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참사 1년]③ 10·29 이후에도 '또'…반복되는 비극 해결책은
전문가들 "데이터 활용 위험예측 시스템 구축하고, 국민 안전의식 높여야"
'2차 희생자 없도록'…피해자 트라우마 치료 지원 목소리도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159명의 희생자를 낳은 10·29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째에 접어들고 있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
정부는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IT 기술을 활용한 현장 인파 관리시스템 도입, 모든 지자체에서 24시간 상황실 운영, 위험 예측이 가능한 재난안전관리 체계 등 각종 방지책을 내놨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 두 달 만에 과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에서 화재 참사가 나고, 홍수 특보가 내려진 올여름에는 충북 청주시와 경북 예천 등 전국 곳곳에서 물난리와 산사태가 나며 인명피해가 컸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대형 재난을 막기 위해 위험을 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은 물론 국민 안전의식 개선, 책임자들의 역량 강화 등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10·29 참사 1년 새…굵직한 대형 사고 이어져
경기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 북의왕IC 인근 방음터널에서 불이 난 것은 지난해 12월 29일이었다.
사망 5명 등 모두 61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비극이 이태원 참사 이후 불과 두 달 만에 발생한 것이다.
당시 단전으로 안양 방향 입구에 있는 터널 진입 차단시설이 작동하지 않아 운전자들이 계속 터널 안으로 진입했다. 더구나 불이 쉽게 붙는 폴리메타크릴산 메틸(PMMA)이 방음터널의 천장과 벽면에 사용된 것이 피해를 더욱 키웠다.
올해 여름에는 전국 곳곳에 역대급 폭우가 쏟아지며 50여명에 달하는 사망·실종자가 나왔다.
이런 대형 재난의 상당수는 일선 기관들의 예방 미비와 부실 대응이 부른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왔다.
25명의 사상자를 낸 청주 오송 지하차도 침수 참사가 대표적인 예다.
제방이 무너져 사고의 원인이 된 미호강에는 사고 당일인 7월 15일 오전 4시 10분에 홍수경보가 내려졌다.
쏟아지는 비로 하천의 수위가 급격히 올라 같은 날 오전 6시 30분에는 이미 경보 수준보다 높은 '심각 수위'까지 도달했지만, 행정당국의 교통통제는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약 두 시간 후 미호천교 인근의 둑이 유실되면서 하천의 물이 삽시간에 지하차도로 쏟아져 들어왔다. 버스와 승용차를 비롯해 15대의 차량이 이곳을 빠져나오지 못해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예천 등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26명이 사망한 경북도는 호우가 소강상태로 접어든 7월 15일 오후 9시에야 도내 모든 지역에 도지사 명의 대피 명령을 내렸다. 이미 곳곳에서 사망·실종 피해가 발생한 뒤였다.
이 때문에 경북도 차원에서 더욱 적극적인 행정력을 동원해 주민 대피를 이끌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제기된다.
예천군에서는 내성천 고평교 하류 부근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던 해병대 소속 채수근 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순직하는 안타까운 사고도 발생했다.
당시 채 상병을 비롯해 구조 현장에 투입된 장병들은 구명조끼와 같은 안전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현장에 투입돼 부대 지휘관들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컸다.
재난대응 책임자 역량 높이고, '안전불감증' 개선해야
전문가들은 대형 사고가 잇따르는 근본 원인으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 재난 대응 시스템 미비, 책임자의 역량 부족 등을 꼽았다.
이송규 한국안전전문가협회 회장은 위험 요인별로 대책을 세우고, 데이터를 활용해 위험을 예상하고 대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시스템이 자리잡힌다면 재난 발생을 예측하고 '지하철이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역을 무정차 통과하겠다'는 식의 안내방송을 내보내는 것도 가능해진다.
이 회장은 "과학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안전관리 시스템도 함께 성장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게 사실"이라며 "향후 디지털 모니터링 시스템이 적극 활용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재난 대책을 마련했다고 하더라도, 관련 법안이 통과되기까지 과정이 너무 복잡하다"며 "이 때문에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는 데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후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과 관련해 국회에서 계류 중인 법률안은 총 12건이다.
공 교수는 "적어도 재난 안전 분야만이라도 절차를 간소화해 신속하게 법이 시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난에 대응하는 기관 책임자들의 역량 강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동헌 한국산업관계연구원 부설 재난안전원 원장은 "적어도 (전문성이 부족한) 선출직 공무직을 대상으로 재난 위기관리에 대한 교육을 의무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재난 발생 시 단계별 및 요인별 대처 교육을 통해 숙련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상만 한국재난안전기술원 원장은 "재난 대응 매뉴얼이 없다고 지적하지만, 사실 너무 많아서 탈이기도 하다"며 "다만 이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안전의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에도 시민들이 안전교육 등을 통해 대응 매뉴얼을 숙지해 화재나 홍수, 교통사고 등 위급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의료계에서는 사고 발생 이후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지 않기 위해서는 유족, 피해자 등의 정신건강 관리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태원 참사를 겪었던 고등학생이 지난해 12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사고 이후 트라우마 극복을 도와야 한다는 얘기다.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대형 재난으로 인한 위험과 불신, 공포 등은 시간이 지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더욱 커진다"며 "사고 당사자를 위한 심리 치료와 사후 정신관리 등을 위해 책임기관이 꾸준히 살펴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교수는 "무엇보다 심리적 불안을 개인의 나약함 정도로 치부하는 사회적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며 "정신건강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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