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은행 CBDC 제안 요청서와 미래 방향성
(지디넷코리아=윤석빈 서강대 정보통신대학원 특임교수)최근 전 세계에서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에 대한 연구와 개발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CBDC란 중앙은행이 발행하고 보증하는 디지털 형태의 법정 화폐를 말한다. 현금과 같은 역할을 하지만 은행이나 카드사와 같은 금융기관 중개 없이도 거래가 가능하다.
CBDC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거래 기록을 안전하고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다. 또 화폐 발행 비용을 줄이고 금융 혁신과 효율을 증진하며, 불법 금융거래를 방지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CBDC 도입과 운영에는 다양한 기술적, 제도적, 정책적 과제와 위험을 수반한다.
한국은행은 이러한 과제와 위험을 실제로 검증하고 해결하기 위해 CBDC 활용성 테스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 제안 요청서가 나온 상태다. 이 사업은 CBDC와 민간 디지털통화의 발행·유통에 필요한 분산원장 플랫폼을 구축하고, 다양한 활용 사례를 테스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분산원장 플랫폼은 중앙은행과 참여 기관이 공동으로 거래 검증 및 원장 기록 권한을 보유하도록 허가형으로 운영된다. 또한, CBDC와 민간 디지털통화는 서로 호환하고 전환할 수 있게 설계하도록 제안 요청이 나왔다. 이를 통해 CBDC 기반의 디지털통화 생태계를 구축하고, 그 장점과 한계를 탐색할 수 있는 것이 목적이다.
'CBDC 활용성 테스트 사업'은 2023년 12월부터 2025년 3월까지 약 15개월간 진행될 예정이다. 사업은 크게 두 단계로 구분된다. 첫 번째 단계는 한국은행이 중심이 돼 분산원장 플랫폼과 필요 기능을 개발하고, 두 번째 단계는 참가기관이 분산원장에 참여해 활용사례를 구현하고 테스트하는 것이다. 특히, 디지털 바우처를 중심으로 일부 실 이용자와 함께 활용사례를 검증할 계획이 명시됐다.
'CBDC 활용성 테스트 사업'은 CBDC 도입 가능성과 영향력을 평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또한, CBDC와 민간 디지털통화가 공존하고 협력하는 새로운 디지털화폐 시스템의 청사진을 제시 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은행은 화폐 및 지급결제 제도의 미래에 대한 전략적인 방향을 수립하고, 민·관 협력체계를 구축 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삼았다.
CBDC는 활용 범위, 사용 주체 등에 따라 범용과 기관용으로 나뉜다. 범용 CBDC는 현금과 마찬가지로 가계, 기업 등 일반 경제 주체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것이며, 기관용 CBDC는 금융기관이 금융기관 간 자금거래, 최종 결제 등에 활용한다. 2022년 국제결제은행(BIS) 연례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중앙은행 중 93%가 CBDC에 대해 연구 및 개발을 시행 중이며 2030년까지 24개국 이상이 CBDC를 도입할 전망이다.
범용 CBDC의 경우 주요국은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면서 도입 가능성에 대한 연구 및 개발 강도를 높이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것은 중국이다. 지난 2020년 하반기 5개 지역에서 시범운영을 시작한 이후 대상 지역을 점차 확대하고 있다. 2023년 5월 기준 17개 성 26개 구역에서 CBDC인 디지털 위안화를 사용한다. 유럽중앙은행(ECB)은 현재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10월 이후 도입 준비 착수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미국, 일본, 영국 등은 현재 기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기관용 CBDC에 대한 연구도 확대되는 추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기관용 CBDC 플랫폼 구축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싱가포르 통화청은 기관용 CBDC 활용 방안을 모색 중이다.
이번에 발표한 한국은행 'CBDC 활용성 테스트'는 기관용 CBDC를 기반으로 한다. 한국은행이 은행간 자금이체 거래에 활용할 수 있는 기관용 CBDC를 발행하고, 참여 은행은 이와 연계된 지급결제 수단인 토큰을 발행해 사용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현재 은행들이 중앙은행에 개설한 계좌의 예금 즉, 지급준비금을 활용해 자금거래 및 최종 결제를 수행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CBDC 네트워크는 한국은행이 구축하고 은행이 참여하는 허가형 네트워크다. 글로벌에서 CBDC를 퍼블릭 네트워크를 연구하는 사례가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CBDC 활용성 테스트'는 한국은행이 분산원장 기술로 구축한 CBDC 네트워크 내에서 진행한다. CBDC 네트워크는 한국은행이 구축하고 은행 등 민간 부문이 참여하는 허가형 네트워크로, 외부 네트워크와 연결하지 않을 계획이다. 즉 CBDC 네트워크에서 발행 및 유통되는 가상자산은 해당 네트워크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고, 일반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거래하거나 별도 구매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 이번 테스트를 통해 단순 자금 이체보다는 기존 지급 서비스와 차별화되는 디지털 통화 기능에 주안점을 두고 다양한 활용 사례를 검증할 계획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의 이번 테스트는 가상 환경에서 이뤄지는 개념 검증이다. 국내 금융 및 경제 상황에 적합한 CBDC 모델을 탐색하는 과정이고, CBDC의 본격 도입을 결정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CBDC 네트워크 또한 최종 확정 모델이 아닌 테스트 모델이다. 이에 필자는 다음과 같이 미래 방향성에 대해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기술 연구와 혁신이다. 한국은행은 CBDC 구현에 있어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블록체인 기술을 선택해야 한다. 블록체인 선택은 속도, 보안, 확장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 분산원장기술(DLT) 연구, CBDC 기반 기술로서 DLT 연구와 그에 따른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여기에 글로벌 사례와 같이 허가형과 퍼블릭 형태도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협력이다. 다 부처 협업으로 경제, 기술, 보안 등 다양한 분야의 관련 부처와 협력해 CBDC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예컨대, 기존 금융 인프라와 연계성 및 효율적인 CBDC 유통을 위해 상업 은행과의 밀접한 협력이 필요한다. 또 글로벌 네트워킹으로 다른 국가들의 중앙은행과 협력해 CBDC 관련 최신 정보와 기술을 공유하고 국제 표준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는 사용자 중심 접근이다. 사용자 교육으로 CBDC의 안전한 사용을 위해 국민들에게 교육 프로그램과 세미나를 제공해야 한다. UI/UX 디자인으로 사용자 경험을 최우선으로 추진, 직관적이고 쉬운 CBDC 전자지갑 및 거래 플랫폼 개발이 중요하다. 접근성 향상으로 모든 사회 계층이 CBDC를 사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플랫폼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넷째는 보안 및 개인정보 보호다. 데이터 보호 정책으로 CBDC 사용에 관련된 모든 데이터는 철저히 보호해야 하고, 이를 위한 내부 정책 및 기술 대책이 필요하다. 사이버 보안 강화 역시 중요하다. CBDC 플랫폼은 지속적인 사이버 공격 위협에 노출되므로, 첨단의 사이버 보안 기술과 전문가 팀을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개인정보 비식별화 또한 중요하다. 거래 내역 및 사용자 정보를 안전하게 비 식별화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보장해야 한다. 이러한 개방적 혁신을 통해 이번에 발표한 CBDC 사업이 미래 금융 서비스의 시작점이 됐으면 한다.
윤석빈 서강대 정보통신대학원 특임교수(seokbin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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