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우상은 김병현, 8살 때부터 흉내…” D백스 잠수함 투수가 22년전 우승의 추억을 꺼냈다
[OSEN=백종인 객원기자]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NLCS)가 4차전까지 2승 2패로 팽팽하게 치러지고 있다. 1, 2차전을 내줬던 다이아몬드백스가 홈에서 필리스를 연파하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한 것이다.
특히 21일(이하 한국시간) 4차전 역전승이 중요한 전환점이다. 불펜 데이로 치러야 했던 D백스는 오프너 조 맨티플리가 1회만 던지고 교체됐다. 이후는 ‘돌려막기’였다. 7명의 투수가 나와 막강한 타자들을 상대해야 했다.
그중 가장 긴 2이닝을 책임진 계투조가 있다. 6회와 7회를 막아낸 우완 라이언 톰슨이다. 그는 2안타 2볼넷을 허용하며 1실점 했지만, 중반 승부처를 버텨내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특히 크리스티안 워커, 브랜든 마쉬, 브라이스 하퍼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기세를 올렸다.
경기 후 톰슨의 인터뷰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애리조나 리퍼블릭, 애리조나 센트럴 등 현지 매체와 저명한 스포츠 기자 존 모로시의 SNS를 통해 전해진 내용은 홈 팬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는 “8살 때 봤던 D백스의 월드시리즈 우승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마무리 투수였던 김병현의 투구에 완전히 매료됐죠. 집 뒤뜰에서 그의 폼을 흉내 내며 놀았어요. 동네 야구요? 휘플 볼(whiffle ballㆍ속이 빈 가벼운 플라스틱 공)을 던지면 BK의 공처럼 슉~슉~ 휘어지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해요”라며 웃었다. 애리조나 팬들의 2001년 추억을 소환하는 얘기다.
톰슨(31)은 화려한 경력과는 거리가 멀다. 성장한 곳이 오리건주의 터너라는 도시다. 인구 2500명이 안 되는 작은 곳이다. 여기서 공립학교인 캐스케이드 고교를 다녔다. 물론 말은 야구부였다. 하지만 신통한 팀일 리 없다. 이 학교 출신 중 메이저리거는 톰슨이 유일하다.
고교 때의 기억이다. “그냥 80마일대를 던지는 시골 학교의 평범한 투수였어요. 다른 선수들과 다를 게 없었죠. 그때만 해도 무조건 위에서 아래로(오버스로) 던지는 게 당연했죠. 그런데 어느 날 코치가 그러더라구요. ‘옆으로 한번 해보면 어떨까’라구요. 불현듯 어린 시절이 떠올랐어요. 김병현 말이죠.”
그때부터다.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뭔가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았다. 마음먹은 곳에 편하게 던질 수 있게 됐다. 타자들 반응이 재미있어졌다. 움찔 놀라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한다. ‘이건 뭐지?’ 하는 표정이 된다. 점점 자신감이 붙는다. “2학년이 되면서부터 우리 학교 모든 기록을 갈아치웠죠.”
그렇다고 주변 눈길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불러주는 프로팀이 있을 리 만무하다. 대학 진학조차 만만치 않았다. 우선 2년제 커뮤니티 컬리지로 갔다. 키는 점점 커져 2미터에 육박했다(196cm, 95kg). 하지만 팔은 점점 더 아래로 내려갔다. 그럴수록 공은 현란해진다.
졸업 후 노스 캐롤라이나의 캠벨 대학으로 편입했다. 그나마 야구로 이름이 있는 곳이다. 작년에 타계한 부정투구의 달인 게일로드 페리(1991년 명예의 전당 헌액)가 이곳 출신이다. 현역 중에는 세드릭 멀린스(볼티모어), 잭 네토(LAA) 등이 동문이다.
톰슨 역시 스카우트들의 관심을 끌었다. 독특한 투구폼 덕분이다. 대단한 위력은 아니지만, 불펜에서는 쓸모가 있을 것 같다는 리포트였다. 휴스턴이 2014년 드래프트에서 23라운드에 지명했다. 전체 순위를 따지면 676번째다.
애스트로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괜찮았다. 트리플 A까지 올라갔지만, 2017년 팔꿈치 인대를 다쳤다. 토미 존 서저리로 1년을 쉬어야 했다. 2018년 룰 5 드래프트로 탬파베이로 이적했다. 그리고 2년 후인 2020년 콜업돼 주로 추격조로 활약했다.
D백스로 이적한 것은 올해 8월 말이다. 이후 13경기에서 1실점(ERA 0.69)의 준수한 성적을 올렸다. 특히 이번 포스트시즌서는 시리즈마다 맹활약 중이다. 와일드카드(밀워키), 디비전(다저스전)에 이어 챔피언십까지 6게임을 등판했다. 8이닝 2실점, 평균자책점은 2.25를 기록 중이다.
사실 그의 경력은 불과 두 달 전 중대한 위기를 맞았다. 소속팀 탬파베이에서 전력 외 통보(8월 16일)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때 손을 내민 곳이 D백스였다. 실직(웨이버 공시) 사흘 만에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다. 다시 메이저리그로 돌아갈 수 있었다.
첫 등판이 8월 27일 신시내티와 홈 경기다. 5-2로 앞선 9회 말에 호출됐다. 3타자를 완벽하게 처리하고 세이브를 올렸다. 어린 시절의 영웅이자, 평생의 영감을 제공해준 BK가 서 있던 체이스 필드 마운드에서 이뤄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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