어로는 끈끈한 가족 관계 속에 있고 남들처럼 평범한 일상적 문제로 고민한다. 최근 격찬 받은 《무빙》에서도 히어로들의 가족 관계나 소소한 사랑 이야기가 밀도 높게 그려진 바 있다.
또 다른 K히어로 시리즈가 자리 잡을까
《힘쎈여자 강남순》도 그런 가족 코드를 내세웠다. 그런데 《무빙》의 가족 코드에 비해 더 신파적이다. 잃어버린 강남순을 찾았을 때 그 가족들이 우는 모습을 한참 보여주며 시청자의 눈물을 자아내는 듯한 장면이 나왔다. 이런 걸 보고 흔히 신파라고 하는데 주말드라마에서 사랑받는 전통적 흥행 코드다. 히어로 소재와 주말드라마 코드가 만난 셈이다. 이것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앞에서 이 작품이 넷플릭스에서 1위에 오른 나라들을 소개했는데 모두 동양권 또는 중남미 지역이다. 동양적 코드에 상대적으로 더 익숙한 나라들인 것이다.
가족 코드가 북미 등 서구권에선 이국적인 풍경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이 작품이 전통적 가족 휴먼 코드를 표현하면서도 경쾌한 코미디와 통쾌한 액션까지 잘 구현한다면 서구권에서도 주목받을 수 있을 것이다. 4회까지는 주인공이 친부모를 찾아가면서 신데렐라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그렸고, 가족의 눈물도 등장했다. 앞으론 판이 달라진다. 이제부턴 주인공이 마약 조직에 잠입해 본격적으로 마약 수사에 나선다. 4회까지 친어머니를 찾는 이야기는 고구마 전개 없이 시원하게 질주했다. 앞으로 범죄 조직과의 대결이 얼마나 통쾌하게 그려지느냐에 따라 중후반의 상승 탄력이 결정될 것이다.
러브 라인의 향방도 중요하다. 강남순 역의 이유미와 형사 역의 옹성우가 러브 라인을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관계가 얼마나 풋풋, 달달, 설레게 표현되는지도 작품의 성공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유미는 《오징어 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 등으로 널리 이름을 알리기는 했지만 주로 어두운 이미지로 각인됐다. 《힘쎈여자 강남순》에서 모처럼 새로운 이미지로 성장할 기회를 잡았다. 이유미의 변신이 성공하면 작품도 성공하고 이유미도 더욱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해외 스타성도 기대된다. 《힘쎈여자 강남순》의 상승세는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까? 또 다른 K히어로 시리즈가 자리 잡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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