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동행] "어르신 빛나는 청춘을 담는다"…이석휘 사진작가

조근영 2023. 10. 2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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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문내면 청춘사진관 운영…장수·증명사진 찍으며 봉사활동
사진 작가 이석휘씨 [연합뉴스 사진]

(해남=연합뉴스) 조근영 기자 = 전남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에서는 5일마다 인근에서 가장 큰 시장이 열린다.

해남은 물론 진도에서 올라오는 싱싱한 생선들이 모이는 유명한 곳으로, 지금도 인근 주민들이 제법 모여드는 큰 규모를 자랑한다.

그 오일시장 입구에 별장예식장, 별장사진관이라는 낡고 오래된 간판을 달고 있는 문내면 어르신들의 회춘 장소, '청춘 사진관'을 22일 찾았다.

마침 복지카드에 쓸 증명사진을 찍으러 왔다는 어르신과 청춘 사진관의 사진사는 사진찍기는 뒷전인 채 대화 삼매경에 빠져있다.

장수사진 촬영하는 이석휘씨 [연합뉴스 사진]

이런저런 살아온 이야기며 건강·자식 이야기를 한참 한 후에야, 사진을 찍고 말끔히 보정된 증명사진이 나왔다. 어르신 표정이 더없이 환하다.

"얼굴 상처나 보기 싫을 정도 세월의 흔적은 되도록 지워드리기 위해 애쓰지요. 어르신들도 젊은이들과 똑같습니다. 잘 나온 사진을 받아 들면 정말 좋아하세요."

문내면 유일의 사진관 사장이자 사진작가인 이석휘(59)씨.

2016년 지금 자리에 사진을 통한 치유의 공간인 청춘사진관 문을 열었다.

치유사진연구소라는 이름도 갖고 있는데 단순히 사진만 찍는 곳이 아니다.

이석휘 작가와 아내 조선미씨 [연합뉴스 사진]

이 작가는 '어르신들의 놀이터'라고 표현했다.

삼삼오오 사진관에 모여 이야기도 나누고, 차도 한잔 나누고, 잠시 쉬어 가기도 한다.

전북 고창이 고향인 이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지만 대기업에 취직하기를 원하는 부모님 뜻대로 공고, 공대를 거쳐 국내 굴지의 자동차 회사와 조선회사에서 젊은 시절 열정을 바쳤다.

현대삼호중공업에 근무하면서 대학시절 사진촬영 취미를 살려 사진동호회를 만들고, 어르신 장수사진 촬영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영암에서 시작한 사진 봉사는 해남 강진까지 이어졌고, 2002년부터는 어린이들의 사진 촬영으로까지 확대됐다.

"시설 아동 같은 경우는 학교에 입학하거나 각종 증명서 사진이 많이 필요하더라고요. 대충 찍은 사진이 아이들에게는 상처가 되는지 한번 찾아와 주셨으면 하는 요청이 많아요."

분장 도우미 조선미씨 [연합뉴스 사진]

코로나19 발생 전까지 그가 사진을 찍어준 이는 매년 1천여명 정도.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아내 조선미(58)씨도 주말이면 내려와 봉사활동을 도왔다.

회사 사회공헌팀을 맡아 사내에 봉사 열풍까지 일으킬 정도로 동분서주하는 사이 갑작스러운 돌발성 난청으로 2015년 회사에서 퇴사했다.

떠밀리듯 회사를 떠났고 지인이 살던 해남 우수영을 몇차례 다녀가던 중 사용하지 않는 예식장과 사진관이 눈에 띄었다.

건물 주인의 고집으로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예식장을 임대해 사진관을 열었다.

예식장 특유의 꽃무늬 장식과 피아노, 소파 등이 그대로 남아 레트로한 감성이 물씬 묻어났다.

아내 조씨도 남편 곁으로 합류해 촬영 보조이자 상담 선생님으로 사진관을 함께 꾸렸다.

어떻게 하면 어르신들과 좀 더 잘 지낼 수 있을까, 어떤 대화를 해야 할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부부가 함께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땄다.

'꽃길만 걸으세요' [이석휘씨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아내는 분장사 자격증도 갖추고, 찾아오는 어르신들에게 최상의 모습을 끌어내기 위한 꽃단장에 팔을 걷어붙였다.

사진관 작은 탁자에는 어르신 사진들이 가득한데, 이 작가는 사진 하나하나에 날짜와 이름을 적어 보관한다.

어르신들의 나이가 있는 만큼 언제라도 영정사진으로 쓰일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아름답고, 밝은 모습의 사진을 준비하고 있다고 이 작가는 전했다.

코로나로 멈췄던 사진 봉사도 지난해부터 서서히 재개하고 있다.

해남군과 함께 면 단위 마을 어르신들을 찾아 장수사진, 증명사진을 다시 찍고 있다.

보건소와 협력해 어르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으로 선보인 '꽃노년 청춘 어게인 사진 전시회'는 많은 이에게 감동을 주기도 했다.

장수사진 촬영하는 이석휘씨 [연합뉴스 사진]

사진 찍는 과정이 그야말로 치유의 과정이라는 이 작가는 이 프로젝트를 힘이 닿는 순간까지 계속할 계획이다.

이 작가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청춘의 한순간으로 돌아가 사진을 찍는 어르신들도, 그러한 사진을 보는 이들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며 "어르신들이 청춘으로 돌아가는 순간을 끊임없이 재현하고 싶고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함께 하며 치유받고 싶다"고 말했다.

chog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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