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산증인’ 박현숙 기자실장 퇴직…“즐기면서 일했다”
고용노동부가 서울 영등포구에 있었던 1984년, 박현숙 노동부 기자실장(57·사무운영주사)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뒤 여느 친구들처럼 은행 입사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아버지 친구가 노동부 취업을 권유했다. 그땐 이 권유가 39년간의 노동부 근무로 이어질 줄은 미처 몰랐다.
박 실장은 그해 5월 첫 출근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첫 부서는 공보실(현 대변인실)이었다. “엄청 쫄아 있었어요. 정장을 빼입고 갔었는데 많이 촌스러웠을 거 같아요.”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했던 박 실장은 이듬해인 1985년 11월1일 고용직 공무원으로 정식 발령이 났다. 공보실 근무를 이어갔던 박 실장은 새벽같이 나와서 기사 스크랩을 하고, 퇴근 땐 봉투에 담긴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직접 전하는 일도 맡았다.
박 실장은 노사협의과, 감사관실, 근로기준과를 거쳐 1995년 다시 대변인실로 돌아왔다. 대변인 비서로 일하던 중 기자실장 자리가 공석이 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박 실장은 당시 대변인에게 “가고 싶다”며 손을 들었다. 빠르게 돌아가는 기자실 분위기가 자신과 맞을 것 같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기자실장이 된 이후 박 실장은 생활 패턴도 기자들과 맞춰나갔다. 수영장을 가든 목욕탕을 가든 마트를 가든 노트북을 곁에 뒀다. 출입기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단체 발송하려면 노트북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30년 가까이 기자실을 지킨 박 실장은 한국에서 노동 기사를 가장 많이 읽은 사람 중 한 명이다. 노동에 대해선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을까. “정부가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라고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동자 스스로가 내 노동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존중할 때 사회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박 실장은 “청춘을 바친 노동부”에서 퇴직하면 기자실에서 보냈던 일상이 그리울 거라고 말했다. “사건 터지고 수습하고 그 매일 매일의 일상이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아요. 언제 그렇게 바쁘게 살아보겠어요.”
개인 사정으로 정년을 다 채우지 못하게 된 박 실장은 지난 19일 마지막 출근을 했다. 그는 아쉬움의 눈물을 보였지만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고 했다. “일하다 보면 지겨울 수도 있는데 그런 걸 못 느낄 정도로 즐기면서 일했어요. ‘노동부 기자실 분위기 좋다’는 말을 들을 때 제일 보람을 느꼈죠. 고마운 마음, 많이 받고 떠납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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