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DC 도입, 약일까 독일까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불법 자금 추적할 수 있지만 개인 거래 통제 우려도
(시사저널=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CBDC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다. 비트코인 같은 가상자산과 달리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법정 디지털 화폐다. 디지털 자산이면서도 암호화폐가 지닌 변동성의 위험이 없다. 때문에 한국은행과 금융 당국은 최근 국제결제은행(BIS)과 함께 CBDC 활용성 테스트에 착수했다.
테스트는 금융기관 간 자금거래와 최종적인 결제에 활용되는 기관용 CBDC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은행들이 중앙은행에 맡겨놓는 지급준비금을 활용해 자금을 거래하고 결제하는 형식이다. 일반 국민이 참여하는 실험은 시스템 구축 등의 준비를 거쳐 내년 4분기쯤 착수할 계획이다. 중앙은행이 지급준비금 일부를 CBDC로 발행하면 은행은 고객들에게 보유한 CBDC를 기반으로 '예금토큰'tokenized deposit)'을 지급하는 식이다.
中, 2020년부터 '디지털 위안화' 시범 운영
디지털 화폐 등장의 의미는 단순한 금융 혁신이 아니다. CBDC 개발은 이미 세계적 추세다. 전 세계 100개 이상의 중앙은행이 현재 CBDC 개발 및 도입을 실험하는 단계라고 한다.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 인민은행은 2020년부터 선전, 쑤저우 등 10여 개 도시에서 시민들이 '디지털 위안화'로 부르는 CBDC를 사용하도록 시범 운영을 하고 있다. 중국이 CBDC 개발에 적극적인 이유는 미국의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수단이라는 점도 있을 것이다. 기업이나 국민의 활동에 대한 통제를 더 강화할 수 있다는 목적도 있을 수 있다.
반면에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경우 통화가치의 안정성을 봐도 그렇고 CBDC 도입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그런데도 개발에 속도를 내는 이유는 역시 앞으로 예상되는 CBDC 간 경쟁 구도 때문일 것이다. 미국은 특히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가 달러 지배력을 위협하는 상황을 우려할 수 있다.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가 자리 잡기 시작하면 우선 중국에서 투자를 받는 동남아시아 국가나 아프리카에 보급될 가능성이 있다. 본격적으로 기업 간 거래에 사용되는 경우 중국에 진출하는 모든 기업이 이를 사용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중국뿐만이 아니다. 현재 달러가 국제 무역에서 중개통화로 사용되는 비중은 90%에 달한다. 그런데 각국 중앙은행이 CBDC를 이용해 직접 결제하게 되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변화가 확산하면 세계적으로 무역 거래 결제에 필요한 달러의 수요가 줄어들고, 미국 국채 같은 달러 보유 자산에 대한 투자도 감소할 수 있다. 세계 각국이 이전만큼 많은 달러가 필요하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 미국으로서는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CBDC는 발권 비용이나 관리 비용이 들지 않는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잘 설계된 CBDC는 규제되지 않은 민간 암호화폐나 스테이블 코인보다 더 실용적"이라고 말했다. IMF(국제통화기금)는 국가 간에 CBDC를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도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양면성이 있다. 일단 CBDC가 활성화하면 기존의 가상화폐 시장이나 민간 결제 시스템이 위축될 수 있다. 금융 산업에서 일어날 변화는 예측이 어려운 수준이다. CBDC는 기본적으로 현금을 디지털로 대체해 저장하는 수단으로 예금과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된다. 기업이나 사람들이 현금을 은행 예금보다는 CBDC로 대체해 보관하려 한다면, 은행 예금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 중앙은행과 사용자 사이에 있는 결제나 자금중개 기관의 역할과 의미도 자연스럽게 감소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은행이나 카드회사는 특별한 서비스만 전담하거나 아니면 아예 몰락할 수도 있다. 물론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일부에서는 과장됐다고 보기도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CBDC의 활용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면 기존의 단순한 스마트폰 결제와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중국도 속사정은 다소 복잡해 보인다. 중국 인민은행이 CBDC 연구에 착수한 게 2014년이다. 하지만 8년이 지난 지금까지 정식 발행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 실증 실험은 일부 스마트폰 결제에 한정되는 등 예상했던 속도보다 더디다. 기술적으로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기존 금융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일 것이다. 정치적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시스템 공격당하면 치명타 맞을 수도
기술적으로 아직 해결되지 않은 가장 큰 문제라면 사용자의 거래 실적이나 신원이 드러나지 않는 익명성 보장이 어렵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디지털 지갑은 반드시 흔적을 남기게 된다. CBDC를 발행하고 관리하는 중앙은행이 거래 내용을 24시간 365일 들여다볼 수 있다는 뜻이다. 국가 차원에서는 불법 자금을 추적하거나 세원 포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다. 이를 역으로 말하면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기업이나 개인의 모든 거래 활동을 파악하고 통제할 수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익명성 보장을 해줄 수도 없다. CBDC 설계에는 개인정보 보호와 경제적 안정성의 조화가 필요하다. 적절한 수준에서 익명성을 보장하면서도 규제를 준수하도록 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보안의 문제도 있다. 디지털화가 확대될수록 개인정보 보호와 해킹 위협에 대한 우려는 커질 수밖에 없다. CBDC 시스템이 공격당하면 금융시장의 안정성에 자칫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금으로서 CBDC 도입은 단계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일단 CBDC 도입으로 금융 시스템이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 때문에 중국 인민은행을 포함해 많은 중앙은행이 CBDC로 돈이 몰리지 않도록 이자를 주지 않고 있다. 보유 금액에 상한선을 두고 은행에서 대량 자금 유출이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만들기도 한다. 유통도 두 단계로 나눠 일종의 장벽을 쌓을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CBDC 발행은 중앙은행이 하되 최종 이용자에게 공급하는 일은 시중은행을 통하도록 할 계획이다. 한국은행의 실험 계획도 그렇지만 다른 나라들도 대개 비슷한 방식을 채택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CBDC에 관한 세계 각국의 관심은 결국 디지털 시대에 통화주권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아직은 모두가 조심스럽다. 기술력 때문만이 아니라 예상되는 부작용도 있기 때문이다. BIS는 미래의 통화체계를 가장 먼저 구현할 수 있는 나라로 한국을 꼽았다. 우리의 IT 산업 기반 때문이지만 단순히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해서 먼저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한국은행은 CBDC를 발행할 계획은 아직 없다고 밝히고 있다. 아마 미국이 먼저 도입의 방향을 구체화해야 우리도 계획을 세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3월에야 CBDC 연구를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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