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어른 허리만한 해저케이블이 1분에 1m씩...‘느림의 미학’에 ‘러브콜’ 쇄도

권준호 2023. 10. 22.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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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전선 직원들이 강원도 동해 사업장에서 해저케이블 상태를 보고 있다. LS전선 제공
[동해(강원)=권준호 기자] 19일 방문한 강원도 동해 LS전선 해저케이블 2공장. 지름 30㎝, 어른 허리만한 해저케이블이 턴테이블(케이블을 감고 푸는 설비) 위에서 통전 시험(전선 끝에서 끝까지 전류를 흘려보내는 시험)을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이미 스프링처럼 감겨 있는 탓에 움직이는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최대 1만t에 달하는 케이블 무게와 여섯 개가 넘는 공정 과정은 느린 생산 속도를 예상하기 충분했다. 김진석 LS전선 설비효율화팀 팀장은 “모든 과정을 고려하면 통상 해저케이블 생산 속도는 1분에 1m가량”이라며 “최대 수백㎞ 제품도 있어서 느려 보일 수 있지만, 속도보다는 품질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생산된 해저케이블은 ‘갱웨이’라는 이동로를 거친 뒤 근처 항구에 있는 포설선(케이블을 싣고 해저에 설치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된 배)에 실렸다. 배에 실리는 속도도 1분에 8m, 1초에 13㎝에 불과했다.

2008년부터 투자한 해저 사업비, 8000억 '훌쩍'
LS전선 동해 해저케이블 사업장은 총 4개로 연면적은 국제 규격 축구장(7140㎡)의 약 38배인 27만㎡에 달한다. 이 가운데 1공장은 2009년 11월, 4공장은 올해 5월 준공됐다. 4공장에 투자된 금액 2000억여원에 최근 관련 설비 인프라 증설을 위해 투입된 1555억원을 합하면 LS전선이 2008년부터 투자한 해저 사업비는 8000억원이 훌쩍 넘는다.

4공장의 가장 큰 특징은 초고압직류송전(HVDC) 해저케이블을 전용으로 생산한다는 점이다. HVDC 해저케이블은 전선 및 케이블 제품 중에서도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뽑힌다.

여기에 지난 5월 지어진 172m 초고층 생산타워(VCV 타워)와 연결된 모습도 눈에 띄었다. VCV 타워는 HVDC 해저케이블 생산의 핵심인 ‘수직연속압출시스템’이 장착된 건물이다. 김 팀장은 “해저케이블은 지름 30cm 내외 케이블을 한 번에 수십㎞까지 끊기지 않고 생산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VCV타워는 케이블 원재료를 중력 방향으로 고르게 변형해 완성품 품질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LS전선은 이러한 기술력을 인정받아 올해 5월 네덜란드 국영전력회사 테네트와 2조원대 HVDC 해저·지중 케이블 공급사업을 수주했다. 이밖에도 대만 장화현 해상풍력단지, 영국 북해 뱅가드 풍력발전단지 등에도 해저케이블을 공급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LS전선의 수주잔고는 3조7949억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2조8698억원) 대비 32.2% 늘었다.

사업 초 시행착오도..."부품 구해 뜯어도 봤다"
물론 시행착오도 있었다. 2000년대 초반 해저케이블 기술력이 월등하게 앞선 곳은 유럽이었는데, 이를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 팀장은 “사업 진입 초 정말 어려운 점이 많았다”며 “배우고 싶어도 가르쳐 주는 곳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정말 어렵게 해외에서 부품을 구하면 말 그대로 하나 하나 뜯어보기도 했다”면서 “당시 매일 야근은 당연한 일이었다”고 덧붙였다.

현재 공장 내 모든 설비는 국산화된 상태다. 그는 “가장 자랑스러운 설비는 2공장에 있는 1만t 규모 턴테이블”이라며 “1만t 규모 케이블을 기구(턴테이블) 위에 올리고 안정적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바닥 레벨 밸런스를 기가 막히게 잡아야 한다. 단순해 보이지만 굉장히 어려운 기술”이라고 했다.

기술력을 증명하자 제품 구매뿐만 아니라 합작공장(JV)을 짓자는 ‘러브콜’도 이어지고 있다. 김형원 LS전선 에너지·시공사업본부장(부사장)은 “LS전선 기술을 가지고 각 권역에서 공장을 지어보겠다는 파트너들이 많다”며 “미국, 유럽, 베트남뿐 아니라 중동 등 지역에서도 제안이 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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