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산증인’ 박현숙 기자실장 퇴직…“즐기면서 일했다”

김지환 기자 2023. 10. 22. 12: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박현숙 고용노동부 기자실장이 지난 10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기자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노동부 제공

고용노동부가 서울 영등포구에 있었던 1984년, 박현숙 노동부 기자실장(57·사무운영주사)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뒤 여느 친구들처럼 은행 입사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아버지 친구가 노동부 취업을 권유했다. 그땐 이 권유가 39년간의 노동부 근무로 이어질 줄은 미처 몰랐다.

박 실장은 그해 5월 첫 출근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첫 부서는 공보실(현 대변인실)이었다. “엄청 쫄아 있었어요. 정장을 빼입고 갔었는데 많이 촌스러웠을 거 같아요.”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했던 박 실장은 이듬해인 1985년 11월1일 고용직 공무원으로 정식 발령이 났다. 공보실 근무를 이어갔던 박 실장은 새벽같이 나와서 기사 스크랩을 하고, 퇴근 땐 봉투에 담긴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직접 전하는 일도 맡았다.

박 실장은 노사협의과, 감사관실, 근로기준과를 거쳐 1995년 다시 대변인실로 돌아왔다. 대변인 비서로 일하던 중 기자실장 자리가 공석이 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박 실장은 당시 대변인에게 “가고 싶다”며 손을 들었다. 빠르게 돌아가는 기자실 분위기가 자신과 맞을 것 같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기자실장이 된 이후 박 실장은 생활 패턴도 기자들과 맞춰나갔다. 수영장을 가든 목욕탕을 가든 마트를 가든 노트북을 곁에 뒀다. 출입기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단체 발송하려면 노트북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30년 가까이 기자실을 지킨 박 실장은 한국에서 노동 기사를 가장 많이 읽은 사람 중 한 명이다. 노동에 대해선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을까. “정부가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라고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동자 스스로가 내 노동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존중할 때 사회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박 실장은 “청춘을 바친 노동부”에서 퇴직하면 기자실에서 보냈던 일상이 그리울 거라고 말했다. “사건 터지고 수습하고 그 매일 매일의 일상이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아요. 언제 그렇게 바쁘게 살아보겠어요.”

개인 사정으로 정년을 다 채우지 못하게 된 박 실장은 지난 19일 마지막 출근을 했다. 그는 아쉬움의 눈물을 보였지만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고 했다. “일하다 보면 지겨울 수도 있는데 그런 걸 못 느낄 정도로 즐기면서 일했어요. ‘노동부 기자실 분위기 좋다’는 말을 들을 때 제일 보람을 느꼈죠. 고마운 마음, 많이 받고 떠납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