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에게 성추행 당해"…직장인 젠더감수성 '낙제점'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젠더감수성(성차별감수성) 지수가 '낙제점'을 받았다. 일터에서 약자일수록 성차별과 젠더폭력에 더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갑질119와 아름다운재단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젠더감수성 지수를 사상 처음으로 조사한 결과, 100점 만점에 73.5점을 기록해 'C등급'을 받았다.
젠더감수성 지수는 입사에서 퇴사까지 직장에서 겪을 수 있는 주요 성차별 상황을 20개 문항으로 만들어 각 항목별로 동의하는 정도를 5점 척도로 수치화하고, 이를 더해 점수로 나타낸 것이다. 점수가 낮을수록 응답자의 직장이 젠더감수성이 부족한 공간이라는 의미다.
20개 지표 가운데 주요직책(58.4점), 모성(60.3점), 채용(63.8점), 노동조건(64.3점), 승진(64.7점) 부문에서 모두 70점이하를 기록, 전체 평균을 밑돌았다. 특히 임신·출산·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사용하기 어렵다는 '모성' 부문은 하위 2위를 차지했다.
반면, 성적인 동영상·사진·짤을 보거나 주고받는다(성희롱②, 82.8점)거나 친한 동료들의 단톡방에서 성적 대화가 오간다(성희롱③, 81.8점), 사적인 만남을 요구하거나 원치 않는 구애를 한다(구애, 81.4점), 원치 않는 상대와 사귀라고 하거나 소문을 낸다(짝짓기, 81.4점), 성별을 이유로 한 해고(해고, 80.3점) 등은 전체 평균 대비 높게 나타났다.
고용형태가 불안정한 직장인들이 성희롱과 성차별에 더 노출되어 있고, 친절·구애·짝짓기와 같은 젠더폭력에 보다 취약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평균 점수 격차는 6.7점으로, 격차가 특히 큰 항목은 호칭(11.2점 차이), 성희롱③-성적 대화(10점 차이), 성희롱②-야동(9.5점 차이), 친절 강요, 구애 강요, 짝짓기 강요(9.4점 차이) 순이었다.
일반사원과 상위관리자의 점수 격차가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나타났고, 연령대로 보면 20대와 50대의 격차가 사생활 간섭(8.5점 차이), 외모(4.9점) 부문에서 커졌다. 즉, 20대는 50대보다 직장에서 외모를 지적받거나, 사생활에 대한 질문을 더 많이 받고 있었다.
임금이 낮을수록 젠더감수성 지수도 떨어졌다. 임금이 월150만원 미만인 직장인의 직장 내 젠더감수성 지수는 500만원 이상인 직장인보다 평균 5.3점 낮았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의 경우 '임신·출산·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사용하기 어려운지'를 물어본 모성 지표 점수가 48.5점으로 유독 낮았다.
또 300인 이상 사업장은 직책 지표 점수가 50.4점, 승진 지표 점수가 60점으로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규모가 큰 직장에 다니는 직장인들이 성별을 이유로 한 교육, 배치, 승진 차별 문제를 더 강하게 체감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직업별로 보면 사무직(76.1점)보다 비사무직(71점)의 점수가 전반적으로 낮았다. 특히 호칭(10.3점 차이)에서 큰 격차를 보였는데, 산직과 서비스직 등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은 사무직보다 일터에서 직급, 직책이 아닌 아줌마, 미스김, 아저씨 등 특별 성별을 지칭하는 호칭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었다. 성희롱, 구애 관련 지표에서도 비사무직은 사무직보다 8~9점 가량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한 여성 사례자는 이메일 제보를 통해 "워크숍 자리에서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며 "허벅지에 손을 올리고 블루스를 추자고 허리를 잡았다. 다른 워크숍에서는 술을 따라주는 제 손을 잡기도 했다"고 피해 사실을 털어놨다.
이번 조사에서 활용된 젠더감수성 20개 문항은 모두 직장에서 발생해서는 안 되는 항목들로, 대부분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하는 불법 사항들이다. 직장갑질119 측은 "90점 이상이 나와야 정상적인 젠더감수성을 갖춘 일터라고 할 수 있는데, 평균점수가 73.5점에 그쳤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일터가 이미 법과 제도로 규율하고 있는 기본 상식조차 지키지 않는 성차별·젠더폭력 무법지대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직장갑질119 박은하 노무사는 "직장 내 젠더 감수성 지수 설문 결과는 직장인들이 스스로 자신의 직장에 성차별적 문화가 있는지 돌아보고 평가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누구나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 정부가 구조적 성차별을 인식하고 개선방안을 모색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장영준 기자 jjuny54@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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