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송충이처럼 생긴 이 벌레 천지…심지어 해충입니다
산림청 65년 만에 '경계'로 상향…"평년보다 높은 가을 기온에 개체 늘어"
(서울=연합뉴스) 김정진 기자 = 서울 마포구에 사는 직장인 김모(34)씨는 지난 주말 망원한강공원을 찾았다가 5분도 채 되지 않아 자리를 떴다.
계단 난간에 송충이처럼 생긴 벌레가 붙어있는 걸 보고 놀라 주위를 둘러보니 줄잡아 50여 마리가 주변을 기어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던 사람들도 여기저기서 벌레를 보고 소리를 지르더라"며 "일몰을 보러 갔다가 여기저기 널브러진 죽은 송충이에 혐오감이 들어 바로 공원에서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여름철에 서울 은평구를 중심으로 일명 '러브버그'가 출몰한 데 이어 올가을에는 서울 도심 공원 곳곳이 벌레 천지다.
생김새가 비슷해 흔히 송충이로 오해받는 이 벌레는 미국흰불나방 유충이다.
러브버그로 불리는 붉은등우단털파리가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익충인 데 비해 미국흰불나방 유충은 활엽수 잎을 갉아 먹으며 주로 도심의 가로수·조경수·농경지 과수목 등에 피해를 주는 해충이다.
20일 오전 망원한강공원 산책로에서 기어 다니는 미국흰불나방 유충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1분 동안 산책로를 걸으며 20마리가 넘는 유충을 마주쳤다. 3초에 한 마리를 본 셈이다. 행인에게 밟히거나 말라 죽은 듯한 잔해는 그보다 더 많았다.
산책로에서 만난 마포구 주민 박모(76)씨는 "일주일에 서너번은 꼭 이곳을 산책하는데 올해는 말도 못 할 정도로 많다"며 몸을 움츠렸다.
그는 "오늘 30분 정도 걸었는데 100마리도 넘게 본 것 같다"며 "볼 때마다 밟아서 죽였는데 계속 나오니 징그럽고 기분이 안 좋다"고 했다.
자전거를 끌고 인근을 지나가던 이모(63)씨도 "작년 이맘때쯤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올해는 너무 많다"며 "걸어가다 머리에 떨어지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산림청은 지난 8월 말 "경기·충북·경북·전북 등 전국적으로 미국흰불나방의 밀도 증가가 확인되고 있다"며 발생 예보 단계를 '관심'(1단계)에서 '경계'(3단계)로 상향 조정했다. 미국흰불나방이 국내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1958년 이후 처음이다.
산림병해충 방제 규정 제6조에 따르면 경계 단계는 외래·돌발병해충이 2개 이상의 시·군 등 다른 지역으로 확산하거나 50㏊ 이상의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 해당한다.
김민중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병해충연구과 박사는 "산림청 조사 결과 미국흰불나방 유충으로 인한 피해율이 지난해 12%에서 올해 27∼28%로 배 이상 증가했다"며 "올해 (유충이) 많이 나올 경우 내년에도 많이 발생할 위험이 있어 경계로 발생 예보 단계를 높이는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김 박사는 "개체수가 늘어난 것을 이상기후 때문이라고만 보기는 어렵지만 올해의 경우 가을철 온도가 높다는 점이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미국흰불나방 유충은 평균적으로 암컷 한 마리당 알 600개 정도를 낳고 죽는다. 보통 한 해에 암컷이 알을 낳고 죽은 뒤 이 알에서 부화한 2세대가 성충이 된다.
김 박사는 올해 가을철 온도가 예년보다 1∼2도 올라가면서 미국흰불나방 유충 2세대 성충이 낳은 알에서 부화한 3세대까지 성충이 되는 비율이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시뮬레이션 결과 예전보다 (미국흰불나방 유충) 세대수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또 올해 개체수가 많이 나온 만큼 알 개수도 늘어나 내년에도 평년에 비해 유충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하지만 미국흰불나방 유충에 대한 방제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활엽수 잎에서 알을 무더기로 낳고 벌레집 안에 숨어 활동하는 종 특성 때문이다. 특히 한강공원의 경우 상수도 보호구역으로 지정돼있어 살충제 등 화학약품은 사용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미래한강본부 녹지관리과 담당자는 "고압 살수로 해충을 떨어뜨린 뒤 정리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떨어져도 다시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거나 옆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완전한 방제는 어렵다"고 말했다.
stop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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