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맨발로 걷냐고요? [편집인의 원픽]

2023. 10. 22.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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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깔린 많은 종이들 가운데 하나를 탁 집어 책상 위에 올려놓는 일. 흔히 언론의 역할로 불리는 어젠다 세팅(Agenda Setting·의제 설정)이 그와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에는 수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그 중에 뉴스 소비자들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가 뭘까. 고민과 취재를 거쳐 우리가 내놓는 기사(어젠다)는 독자에 말을 거는 일이다. 뉴스 수명이 갈수록 빨라지는 요즘,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세계일보만의 기사를 소개한다.
 
몇 년전 대전에 있는 계족산 황톳길을 걸은 적이 있다. 당시만해도 맨발로 걸을 수 있는 산길이 많지 않아 주말 계족산 황톳길에는 오가는 사람들로 제법 붐볐다. 생각보다 말랑말랑한 흙길에 걷기가 수월했다는 것, 어렸을 때 동네에서 맨발로 뛰어놀던 추억이 떠올라 기분이 가벼워졌던 기억이 남아있다. 이 길은 대전 충청권 주류업체인 맥키스컴퍼니가 2006년 조성한 건데 해마다 2000t 이상 황토를 들여와 관리하는 데 연간 10억원 이상 들어간다고 한다. 
맨발 걷기 열풍이 일면서 전국적으로 제2, 제3의 황톳길이 만들어졌다. 지구에 우리 몸을 연결하는 어싱(Earthing)의 대표격인 맨발 걷기가 건강에 좋다는 증언들이 소셜미디어, 유튜브 등을 통해 퍼지면서 너도나도 체험 대열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맨발로 찾은 힐링, 건강...걷는 足足 기가 팍팍’(10월14일자, 한현묵·배소영 기자) 기사는 지방자치단체별로 대표적인 맨발 길과 이를 찾는 시민들의 육성을 전하고 있다. 매일 걷기 인증샷 올리기가 출석 체크인 ‘대한민국맨발학교’도 소개하고 있다.
전남 영광 물무산을 찾은 주민들이 황톳길을 맨발로 걸으면서 숲속 힐링과 건강을 챙기고 있다. 한현묵 기자
◆“두통, 요통이 싹 사라졌어요”

계족산 황톳길을 만든 조웅래 맥키스컴퍼니 회장처럼 ‘맨발 걷기 신자(信者)’가 적지 않다. 조금 과장해서 신을 믿듯이 맨발 걷기를 하면 신체, 정신 건강이 탁월하게 좋아진다는 믿음을 확신하는 이들이다. 내 주변에도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 맨발로 산 길을 걷고 뛰는 이들이 있다. 양약, 한약으로도 고칠 수 없는 지병을 맨발 걷기·뛰기로 치유했다고 주장한다. 체험하지않고는 믿을 수 없지만, 그들의 확신을 부정할 만한 근거를 대기도 쉽지 않다.

“5년전부터 편두통에 시달렸는데 지인 권유로 1년 이상 맨발로 걷다보니 머리가 개운해져 약을 끊어도 될 정도다.” 취재 기자가 전남 화순군 만연산 둘레길에서 만난 김선주(57)씨 얘기다. 이와 비슷한 ‘건강 간증’은 소셜미디어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그만큼 건강 관리에 효력을 본 이들이 많다는 얘기다. 맨발 걷기를 권하는 의사, 전문가들은 맨발로 땅을 밟는 접지를 하면 활성산소를 만들어내는 몸의 양(+)전하가 땅의 음(-)전하를 만나 전류가 흐르지 않게 되고, 체내 염증 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박동창 맨발걷기시민운동본부 회장은 기사에서 “땅과 맨발이 만나는 순간 0볼트가 되면서 몸 속에 쌓여있던 활성산소가 빠져나가 면역력이 길러진다”고 했다.
울산 중구 황방산을 찾은 시민들이 맨발로 황토 등산로를 걷고 있다. 울산 중구 제공
◆맨발 걷기, 만병 통치약은 아냐

맨발 걷기로 두통, 요통, 관절염은 물론 암까지 고쳤다는 증언들도 나온다. 맨발 걷기 열풍이 힐링, 건강을 중시하는 세태 흐름에 영향을 받은 것이긴 하지만 소셜미디어, 유튜브 등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과장된 ‘건강 간증’ 영향도 적지 않다. 하지만 과학적 검증이 뒷받침되지 않는 대부분의 민간 요법처럼 맨발 걷기 열풍에도 회의적인 시선이 없지 않다. 일부 전문가들은 공기 좋은 산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면역력을 높이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면서 ‘황톳길 맨발 걷기’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신발을 신지 않고 걷기 때문에 주의해야할 점도 있다. 유리, 금속 조각과 같은 이물질에 상처를 입지 않도록 조심해야하고 동물의 분면 등으로 인한 파상풍에 걸릴 위험에도 대비해야한다는 것이다. 맨발 걷기 동호인들 가운데 파상풍 주사를 맞는 사람들도 있는데 동물 분변을 통해 사람들 신체에 유입되는 균은 다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령일수록 발바닥을 지탱하는 근력이 떨어지고 지방층이 얇아지기 때문에 특히 조심해야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대전 대덕구 계족산 황톳길에서 외국인들이 맨발로 황톳길을 걸으며 즐거워하고 있다. 맥키스컴퍼니 제공
P.S. 취재한 한현묵 기자에 물었습니다.
 
-직접 황톳길을 걸어봤나.
 
“10여명의 지인들과 산을 걷는 모임을 수년간 이어왔다. 등산이 체력적으로 부담스러워지면서 3년 전부터 둘레길을 걷고 있는데 누군가 전남 영광 물무산 황톳길이 좋다고 해서 한 달에 두세번씩 걷고 있다. 전남 지역에서 나오는 황토를 깔아서 편도 2㎞ 거리를 맨발로 걸을 수 있다.” 
 
-맨발 걷기가 건강에 좋다는 반응이 많던데.
 
“나도 그렇고, 함께 걷는 지인들도 숙면에 도움이 되고, 머리도 맑아진다고 한다. 황톳길을 맨발로 걷는 촉감이 좋아서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왕복 4㎞를 걷다보면 발이 얼얼해지는데 건강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주말에 물무산 황톳길을 다녀오고 한 주를 시작하는 것과 다녀오지 않고 시작하는 기분이 확연히 다르다.”
 
-맨발로 걷는 흙길을 만드는 지자체가 많다.
 
“광주, 전남 지역만해도 자치단체별로 한 두개씩 만들 정도로 많다. 황톳길을 만들면 관리하는데 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사업비 부담이 만만치 않다. 조성비만 수십억원 들어가는 곳도 있다. 하지만 주민들 호응이 좋아 사업 효과가 좋으니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하는 것 같다. 만들어놓고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는 지는 나중에 한번 점검해봐야할 것 같다.”
 
<관련기사>
 
맨발로 찾은 힐링… 건강… 걷는 '足足' 기가 '팍팍' [심층기획]
https://www.segye.com/newsView/20231012526613
 
인증샷으로 출석… 대한민국맨발학교 아시나요? [심층기획]
https://www.segye.com/newsView/20231012526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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