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에 진정까지?”…이래서야 보험 가입할 수 있겠나 [어쩌다 세상이]

전종헌 매경닷컴 기자(cap@mk.co.kr) 2023. 10. 2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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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 3년 지난 보험도 고지의무 ‘꼬투리’
선량한 보험가입자 보험사기 몰아 ‘압박’
[사진 제공 = 연합뉴스]
보험계약자는 보험가입 전 보험사에게 피보험자(보험사고 대상자)가 수술, 입원, 투약 등 치료를 받은 사실이 있다면 알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상법은 이것을 ‘고지의무’라고 하고 보험약관에서는 ‘계약 전 알릴의무’라고 표현합니다.

피보험자의 모든 치료 이력을 알릴 필요는 없으나 보험계약청약서에 기재된 질문에 해당하는 내용이 있다면 이에 대해서는 성실히 답변해야 합니다. 만일 질문에 거짓으로 답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한 상태로 계약을 체결한 경우 보험사는 그 사실을 알게 된 날로부터 1개월 내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있습니다. 보험금 지급 사유가 발생해도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고지의무 위반이 있다고 하더라도 보험사가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없고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먼저 상법에 따라 보험계약을 체결한 지 3년이 지났다면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보험약관에 따르면 보험사가 고지의무 위반 사실을 계약 체결 당시 이미 알았거나 과실로 알지 못한 경우, 제1회 보험료를 받은 때로부터 보험금 지급 사유가 발생하지 않고 2년이 지난 경우, 보험설계사가 계약자 등에게 고지할 기회를 주지 않았거나 고지하는 것을 방해한 경우에 해당한다면 마찬가지 보험사는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없고 보험금도 지급해야 합니다.

이 외에 고지의무를 위반한 경우라 하더라도 보험사는 계약자가 고지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보험사고 발생에 영향을 미쳤음을 증명하지 못했다면 보험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상법과 보험약관은 고지의무를 위반했다고 하더라도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 여러 경우를 정해 두고 있습니다. 고지의무를 위반했다고 해서 그것만 가지고 바로 보험금을 지급받지 못하게 되고 여기서 더 나아가 형사적으로 사기죄로까지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대법원은 고지의무 위반이 사기가 되려면 보험사고가 이미 발생한 사실을 숨기고 보험에 가입하거나, 보험사고가 발생할 개연성이 농후함을 알고도 보험계약을 체결하는 등 그 행위가 보험의 본질인 ‘우연성’을 해할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보험사들이 고지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보험소비자들을 보험사기로 고소하는 경우가 종종 확인되고 있습니다.

보험금 청구했다가 형사재판 처지
손해보험사 사례를 하나 소개합니다.

A씨는 10년 전 간염으로 진단을 받고 꾸준히 병원을 방문하며 약을 투약 중이었습니다. 보험에 가입하기 약 3년 전 건강검진 과정에서 CT촬영을 한 적이 있었지만, 특별히 의사로부터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을 들은 사실이 없고, 병원의 치료 내용에도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몸에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보험에 가입한지 3년이 될 무렵 A씨는 갑자기 배에 물이 차고 피를 토하게 됐습니다. A씨는 병원을 찾았고 CT촬영을 했더니 간이식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게 됐습니다. 이후 A씨는 간이식 수술을 받았고 보험사에 관련 보험금을 청구했습니다. 이때는 이미 A씨가 보험에 가입한지 3년이 지나버렸기 때문에 보험사는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고 A씨가 고지의무를 위반해 보험에 가입한 후 보험금을 청구했다는 이유로 경찰서에 A씨를 보험사기로 조사해 달라는 진정을 제기했습니다. 안타깝게도 A씨는 형사재판을 받게 됐습니다.

법무법인 한앤율 한세영 변호사는 “A씨가 꾸준히 치료를 받아왔음에도 보험사에 알리지 않은 부분은 고지의무 위반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이것이 보험사기가 되려면 A씨가 보험가입 시점에 ‘내가 곧 간이식을 받을 정도의 상태가 될 개연성이 농후하다’는 점을 인지한 상태였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A씨에게 고지의무 위반은 인정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넘어 보험사기까지 인정하는 것은 다소 무리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A씨가 보험가입 3년이 지나 보험금을 청구한 만큼 결과적으로 보험사가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하거나 보험금 지급을 거절할 수는 없다는 설명입니다.

법조계에 따르면 보험소비자들을 압박하기 위해 최근 보험사들이 고지의무 위반을 문제 삼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심지어 보험가입 후 3년이 지난 계약도 보험금 지급 책임을 면하기 위해 경찰서에 진정을 넣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한 변호사는 “고지의무 위반이 곧 보험사기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서 수사기관이 깊은 이해를 가지고 수사에 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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