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카지노냐 혁신창업이냐
인천공항에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항까지는 약 14시간이 걸린다. 여객기 속도를 평균 시속 800km로 잡으면 약 1만1200km가 나오는 거리다. 지구 반지름이 대략 6300km이니 네덜란드는 거의 지구의 지름만큼 멀리 떨어진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멀리 떨어져서 그런지 언어는 물론 문화나 생각하는 방식도 많이 다르다. 그래서 비슷한 상황에서 내린 정책적 의사결정과 그 결과도 사뭇 다르다. 바로 강원도의 카지노와 림뷔르흐(Limburg)주의 브라이트 랜드(Bright Lands)가 좋은 예이다.
네덜란드, 독일, 벨기에 접경지역에 위치한 림뷔르흐주는 석탄이 풍부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석탄이 중요했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과 독일군은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거듭했고,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며 네덜란드가 이 지역을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1960년대 들어 석탄의 수요가 점차 줄어들고 석유가 주요한 자원으로 석탄을 대체하면서 지역경제도 곤두박질 치게 된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1980년대 탄광산업이 몰락하면서 태백시, 정선군 등의 지역경제가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상황은 비슷했지만 정책적 처방은 달랐다. 우리나라는 1995년 '폐광지역대발지원특별법'을 만들어서 10년 기한으로 내국인 카지노를 허용했다. 이후 외국인 내장객수가 적어 내국인 입장을 계속 연장해왔는데 2021년에는 이를 20년 연장해 2045년까지 내국인 출입이 가능하다. 카지노 수입을 기반으로 관광투자라는 선순환 고리를 꿈꿨지만 외국인 관광객이 강원도 카지노까지 갈 유인책이 부족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내국인 카지노에 머문 것이다.
네덜란드는 시간이 걸리고 더디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선택했다. 기술혁신과 창업을 기반으로 한 혁신생태계 조성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림뷔르흐 주정부는 이 지역이 탄광이 많았다는 점에 착안해 숯검댕이 많은 '검은 땅'이 아닌 첨단기술 중심의 '밝은 땅', 즉 브라이트 랜드(Bright Lands)라는 이름으로 이 지역을 브랜드화 했다.
그리고 브라이트 랜드의 핵심기관으로 네덜란드석탄공사(Dutch State Mining)와 마스트리트 대학을 선정하고 이들에게 혁신을 선도하도록 주문했다. 1902년 국영기업으로 설립된 네덜란드석탄공사를 첨단 화학 및 소재 전문기업으로 혁신하고 사명을 DSM으로 바꾸었다. 단계적으로 정부 지분을 매각하면서 민영화하고 브라이트 랜드의 중심인 세멀롯(Chemelot) 캠퍼스를 맡게 헸다.
또 의료보조인력 육성을 목표로 설립을 추진 중이던 마스트리트 대학의 방향을 틀어 바이오헬스케어 연구중심 대학을 세우고 '바이오 헬스케어 캠퍼스'를 맡게 했다. 현재 브라이트 랜드는 △첨단소재 중심의 '세멀롯' △바이오 헬스케어 중심의 '마스트릭트' △데이터 및 블록체인 중심의 '스마트서비스 캠퍼스' △스마트팜 중심의 '그린포트 벨노 캠퍼스'가 차례로 완성되면서 지역경제는 물론 글로벌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이 같은 성공은 30년에 걸친 지역정부의 노력과 설득, 대학과 국영기업들의 혁신선도자 역할 수행, 3개국 접경지역을 활용한 우수인재 유치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결과라 하겠다.
"아이 한명을 키우는데 온 마을의 힘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혁신적인 창업기업을 육성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역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혁신기업들이 창업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엄마, 아빠 역할을 할 핵심 혁신기관과 대학, 좋은 정주여건 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네덜란드 브라이트 랜드 사례는 똑같은 어려움을 겪어도 해결책은 다양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비슷한 어려움은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다. 다만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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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모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혁신정책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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