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벤처대출' 활황…고금리에도 지분 맡기고 급전 대출 [긱스]
시범사업에 42개 업체·247억원 수혜
6~7% 금리는 쟁점으로
확보 지분 비중도 입장차 '팽팽'
창업가가 소액의 지분 확보 권한을 내어주고 '급전'을 마련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지난해 정부가 도입을 선언했던 '벤처대출(투자조건부 융자)'입니다. 벤처대출의 구조와 확산 배경, 그리고 제도 안착을 위해 남은 과제는 무엇인지 한경 긱스(Geeks)가 자세히 알아봤습니다.
#. 스타트업 젠트로피는 최근 지분을 활용해 금융기관 대출을 받는 데 성공했다. 미 실리콘밸리의 제도로 이름을 알린 이른바 ‘벤처대출(투자조건부 융자)’ 방식이다. 2018년 창업된 이 스타트업은 전기 오토바이를 제작하고, 배터리 교환 방식의 충전 플랫폼을 운영한다. 처음엔 오토바이 공장의 운영자금을 충당하려 시중은행 3곳을 찾았다가 쓴맛을 봤다.
주승돈 젠트로피 대표는 “관련 시장 점유율 1위를 내세울 정도로 기술력에 자신 있지만, 담보도 이익률도 부족하다며 거절당했다”며 “벤처대출은 사업계획서와 성장성만 따져 6억원을 수령했다”고 말했다. 젠트로피는 이 돈으로 경기 군포시 공장에 투자해 급한 불을 끌 수 있었다.
미 실리콘밸리에서 성황을 이뤘던 벤처대출 제도가 국내에서도 본격적으로 연착륙하고 있다. 성장성 있는 초기 스타트업의 자금경색을 막고, 금융기관에도 지분 확보 권리 등 유인책을 줘서 창업 생태계 전체를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로 정부와 국회가 포문을 연 제도다. 다만 국내 제도가 내포한 6~7%의 고금리, 대출액의 최대 80%에 달하는 확보 지분 비중은 쟁점으로 자리하고 있다.
'시리즈C' 기업까지 벤처대출 신청
22일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IBK기업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벤처대출 시범사업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까지 집행된 벤처대출 총액은 247억5000만원이다. 대출받은 업체 수는 42개다. 중소벤처기업부 ‘혁신 벤처·스타트업 자금지원 및 경쟁력 강화 방안’ 정책을 골자로 진행된 벤처대출 시범사업은 지난해 12월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에서 처음으로 시작했다. 참여 업체 투자단계는 시리즈A가 20개로 가장 많았다. 평균 대출액은 약 5억9000만원이었다.
지분 희석에 방어적인 초기 창업가들이 급한 운전자금을 충당하는 용도로 대출을 활용했다는 분석이다. 해당 대출은 초기 스타트업을 위한 프로그램이지만, 누적 투자금액 100억원이 넘는 시리즈B(4개) 업체의 참여가 두드러지기도 했다. 이미 투자받은 돈이 429억원에 달하는 시리즈C 업체까지 ‘급전’을 찾았다. 투자 혹한기가 장기화하며, 외부 투자 유치가 어려워진 시장 상황도 반영된 것이다. 영업이익을 내기 힘들어 대출과 투자 모두를 거절 받던 스타트업들이 새로운 창구를 찾은 셈이다.
벤처대출은 크게 3주체가 중심이다. 금융기관이 후속투자 유치 전 스타트업에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받고 저리로 대출한다. 이후 스타트업이 투자를 유치하면 대출금을 받고, 주식 가치 상승을 기대하며 차익을 실현할 수도 있다. 벤처캐피털(VC)은 투자 심사정보를 금융기관에 제공하고, 금융기관에 대출 정보를 제공 받아 후속 투자에 참고하기도 한다. 1983년 설립된 미 실리콘밸리은행그룹(SVB그룹)이 초기부터 주도해 정착시킨 벤처대출은 현지 스타트업 5개 중 1개가 활용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선진 벤처금융기법을 도입하겠다”며 구체적 청사진을 내놓은 바 있다.
정부가 움직이기 전까지 국내 자본시장엔 원래 동일 형태 벤처대출 제도가 없었다. 관련법이 없어 유사 프로그램만 호황을 누렸다. 기술보증기금의 ‘VC 투자매칭 특별보증’ 대출형 프로그램은 지난해 지원총액이 1709억원에 달했다. 직전 연도인 806억원에 비해 2배 늘었다. 신용보즘기금도 ‘투자브릿지 보증 프로그램’을 신설하며 최대 한도 20억원짜리 모험자본 공급에 나섰다. 스타트업들은 반겼지만, 시장에선 민간 금융기관을 끌어올 유인책이 적다는 지적은 존재했다. 상황을 반전시키려 정부와 함께 국회도 꾸준히 움직였다. 벤처대출 합법화 내용을 담아 2021년 3월 발의된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은 여러 논의를 거쳐 지난 6월 공포됐다. 오는 12월 정식 시행을 앞두고 있다.
금리 높다는 스타트업…'지분 비중'도 숙제로
법안 시행과 맞물려, 제도 확산을 위해 극복할 과제도 대두된다. 스타트업 업계가 지적하는 대표적 사안이 금리다. 현재 벤처대출 시범사업의 금리는 6~7%로 설정돼 있다. 지난달 말 국내 기업 대출 평균 금리는 5.02%로 약 1~2%p 차이가 난다. 금융기관은 실적이 없는 초기 스타트업의 특성과 글로벌 금리인상 기조 속에서 현 금리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대출 프로그램을 찾는 스타트업이 대부분 자금 융통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이자 부담이 크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은행 대출심사 부서는 리스크를 떠안는다고 생각하지만, 제도 취지대로 2~3%대 파격적 금리가 적용되지 않으면 스타트업 입장에선 유인책이 없어 활성화가 어렵다”고 말했다. 관련 입법을 주도한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스타트업에 대한 조건부 융자는 미래에 대한 투자 성격이 혼재된 만큼 대출 금리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무작정 손해를 볼 수 없는 금융기관은 금리 인하를 언급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분 비중도 쟁점이다. 현행 제도는 융자 금액의 20~80%를 잠재 확보 지분(BW금액)으로 전제하고 있는데, 초기 스타트업 입장에선 부담스러운 비중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기업가치가 50억원인 초기 스타트업을 예로 들면, 평균 대출 금액(약 6억원)에서 BW금액을 최대치로 가정할 때 그 가치가 전체 지분의 약 10%에 달할 수 있다. 한국벤처투자 벤처금융연구센터에 따르면, SVB의 경우 일반적으로 전체 기업가치의 1~2% 정도의 지분인수권을 획득해왔다.
투자업계에선 제도가 자칫 한계 기업의 생명을 연장 시키고, 기업 가치를 무분별하게 부풀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한 VC 심사역은 “중기부 ‘TIPS(팁스)’ 프로그램이 시드(초기) 스타트업을 대량으로 지원하며 옥석을 가릴 시기가 시리즈A 라운드로 미뤄졌는데, 벤처대출이 적절한 심사 체계를 갖추지 못하면 업체들이 시리즈B 라운드에서 더 냉혹한 심판을 받고 더 큰 실패를 경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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