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엘렉트라' 한국 초연…치밀한 구조·명료한 전개로 재미
(대구=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살로메'와 더불어 서양음악사의 한 획을 그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엘렉트라'가 한국 오페라 75년 역사상 최초로 대구국제오페라축제 무대에 올랐다.
작품은 트로이전쟁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아가멤논 왕이 자기 아내 클뤼템네스트라와 그 정부의 손에 잔혹하게 살해된 후, 아버지를 위한 복수를 벼르던 딸 엘렉트라가 마침내 집에 돌아온 남동생 오레스트의 손으로 복수를 이룬다는 내용이다.
대구오페라하우스와 불가리아 소피아국립오페라발레극장이 함께 제작한 이번 프로덕션에서는 소피아극장장 플라멘 카르탈로프가 연출을 맡아 작품을 처음 만나는 한국 관객들에게 전율과 감동을 안겼다.
지난 21일 대구오페라하우스를 가득 메운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은 중간휴식 없는 공연 시간 110분 동안 하나같이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카르탈로프 연출의 가장 큰 공적은 치밀하게 짜인 극의 구조와 전개방식을 명료하게 드러냄으로써, 난해하기로 유명한 이 오페라가 결코 어렵지도 지루하지도 않은 작품임을 깨닫게 해준 것이다.
작곡가 슈트라우스가 후고 폰 호프만스탈이 쓴 연극 '엘렉트라'를 극장에서 보고 바로 오페라로 만들겠다고 결심했을 만큼 호프만스탈의 텍스트는 매혹적이다. 그가 직접 쓴 오페라 대본 역시 아이러니와 블랙 유머로 가득할 뿐 아니라 인물 등장의 순서 및 배열을 통해 관객에게 매번 다음 장면에 대한 기대를 키우게 한다.
하녀들이 등장해 엘렉트라의 상황과 상태를 설명한 뒤 엘렉트라가 등장해 독백하고, 그 뒤에 엘렉트라와 여동생 크리소테미스, 엘렉트라와 어머니 클뤼템네스트라, 엘렉트라와 남동생 오레스트, 엘렉트라와 클뤼템네스트라의 정부 에기스트의 대결 장면들이 차례로 이어지며 극의 긴장을 증폭시키는 방식이다.
복수에 집착하는 여주인공 엘렉트라를 카르탈로프는 다른 연출가들과는 달리 냉정하고 이성적인 인물로 그렸다. 여동생 크리소테미스는 평범하게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가족의 사랑 속에서 살고 싶은 욕망을 드러내는 여성으로, 의상과 동선, 동작, 표정 등 모든 것이 두 인물의 대조적인 성향을 뚜렷이 보여준다. 엘렉트라가 다른 인물들과 대결하는 장면에서도 인물의 개성이 확연히 파악된다.
하녀 다섯 명과 감시자 한 명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며 무대 위 솔로 가수들의 노래에 반응하는 모습은 마치 그리스비극의 코러스를 신체극으로 옮겨놓은 듯했다.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이들은 계속 회전하는 대형 구조물 안팎으로 뛰어다니며 무대에 역동성을 더했다.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약하는 미국 지휘자 에반-알렉시스 크리스트는 대구국제오페라축제 오케스트라인 디오오케스트라에서 최상의 기량을 끌어냈다. 오케스트라 악기군 사이의 조화, 관현악부와 성악부의 밸런스 등도 훌륭했지만 특히 금관파트의 안정적이고 명료한 연주 덕분에 어려운 음악을 편안히 즐길 수 있었다. 연속적인 반음계로 꼬리에 꼬리를 물며 얽혀드는 음악의 긴장감을 무대 장면에 섬세하게 일치시킨 것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공이었다.
엘렉트라 역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를 떠날 수 없는 극한 배역이지만, 소프라노 디아나 라마르는 현명하게 강약과 완급을 조절하며 마지막까지 강렬하고 선명한 고음을 유지했을 뿐 아니라 분노와 슬픔, 조소와 비아냥거림을 오가는 탁월한 연기로 매 순간 엘렉트라 그 자체로 보였다. 크리소테미스 역의 소프라노 라도스티나 니콜라예바는 삶의 의지에 충만한 여성성을 밝은 음색으로 보여주었고, 클뤼템네스트라 역의 메조소프라노 마리아나 즈벳코바는 유연한 레가토와 깊이 있는 표현력으로 존재감을 살렸다.
남동생 오레스트 역을 노래한 바리톤 베셀린 미하일로프는 따뜻하고 다정한 음색으로 엘렉트라가 그토록 기다렸던 재회의 순간에 관객에게도 위로와 감동을 주었다. 뒤에서 분사한 물로 무대 구조물에 씌운 특수 비닐을 녹여 유리벽이 무너지는 효과를 만들어낸 것은 아가멤논 가문의 완벽한 종말을 의미했다. 뛰어난 조명효과와 자막 번역도 극의 이해를 도왔다.
rosina@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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