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만남 15만원, 성관계 30만원”… 홍대 앞 모여드는 ‘경의선키즈’

정채빈 기자 2023. 10. 22. 07: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르포]뒷골목 숨어 삼삼오오 모이던 비행청소년들
홍대 책거리에 버젓이 무리지어 집결
성매매·흡연·혼숙 등 정보 교환
17일 홍대 경의선 책거리에 모여 있는 청소년들. /정채빈 기자

“속옷만 50장 챙겨서 나왔어.”

“미자(미성년자)도 뚫리는 모텔 어디야?”

17일 오후 7시쯤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6번 출구 앞 경의선 책거리에 모인 10여명의 청소년들 대화 일부가 이랬다. 스스로를 ‘경의선키즈’라고 소개한 이들은 평범한 청소년들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머리를 반만 노랗게 염색하거나 짧은 치마에 반스타킹을 입는 등 마치 90년대 일본에서 유행한 ‘갸루 패션’을 연상케 했다.

이들이 언급한 경의선키즈는 일본의 가출청소년을 의미하는 ‘토요코키즈’(トー横キッズ)를 변형한 것이다. 토요코키즈는 도쿄 신주쿠의 영화관 ‘토호시네마’ 옆에 모여있다고 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이들은 미성년 성매매와 음주, 약물 중독, 폭행 등 각종 범죄와 비행에 연루돼 4년 전부터 일본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이들 대다수는 마이너 패션 문화 ‘지뢰계’ 모습을 하고 있다. ‘밟으면 터지는 지뢰같은 여자’라는 의미가 담긴 지뢰계는 정신적으로 취약한 여성을 표방한다.

16일 일본 도쿄 가부키쵸의 토요코키즈 모습. /독자 제공

경의선키즈 무리는 뒷골목이 아닌, 경의선 책거리 광장 한복판에 모여 서로의 비행을 드러냈다. 이들 중 누군가 “미성년자가 모텔이 뚫려?”라고 큰 목소리로 묻자, 다른 누군가 “응. 나는 되던데”라고 답했다. 주변 시선은 의식하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광장 바닥에 드러눕는 이도 있었다.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학생이 머리를 누이자, 남학생이 자연스레 자기 옷을 덮어줬다. 무리 중 일부는 청소년임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피우며 전날의 ‘술자리 이야기’를 공유했다.

이들이 모이게 되는 경로는 엑스(옛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 엑스에 ‘경의선키즈’ ‘멘헤라’ ‘지뢰계’ 등을 검색하면 “경의선에서 노숙하실 분 구합니다” “홍대에서 오프라인 만남하실 분 계신가요” 등의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엑스

열댓명이 광장의 한쪽 스탠드를 가득 메웠다. 지나가던 시민들은 무리지어 있는 이들을 힐끔 쳐다보고는 발걸음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대학생 임모(25)씨는 “아무리 청소년으로 보여도, 10명은 족히 넘게 모여있으니 남자인 저도 괜히 시비 걸릴까 무서웠다”고 했다.

◇ 범죄 노출된 경의선키즈… 여성 청소년 성매매까지

토요코키즈처럼 실제로 성매매 등 범죄에 노출된 청소년들도 있었다. 기자가 경의선 책거리에서 만난 경의선키즈 무리 중 한 명인 A(18)양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집을 나와 성매매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A양은 “아빠의 빚을 떠안게 돼 (성매매를) 시작했다”며 “데이트 30분에 15만원, 종일권도 있다. (성)관계는 한 번에 30만원”이라고 했다. 그는 “성인 남성들이 연인관계를 목적으로 접근해서 난처한 순간이 많았다”고도 했다.

다른 여학생도 최근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30분 만남에 35만원 정도를 번다”며 “남자 만나서 돈 벌고 처벌도 안 받았다. 여중생이라서 무적”이라고 말했다. B양은 “위험한 만큼 돈을 많이 번다. (조건 만남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라서 한 달에 150만원 정도 번다”라며 “뚱땡이도, 할아버지도 돈을 주면 뚱땡이나 할아버지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른바 경의선키즈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경의선에서 경찰에 끌려갔다" "옷가방 하나 들고 홍대 가는 중" 등 서로의 상황을 공유했다. /엑스

◇ 전문가 “가정·학교가 청소년들에게 정서적 안전망 역할 해야”

토요코키즈는 일본에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다. 가출청소년끼리 모여 있다 수많은 사건·사고에 연루되기 때문이다.

2021년에는 토요코키즈 청소년 2명이 토호시네마 인근의 호텔에서 항우울제를 과다 복용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까지 있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조선닷컴에 “일본의 토요코키즈는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현상”이라며 “뒷골목에 개별적으로 모이는 게 아니라 집단적으로 무리 지어 비행을 하고, 또 범죄에 노출된다는 게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토요코키즈가 한국에 마치 ‘문화’처럼 들어온 이유에 대해 전문가는 가정불화와 사회적 안전망 부제 등을 꼽았다.

박종석 구로 연세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가정과 학교가 청소년들에게 정서적인 안전망 역할을 충분히 해주지 못한 데서 생긴 결과”라며 “경계성 인격성향, 우울증, 조울 성향등의 정신적 문제들이 일종의 소극적인 자기파괴적인 행위로 표출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했다.

지뢰계 패션 모습. 주로 리본 등의 장식이 달린 무채색 의상에 통굽신발을 착용하거나, 울어서 눈가가 빨갛게 부은 것처럼 붉은 눈화장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일본 쇼핑몰 '디어마이러브'

이어 “가정환경이 안정적이고 유복한 경우에도 이러한 사례가 있는데, 그들의 경우 평소 내재되어 있던 우울감, 분노가 일탈행위로 표현되거나 정서적 의존과 관심 욕구에 대한 갈망이 왜곡된 방식으로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박 원장은 “공감과 소통, 안전에 대한 갈망으로 생긴 현상이기 때문에 해당 청소년들 지속적인 상담과 치료, 지역사회 전문가들의 사례 관리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