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부 대수술만 3차례… 尹정부, 부동산 공시가격 다시 수술대 올렸다[황재성의 황금알]
2: 공시가 올리기에 초점 맞춘 3번의 수술
3: 신뢰도 회복에 방점 두고 개편 추진
4: 공시가 현실화율 로드맵은 다음달 공개
국토교통부가 지난 15일 발표한 보도자료, ‘부동산 공시제도 개선방안’(이하 ‘개선방안’)의 제목입니다. 공시가격은 현재 67개 행정제도의 기초자료로 활용됩니다.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상속증여세 등 조세 ▲건강보험료 ▲각종 부담금 ▲기초연금, 국가장학금, 근로장려금 등 각종 복지제도 ▲보상 소송 경매 등 각종 토지보상 ▲국·공유재산의 담보 제공이나 사용료 산정 등에 사용됩니다. 그만큼 국민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셈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산정근거 미공개, 외부검증 미흡 등과 같은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습니다. 게다가 지난 문재인 정부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직접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인 부동산 정책 실패의 대표적인 사례로 무리한 공시가격 현실화가 꼽힙니다. 집값이 급등한 가운데 공시가격을 시세에 빠른 속도로 맞춰나가는 과정에서 재산세가 폭등하는 등 적잖은 부작용이 뒤따랐기 때문입니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이 공약과 정부 출범 초기 국정과제에 ‘공시가격의 투명성과 정확성 제고’를 약속했고, 이번 발표는 그 결과물입니다.
부동산 공시제도의 토대가 되는 ‘부동산 가격공시에 관한 법률’(약칭 ‘부동산공시법’)은 1989년 지가산정의 기준을 정하고, 토지·건물·동산 등의 적정한 가격 형성을 유도한다는 취지로 도입됐습니다. 이후 현재까지 23차례에 걸쳐 크고 작은 수정작업이 이뤄졌습니다.
특히 부동산 공시가격 산정방식의 방향을 정하는 수술은 3차례나 진행됐습니다. 공교롭게도 모두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등 좌파 정부에서 추진됐습니다. 대부분 공시가격의 균형성과 형평성 제고 등을 명목으로 공시가격 올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즉 공시가격과 시세의 격차를 줄이는, 공시가격 현실화율 제고가 핵심이었습니다.
반면 4번째가 될 이번 작업은 공시가격에 대한 신뢰도 제고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공시가격이 폭등하면서 이에 대한 국민 불신이 높아진 탓입니다. 다만 이번 개선방안에서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빠져 있습니다. 국토부는 별도로 로드맵을 만들어 다음 달 발표 예정인데, 목표치(현실화율 90%)가 낮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민 생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정치적으로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번 4차 부동산 공시제도 개선방안을 톺아보겠습니다.
●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에서 3차례 수술
이전까지 공시가격은 기준지가(활용·공공보상, 주무부처·건설부(현 국토교통부)) 시가표준액(지방세,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기준시가(국세, 국세청) 등으로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져 사용됐습니다. 이를 통합해 공신력을 높이고, 공적 지가체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겠다는 데 법 도입 목적이었습니다.
부동산 공시제도 개발작업에 직접 참여했던 채미옥 (사)연구그룹 미래세상 이사는 이와 관련해 지난해 10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국토연구원이 발행하는 ‘월간국토’에 게재한 에세이(‘부동산 공시가격제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를 통해 “전국적인 부동산 투기 문제 해결을 위해 전국의 과세대상 필지에 대해 동일한 시점과 기준으로 시장 상황을 반영한 지가정보가 필수적이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또 국내 부동산 공시제도가 독자적인 노력을 통해 개발됐는데도 일본의 공시지가제도를 베낀 것으로 오해받고 있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이는 정부와 업계, 연구기관의 긴밀한 업무협의와 협조체제를 통해 지가체계를 일원화하는 데 성공했지만 일본의 공시지가제도라는 명칭을 사용하면서 자초한 결과였습니다.
채 이사는 이에 대해 “▲기존 기준지가정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외국제도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부처 간 경쟁의식을 잠재울 수 있다는 장점 ▲국내 연구진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제도보다는 외국에서 사용하는 제도라야 안도하던 사회 분위기 등이 작용한 결과”라고 설명했습니다.
당시에도 1993년까지 토지 과세기준의 현실화가 목표였지만 지가가 급등하면서 목표 달성에는 실패합니다. 이후 지가가 안정세를 보이면서 공시가격은 큰 주목을 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외환위기를 거친 뒤 1999년 하반기 이후부터 부동산시장이 불안해지면서 상황이 달라집니다. 이에 김대중 정부는 집권 3년 차인 2000년에 공시지가 현실화 계획을 발표합니다. 지가변동률을 웃도는 적극적인 공시지가 조정을 통해 시세반영률을 2005년까지 90%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골자였습니다. 하지만 이때에도 현실화율의 기준이 되는 시세 산정에 개발이익 등을 배제함으로써 목표를 이루지 못합니다.
두 번째 수술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에 진행됩니다. 집권 내내 규제 정책을 쏟아내며 부동산과의 전쟁을 치렀던 노무현 정부는 종합부동산세 등의 보유세 과세표준을 산정하기 위해 정부가 모든 건물과 부속 토지를 일체로 평가해 가격을 공시하는 ‘주택가격공시제도’를 도입합니다.
이로 인해 공시가격이 크게 오를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이 쏟아졌고, 우려는 현실화됐습니다. 공동주택 공시가격의 경우 처음으로 산정된 2006년 16.20%를 보인 데 이어 2007년에는 22.73%로 치솟은 것입니다. 표준지도 2005년 26.25%, 2006년 17.81%, 2007년 12.40%로 두 자릿수 상승률을 이어갔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2020년 11월에 내놓은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방안’ 역시 공시가 현실화율 제고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공시가격의 균형성을 높이고, 형평성을 확보하겠다는 취지에서 공동주택은 2025~2030년까지, 단독주택은 2027~2035년까지, 토지는 2038년까지 모두 현실화율을 90%로 끌어올리기로 했습니다.
적정가격보다 낮게 공시하는 관행이 지속되면서 평균 현실화율이 50~70% 수준에 불과한 데다, 주택 유형이나 주택 금액별 현실화율이 제각각이어서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부동산 가격 상승과 현실화 제고, 세율 인상 등이 동시에 영향을 미치면서 보유세 등 국민 부담 확대를 초래했고, 부동산 유형별 차이를 반영한 현실화율 제고 속도 차등 적용은 불균형만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발생시켰습니다. 그리고 이는 민심 이반을 불러왔고, 2021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패배와 이듬해 5월 대선 패배로 이어졌습니다.
● 정확한 산정-검증 강화-투명한 결과 공개
정확성 제고를 위한 정책과제는 모두 6가지입니다. 우선 첫 번째는 조사에 필요한 인원 투입 확대(현재 520명→650명+α)와 업무 조정 통한 업무 부담 최소화입니다.
두 번째는 가격 산정에 필요한 기초자료 보강입니다. 특히 지자체가 층, 면적, 구조 등과 관련한 주택의 물리적 특성 변화를 수시로 갱신하는 과세대장을 공시가격에 산정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관련 시행령을 내년 상반기 중 개정하기로 했습니다.
세 번째는 조사자의 현장 조사 강화입니다. 현장 조사 결과와 건축물대장 등과 같은 공부가 일치하는지를 확인하는 체크리스트를 마련해 점검하겠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가격 산정 역량 강화를 위한 담당자 교육 강화와 산정시스템 고도화, 지자체의 평가지표 개선 등입니다. 특히 지자체 업무평가 시 자체적인 공시가격 산정 역량 강화를 위한 노력을 포함시키는 방안이 추진됩니다.
다섯 번째는 지자체가 개별공시가격을 산정할 때 사용하는 비준표의 신뢰도 높이기입니다. 이를 위해 비준표 배율을 정비하고, 통계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가칭)비준표 검증위원회’가 구성됩니다.
마지막으로 조사자의 업무 부담을 줄이면서 객관적인 공동주택가격 산정이 가능한 ‘자동산정모형(AVM)’의 적용입니다. AVM은 부동산원이 2021년 자체 개발한 것으로, 실거래가격 등 다양한 정보를 활용해 해당 부동산가격을 자동으로 산출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철저한 검증은 ⓵공시가격 검증센터를 통한 상시검증제도 도입과 ⓶지자체의 공시가격 검토기능 확대 ⓷이의신청 검토기관 독립 등 3가지로 추진됩니다.
공시가격검증센터는 올해 서울시를 대상으로 세부 절차나 운영방식 설계를 위한 연구용역을 실시한 뒤 내년 중 2~3개 시도에 시범 적용할 예정입니다. 검증센터는 이의신청에 대한 1차적 검토 권한도 갖습니다.
투명한 정보공개는 ⓵특성조사 객관화와 등급 공개 ⓶소유자 대상 정보공개 확대 ⓷공시가격 조사·산정 담당자 실명제 확대 등 3가지입니다.
특히 내년부터 아파트의 층, 향, 조망 등 가격 결정 요인에 등급을 매겨 단계적으로 공개할 방침입니다. 그동안 로열층(통상 중간층)을 기준으로 층별 가격 차이를 나타내는 비율인 ‘층별효용비’가 세대 별로 공개되지 않아 공시가 신뢰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서울 성동구 성수동 갤러리아 포레의 경우 조사자가 세대별 층별효용비를 모두 동일하게 적용했고, 이후 검증 과정에서도 걸러지지 않아 2019년, 2개 동 아파트 230채의 공시가격이 모두 정정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국토부는 내년 상반기에 국민 관심사가 높고 등급화가 상대적으로 쉬운 층(최대 7등급)·향별(8방향) 등급부터 먼저 공개할 예정입니다. 이어 조망(도시·숲·강·기타 등)과 소음(강·중·약) 등 조사자 주관이 적용되는 항목에 대해선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2026년까지 등급 공개를 추진합니다.
● 공시가 현실화율 목표 90%에서 80%로 낮아질 듯
그리고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지난해 11월 국토부 의뢰로 진행한 연구용역 결과를 발표하면서 90%인 목표치를 하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습니다. 공시가격 현실화율 90%를 유지할 경우 집값 급락 시 공시가격이 실거래가를 초과하는 ‘역전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게 판단 근거입니다.
다만 연구 과정에서 현실화율을 80%로 낮추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당시 금리 인상 등으로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는 불안한 시장 상황으로 인해 결론은 내리지 않았습니다.
국토부는 이를 토대로 올해 8월 다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재검토 연구용역’을 발주했습니다. ‘부동산공시법’ 취지와 국민의 보유세 부담 적정 수준, 부동산 시장 상황, 경제 여건 등을 고려해 현실화율 목표치를 새로 제시하는 게 핵심과제입니다.
또 “공시가격과 실거래가격 간 역전현상 최소화 등 공시가격에 대한 국민 수용성 제고도 고려”라고 덧붙엿습니다. 지난해 11월 조세재정연구원이 내놓은 용역결과를 반영하라는 의미입니다.
이와 함께 현실화율 목표 달성 기간 및 달성계획 재검토와 예측하지 못한 경기 변동, 대내외 여건변화 등에 적용할 수 있는 ‘비상대응방안’ 을 제시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현실화 계획의 기계적 적용에 따른 보유세 부담 급등 증 사회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탄력적인 조정장치’도 요구했습니다.
여기에서 탄력적 조정장치는 현실화 계획 일시 중단을 뜻합니다. 필요에 따라서는 현실화율 제고를 위한 공시가 인상은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공시가격 상승률을 떨어뜨리는 장치로 활용될 수도 있습니다.
이에 따라 시세와는 별개로 매년 오르도록 한 공시가격 현실화율도 당초 계획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큽니다. 지난 문재인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2024년 공동주택의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75.6%가 적용돼야 합니다.
이에 앞서 국토부는 국민 세 부담 완화 차원에서 올해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2020년 수준으로 되돌렸습니다. 그 결과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72.7%에서 69%로 낮아진 상태입니다.
일각에서는 현실화율 목표가 90%에서 80%로 낮아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실제로 미국 등 일부 선진국은 세금을 부과하는 기준금액을 시세의 80~90% 수준에서 책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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