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봐야 ‘뺑끼’”…이 말 했다간 바로 ‘문송합니다’ 해야 할 판 [교과서로 과학뉴스 읽기]

원호섭 기자(wonc@mk.co.kr) 2023. 10. 22.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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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신소재공학부 이헌 교수 연구진이 특별한 페인트를 개발했습니다. 벽에 바르면, 실내의 온도를 떨어뜨릴 수 있는 페인트입니다.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실내 기온을 떨어트릴 수 있다고 하는데요, 과연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지구로 들어오는 태양에너지
이 그림을 기억하신다면 그래도 학창시절 공부 열심히 하신 겁니다. <사진=금성출판사>
‘복사에너지’라는 용어를 중학교 2학년 과학 시간에 배웁니다. 복사 에너지란 물체가 ‘복사’의 형태로 방출하는 에너지를 뜻합니다. 여기서 복사란 열이나 파동이 방출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모든 물체는 자신의 온도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방출합니다. 사람이 붙어 있으면 뜨거운 이유입니다.

태양도 마찬가지입니다. 뜨거운 태양은 ‘태양복사 에너지’를 우주 공간으로 방출합니다. 이 에너지가 지구에 도달해 우리를 따듯하게 해줍니다. 지구의 온도가 끊임없이 올라가지 않는 이유는 복사 에너지가 평형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즉 지구도 복사 에너지 형태로 에너지를 방출하는데, 지구가 흡수하는 태양 복사 에너지의 양과, 방출하는 복사 에너지의 양이 같아지면서 평형을 이루고, 이에 따라 지구의 온도가 더 높아지지 않습니다. 이런 개념을 우리는 중학교 3학년 때 배웠습니다.

지구가 달보다 따듯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대기’ 때문입니다. 지구로 들어온 태양복사 에너지를 100으로 봤을 때 이 중 약 30은 지표와 대기에서 반사되어 우주 공간으로 돌아갑니다. 70%가 지표, 대기에 흡수됩니다. 아까 지구도 복사 에너지를 방출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70을 방출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지표가 방출한 에너지 중 일부가 우주공간으로 방출되지만 나머지는 다시 대기에 흡수됐다가 우주와 지표로 방출됩니다. 이때 대기가 지표로 방출한 에너지를 지표가 다시 흡수합니다. 따라서 지표는 대기가 없는 경우와 비교했을 때 높은 온도에서 복사 평형을 이루게 됩니다.

온도를 높이는 복사 평형
정리하면, 태양열이 지구로 들어옵니다. 들어온 만큼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나가던 에너지 일부가 대기에 흡수됐다가 다시 지표로 내려옵니다. 즉 평형을 이뤄서 0이 돼야 했던 에너지값에 변화가 생깁니다. 이 에너지 때문에 지구는 더워집니다. 이를 온실효과라고 합니다. 아까 대기가 에너지를 흡수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 흡수하는 기체가 바로 온실기체입니다.

이제 대충 감이 오실 것 같습니다. 이헌 교수팀이 개발한 페인트는 태양광을 반사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게 어떻게 가능하냐고요. 과학자들이 나노 단위의 물질을 제어할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페인트에 질화붕소 입자, 알루미나 입자 등으로 구성된 혼합물을 넣으면 태양광이 산란하면서 100이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이보다 적은 에너지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연구진에 따르면 페인트의 태양광 반사율은 약 97%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제 페인트를 바른 건물을 지구라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건물의 외벽이 대기입니다. 태양 에너지가 도달하고 일부는 외벽에 의해 반사됩니다. 대기와 같이 30을 반사했다고 해보겠습니다. 그럼 70이 실내로 들어옵니다. 건물 실내는 이를 흡수했다가 방출합니다. 나가던 에너지를 외벽이 다시 흡수합니다. 그리고 다시 실내로 방출합니다. 결국 실내에는 에너지가 남아 높은 온도를 유지합니다.

나노기술로 만든 페인트
고려대 이헌 교수 연구진은 지난 2022년 CES에서 이 기술을 선보인 바 있습니다. <사진=고려대>
페인트를 바르면 실내로 들어오는 에너지 자체를 줄일 수 있게 됩니다. 즉 100이라는 태양 에너지 중 97은 날아가고 3만 들어오는 겁니다. 반사율이 높은 만큼 실내에 머무는 에너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고 이는 실내 온도 저하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기술은 이미 2014년부터 미국 콜로라도대, 퍼듀대 등 연구진이 다양한 입자를 페인트에 넣어 구현해 오고 있습니다. 이제는 어떠한 입자를 어떻게 넣어서 태양광을 얼마나 더 많이 반사하는 경쟁이 이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고려대 연구진은 과거 모형 집을 만든 뒤 시중에서 판매하는 페인트와 태양광을 반사하는 페인트를 칠하고 실내 온도가 얼마나 차이나는 지 실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검은색 페인트로 지붕을 칠한 집의 실내 온도는 47.2도, 하얀색 페인트로 칠한 모형 집의 실내 온도는 30도였는데 연구진이 개발한 복사냉각 페인트를 칠한 모형 집의 온도는 25도를 나타냈습니다.

현재 고려대 연구진은 이 기술을 카타르대와 추가 실증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기술이 성공적으로 상용화돼 더운 여름, 에어컨을 세게 켜지 않아도 실내 온도를 쾌적하게 유지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지난번 연재 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올해 노벨상 수상자의 이야기를 이번 글에 써야 하나 아직 전문가의 의견을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 화학상. 너무 어렵습니다. 눈물 나네요.

“중학교 3학년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가져오란 말이야.” 과학을 담당하는 기자가 선배들에게 많이 듣는 말 중 하나입니다. 맞습니다. 과학·기술 기사는 어렵습니다. 과학·기술 자체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내용을 풀어가다 보면 설명은 길어지고 말은 많아집니다. 핵심만 간결히 전달하지 않으면 또 혼나는데 말입니다. 이공계 출신인 제게 “문과생의 언어로 써라”라는 말을 하는 선배도 있었습니다.   혼나는 게 싫었습니다. 중3이 이해하는 언어로 기사를 쓰고 싶어 과학 교과서를 샀습니다.  그런데 웬걸, 교과서에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많은 과학이 담겨 있었습니다. 기억 안 나시죠. 중3 수준으로 기사를 쓰면, 더 어려운 기사가 됩니다.   과학기술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챗GPT, 유전자 가위, 반도체, 양자컴퓨터 등 이름만 들어도 머리 아픈 최신 기술이 우리의 삶을 바꾸고 있습니다. 모르면 도태될 것만 같습니다.   어려운 과학·기술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 싶어 교과서를 다시 꺼냈습니다.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최신 기술의 원리를 교과서에서 찾아 차근차근 연결해 보려 합니다. 최신 과학·기술은 갑자기 툭 튀어나오지 않았습니다. 교과서에 이미 모든 원리가 들어있으니까요. 함께 공부하는 마음으로 적어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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