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칼·망치로 한땀 한땀 전통을 새기다 [밀착취재]

최상수 2023. 10. 22.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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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조각칼과 망치가 한땀 한땀 나무를 파낸다.

전북 전주시 한옥마을에 위치한 백산 목공방에는 양청문 현판 서각(書刻) 명인의 땀과 나무 부스러기로 가득 차 있다.

주 목재는 은행나무와 느티나무인데 벌레가 생기거나 뒤틀리는 경우가 없이 오래가는 나무이면 가리지 않고 사용한다.

소나무 그을음으로 만든 송연 먹을 아교에 희석해서 바탕을 칠하고, 전통 물감으로 색을 입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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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의 '현판 서각 명인' 양청문씨
날카로운 조각칼과 망치가 한땀 한땀 나무를 파낸다. 숨을 죽인 채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도 아랑곳이 없다. 전북 전주시 한옥마을에 위치한 백산 목공방에는 양청문 현판 서각(書刻) 명인의 땀과 나무 부스러기로 가득 차 있다.
양청문 현판 서각 명인이 전주 한옥마을 백산 목공방에서 배접한 갑골문자 서고를 직접 제작한 창칼과 망치로 서각하고 있다. 양 명인은 형편이 어려운 작은 사찰이나 노인정 등에 무료로 현판을 제작해주는 봉사활동을 오랫동안 해왔다.
서각이란 나무나 돌, 금속 등의 재료에 도구를 통해 새기는 것을 말한다. 양청문 명인은 대한민국명인회가 인정하는 한국에 한 명뿐인 현판 서각 명인이다.
양청문 현판 서각 명인이 전주 한옥마을 백산 목공방에서 자신의 작업물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 백산 목공방에 양천문 현판 서각 명인의 작업 도구들이 놓여 있다.
양청문 현판 서각 명인이 전주 한옥마을 백산 목공방에서 갑골 문자를 서각하고 있다.
양청문 현판 서각 명인이 전주 한옥마을 백산 목공방에서 갑골 문자를 서각하고 있다.
현판을 서각하는 방법은 크게 양각과 음각으로 나뉜다. 양각은 글자 주변을 파내어 글자가 도드라지도록 새기는 방식을 뜻한다. 음각은 반대로 글자를 파내는 방식이다. 보통 현판 한 개에 한두 달이 걸리고, 크기에 따라 더 오랜 기간이 걸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주 목재는 은행나무와 느티나무인데 벌레가 생기거나 뒤틀리는 경우가 없이 오래가는 나무이면 가리지 않고 사용한다.
양 명인이 제작한 현판들.
양청문 현판 서각 명인이 전주 한옥마을 백산 목공방에서 자신의 작업물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양청문 현판 서각 명인이 전주 한옥마을 백산 목공방에서 갑골 문자를 서각하고 있다.
목재는 1년 넘게 소금물에 담가 진액을 빼고, 쪄내고 건조하는 것을 반복한다. 이 과정을 치목(治木)이라고 한다. 좋은 목재를 골랐다면 원본 글씨를 뜻하는 서고(書稿)와 목판을 포개 붙이는 배접을 한다. 나무에 고르게 풀을 칠한 후 글자가 새겨진 한지를 붙이는 작업으로 서각 작업 중 제일 첫 단계에 해당한다.
나무를 파낼 때는 글자가 뜯어지지 않게 결을 따라 순방향으로만 작업해야 한다. 글자 크기에 따라 다양한 도구가 사용된다. 직접 명인의 손에 맞게 만든 창칼(글자의 본을 딸 때 쓰는 칼)과 끌, 망치 등이 주 도구다. 각진 글자, 굴곡이 있는 글자, 글자의 얇은 부분 등에 따라 다양한 도구를 사용한다. 큰 글씨는 물론이고 날인된 낙관 도장 같은 세밀한 묘사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며칠 밤낮을 정성스럽게 파내면 이제 남은 한지를 떼어내고, 다시 현판을 건조하는 인고의 시간이 기다린다. 현판이 속까지 잘 마른 뒤 칠 작업을 시작한다. 소나무 그을음으로 만든 송연 먹을 아교에 희석해서 바탕을 칠하고, 전통 물감으로 색을 입힌다. 마를 때마다 부족한 부분, 잘못 칠해진 부분 등을 차근차근 수정해 나가면 전통 방식으로 만든 현판 하나가 완성된다.
양청문 현판 서각 명인이 전주 한옥마을 백산 목공방에서 갑골 문자를 서각하고 있다.
양청문 현판 서각 명인이 전주 한옥마을 백산 목공방에서 현판을 송연 먹으로 칠하고 있다.
양청문 현판 서각 명인이 전주 한옥마을 백산 목공방에서 자신의 작업물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현판 서각의 전통을 이어 나가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근면 성실이라고 한다. 긴 작업 시간 동안 날붙이를 이용하다 실수하면 크게 다칠 수 있어 꾸준하고 반복되는 연습만이 대비책이다. 매우 세밀한 작업도 해야 하고, 창칼 등 도구들을 자기 손에 맞게 직접 제작해야 하므로 손재주도 좋아야 한다. 제작 기간도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들지만 양청문 명인은 전통 방식을 지켜나가고 싶다고 한다. 현판 서각 작업을 위해 전국을 누볐다.
“카메라 하나 들고 현판이 있는 곳이면 다 찾아갔죠. 어떤 기법을 썼고, 어떤 나무를 썼는지, 색은 어떻게 칠했는지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양청문 현판 서각 명인이 전주 한옥마을 백산 목공방에서 직접 제작한 창칼을 들어 보이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 백산 목공방에 명인의 작업 도구들이 놓여 있다.
양청문 현판 서각 명인이 전주 한옥마을 백산 목공방에서 갑골 문자를 서각하고 있다.
양 명인이 현판을 송연 먹으로 칠하고 있다.
수많은 현판을 조사해 부족한 점들을 보완하고 자신만의 색을 입혀 완성도를 올리고자 했다. 전통 방식을 잇고자 정한 이상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게 명인의 꿈이다.

“내가 죽고 없더라도 후세에 사람들이 궁금하면 저처럼 파헤쳐서 연구해 볼 거 아니에요. 그때를 위해서라도 잘 만들어서 견고하게 오래가는 현판을 만들어 놓는 게 내 숙제예요.”

오늘도 백산 양청문 명인은 현판 하나에 과거의 전통 방식으로 현재를 서각해 미래로 향하고 있다.

전주=글·사진 최상수 기자 kilr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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