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나라’ 괴인은 어떻게 탄생할까? [K콘텐츠의 순간들]

복길 2023. 10. 22.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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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솔로〉는 시청자에게 출연자의 감정에 이입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출연자가 상황에 몰두할수록 시청자들은 점점 더 출연자와 자신을 분리하고 그들 안에서 ‘빌런 찾기’에 몰두한다.
<나는 솔로>는 다른 소개팅 프로그램들과 달리 4박5일의 짧은 일정을 다룬다. ⓒENA, SBS Plus 화면 갈무리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직업은 외국에서 유학을 마친 성악가다. 남자는 무용가인 여자를 만나고 그의 매력적인 춤에 반해 구애를 결심한다. 성악가는 여자를 보며 진심을 담아 말한다. “음, 걸작이야.” 여자는 그런 남자의 태도가 부담스러워서 자꾸 밀어낸다. 그러나 남자는 자신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해 꾸준히 애정 공세를 한다.

결국 여자는 여기서 더 관계를 발전시키지 말자고 정확히 선을 긋는다. 남자는 여자의 거절에 가슴 아파하지만 이내 단념한다. 구애에 실패한 이들이 폭력적으로 돌변하는 현실을 떠올린다면 이 관계의 결말은 상당히 모범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이 관계가 ‘결말’ 따위가 존재하는 픽션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래서 여기엔 ‘사실은 남자가 여자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뻔한 반전도 없고, ‘여자가 남자의 진심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는 통속적인 문법도 없다. 왜냐하면 한 편의 오페라 같은 이 이야기의 배경은 바로 〈나는 솔로〉 속 가상 국가, ‘솔로나라’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실제 상황’인 〈나는 솔로〉의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솔로나라를 개국한 남규홍 PD도, 재판관 역할을 하는 진행자 데프콘도 마찬가지다. 앞서 말한 이야기가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잠시 복기해보자. 여자에게 거절당한 남자는 슬픔에 잠겨 방에서 눈물을 흘린다. 그런데 같은 방에 있던 다른 출연자는 그의 슬픔을 본 체 만 체하며 드러누워 방귀를 뀐다. 그 소리와 냄새에 남자의 슬픔은 분노로 번지고 남자는 ‘아아악!’ 하고 별안간 고함을 지른다. 방귀를 뀐 출연자는 남자의 눈치를 보며 방을 나간다. 홀로 남겨진 남자는 그 자리에서 선 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실연의 아픔을 견딘다.

상처 입은 남자는 시련에 굴하지 않고 재빨리 타깃을 변경한다. 그는 갑자기 무용가의 친언니(자매가 함께 ‘솔로나라’에 입성했다)에게 마치 처음인 것처럼 구애를 펼치기 시작한다. 그러나 무용가의 언니는 남자의 급변한 태도에 진정성을 의심하고 거절을 표시한다. 두 번이나 거절당했지만 강해진 남자는 더 이상 울지 않고 끝까지 마음을 고백한다. ‘솔로나라’의 개국을 알린 전설적인 명대사도 그때 탄생한 것이다.

“처음 선택이 당신이 아니라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제 마지막 선택은 당신입니다. 당신이 저를 선택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다시 한번 확 쏟아버리고, 확 풀어버리면 됩니다. 하지만 당신이 절 선택해주신다면 지금 저의 이 타오르는 불꽃을 꺼트리지 않겠습니다. 로맨틱한 언어들을 많이 들려드릴게요. 당신의 뮤즈가 되겠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감정에 깊이 몰입해 있지만, 카메라는 그가 속한 상황 전체를 무심히 관찰할 뿐이다. 출연자의 수만큼 다양한 관계의 서사를 교차하면서 이러한 관점은 줄곧 유지되는데, 한 달 혹은 그 이상 촬영을 진행하는 다른 소개팅 프로그램들과 달리 4박5일의 일정을 소화하는 〈나는 솔로〉는 출연자의 점진적인 감정 변화를 정성껏 다루기보다, 짧은 기간 안에 ‘커플 성사’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이들의 움직임에 집중하며, 시청자가 출연자의 감정에 이입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출연자가 상황에 몰두할수록 시청자들은 점점 더 출연자와 자신을 분리하고 마치 한 편의 극을 대하듯 인물의 일거수일투족을 분석하며 선악을 구분해낸다. 시청자의 이러한 ‘빌런 찾기’ ‘괴인 찾기’는 출연자들이 ‘모태솔로’ ‘돌싱’ ‘골드 미스터&미스’ 등으로 특정될 때 더욱 심화되고, 이는 수많은 연애 리얼리티 속에서 〈나는 솔로〉를 차별화하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친구와 단둘이 대화를 하다 보면 가끔 대화의 흐름에서 제외된 모든 이들이 ‘이상한 사람’이 되는 순간이 온다. 특별히 누군가를 꼬집어 비난하는 것이 아님에도, 대화의 주제에 몰입하다 보면 불특정 다수는 맥락 속에서 자연히 괴인으로 희생된다는 의미다. 그런 대화를 통해 서로 잠시 결속하지만, 대화가 끝나면 ‘너와 나’ 역시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이자, 괴인이 된다.

〈나는 솔로〉에 등장하는 ‘괴인’ 역시 그러한 대화 속에 존재하는 괴인들과 다르지 않다. ‘기준과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출연자들은 가혹한 평을 듣지만, 특수한 상황 속에 놓인 사람을 집요하게 관찰했을 때, ‘괴인’이 되는 것을 피할 이는 아마도 드물 것이다. 〈나는 솔로〉가 유독 ‘날것’에 가깝다는 평을 듣는 이유 역시 출연자가 욕망, 결핍, 자기모순을 거침없이 드러내며 ‘괴인’으로 보일 수 있는 지점에서 상황을 윤색하지 않고 그저 인물을 탐색할 여지를 두기 때문이다.

‘솔로나라’를 움직이는 동력

물론 이와 같은 방관적 태도는 출연자를 여론으로부터 보호하지 못하기에, 늘 방송이 가진 문제점으로 지적되어왔다. 실제로 ‘이번 기수에 얼마나 이상한 사람이 나왔느냐’는 〈나는 솔로〉의 흥행을 판가름하는 척도이고, 제작진 역시 그 반응을 지표로 삼아 마케팅에 적극 활용해왔다. 제한된 상황 속에서 출연자들에게 선택과 결정을 강요하고, 서로의 가치관 충돌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연출 방식은 시청자들의 피로를 유발하기도 한다. 인물 간의 날 선 갈등 상황을 ‘사랑의 모호함’으로 봉합하는 자막 연출 또한 이 방송의 ‘시그니처 유머’로 받아들여진 지 오래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솔로〉 속 출연자를 이해하자는 주장과, 이 작품을 전복적이라고 받아들이는 것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다는 얘기다.

〈나는 솔로〉는 아무것도 새롭지 않고, 작품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방송은 출연자와 제작진 모두에게 이점이 될 수 있는 ‘전용 로케이션’이나 ‘시즌제 방영’ 같은 트렌드를 따르지 않는 대신, 제작진의 전작인 〈짝〉으로부터 비롯된 전통적인 연출 방식, 주 1회 방영이라는 원칙을 뚝심으로 고수하여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나는 솔로〉는 새로운 유행을 선도하거나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그 자체로 낡은 질서를 대변하며, 자신의 방식이 변화한 사회에서 어떤 가능성을 만드는지 지속적으로 질문한다. 방송은 단순히 결혼이라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반영하거나 강요하기보다, 사랑이라는 불변의 가치가 시대 속에서 어떻게 진화하고 있으며, 또 그 한계가 무엇인지 탐구하게 하여 TV 예능 프로그램이 가진 재현의 책임을 충실히 이행한다.

이런 효과적인 기능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출연자들을 ‘괴인’으로 낙인찍는 시청 패턴은 개선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여론이 자발적으로 바뀌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에 방송은 지금보다 더 많은 완충지대를 만들어야 한다. 흥행을 위해 한 사람을 ‘괴인’으로 만들었다면, 그와 시청자 간의 감정적 거리를 줄이는 작업에도 성실하게 임해야 한다. 출연자의 행동이 절대적으로 잘못한 것일지라도, 그것이 대중에게 한 사람을 단죄하게 하는 근거가 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나는 솔로〉는 이미 단순한 ‘연애 프로그램’이 아닌, ‘인간 군상에 대한 사회 실험’으로 불리고 있다. 1기부터 봐온 열혈 시청자인 나는 이 방송이 ‘타인과의 관계는 원래 이상하고, 버겁고, 힘들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방송을 만들고 소비하는 방식에 모두가 작은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침범하며 얻는 재미와 기쁨은 더욱 크게 확산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믿음을 갖고 나는 다시 〈나는 솔로〉의 다음 기수를 기다린다.

복길 (자유기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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