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X·원소주에 투자한 철강사… “제조업도 신성장동력 필요”

최온정 기자 2023. 10. 2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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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중기 오너 2.0] 박정무 ATU파트너스
설립 4년만에 운용자산 1800억… IRR 46%
모태펀드 운용사 선정… “제2의 하이브 발굴”

한국경제를 이끄는 중견·중소기업의 2·3세 경영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들은 선대로부터 배운 승부 근성과 해외 경험을 발판 삼아 글로벌 무대로 뻗어나간다. 1세대 기업인을 뛰어넘기 위해 2·3세가 어떤 고민을 하고 앞으로 무엇을 하려는지 들어본다. [편집자주]

“회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 받은 인상은 ‘변화에 둔감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철강 시장은 성숙기를 지나 성장률이 떨어지는 단계에 이르렀지만 새로운 시도를 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능력 있는 인재를 유치하는 일은 더욱 어려웠습니다.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을 성장동력을 찾는 일이 시급했습니다.”

서울대 화학과와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슬론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한 박정무(46) ATU파트너스 대표는 철강 가공·유통 중견기업 ‘기보스틸’ 창업주 최승옥 회장의 장남으로 현재 기보스틸 부사장을 겸임하고 있다. 기보스틸의 작년 매출은 약 6700억원이다. SBS 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고, 매킨지(McKinsey) 전략 컨설턴트와 CJ ENM 글로벌사업팀장 등을 거치며 콘텐츠·커머스 투자 전문가로 입지를 다졌다.

그는 기보스틸이 창립 20주년을 맞은 2019년 3월, 회사를 도약시킬 새로운 사업 전략을 만들어보라는 최 회장의 부름을 받고 입사했다. 입사 후 한 달간 100명이 넘는 직원들과 1대1 면담을 하면서 회사의 현안을 파악했고,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것이 기보스틸의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박정무 ATU파트너스 대표가 5일 오후 서울 강남파이낸스센터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다. /박상훈 기자

◇ ATU파트너스 설립 4년 만에 운용자산 1800억 돌파

박 대표는 사모펀드 운용사(PEF) ‘ATU파트너스’를 설립하며 깨달음을 실천에 옮겼다. 그는 “내가 기보스틸에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뭘까 고민하다가 PEF를 만들어 고부가가치 산업에 투자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 “모기업에 많은 현금을 가져다줄 수 있고, 인수합병(M&A)이나 투자에 대한 안테나 역할도 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ATU파트너스는 2019년 11월 아시아 최초로 e스포츠 전용 펀드를 설립하면서 첫 번째 펀드를 결성했다. 미래 세대는 기존 스포츠보다 e스포츠에 열광하는 것을 파악하고, 뉴욕 양키스나 레알 마드리드 같은 명문 e스포츠 구단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다. 박 대표는 “당시 e스포츠 구단에 투자하겠다는 운영사가 없었고, 더욱이 우리는 신생 운용사라서 기관투자자(LP)를 모집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1호 펀드로 인수한 e스포츠 구단이 DRX였다. 이 구단은 지난해 유력한 우승 후보였던 e스포츠 구단 ‘T1′을 꺾고 롤드컵에서 우승하면서 파란을 일으켰다.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라는 유행어도 여기서 생겨났다. 롤드컵 우승 후 각계각층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면서 인수 당시 60억원이었던 DRX의 가치는 현재 많이 올랐다.

2021년에는 ‘원소주’를 제작한 박재범의 회사 ‘컬처앤커머스’에 투자했다. 당시 기업가치는 10억원이었다. 박 대표는 원소주 유통·마케팅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 전통주 장인과 협업해 원소주를 제작하고, 편의점과 온라인으로 제품을 유통하면서 20~30대가 즐길 수 있는 소주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도 박 대표가 박재범과 함께 고민해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ATU파트너스는 현재까지 30여개 회사에 직·간접적으로 투자했다. 라이프스타일(문화·콘텐츠·소비자·헬스케어) 분야 기업이 주 투자처다. ‘캐치티니핑’을 만든 SAMG엔터와 푸드테크 기업 ‘인테이크’, e스포츠 데이터 서비스 기업 ‘op.gg’도 포함돼있다. 설립 4년 만에 운용자산(AUM)은 1800억원을 돌파했고, 지난 6월말 기준 내부수익률(IRR)은 46%에 달한다.

투자 성과를 인정받아 모태펀드의 운용사로 2차례 선정되기도 했다. 2020년 7월 처음 운영사로 선정돼 51억원 규모의 펀드를 운용했고, 올해 4월에는 K컬처테크 M&A 분야 모태펀드 운영사로 선정됐다. K컬처테크 M&A 펀드는 이달 말까지 410억원으로 1차 마무리한 뒤, 추가로 펀드를 조성해 최대 1000억원 이상으로 설정될 예정이다. 이 펀드로 제2의 하이브·크래프톤을 발굴한다는 계획이다.

작년 2월 서울 영등포구 더현대서울에서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 브랜드 원소주(WONSOJU) 팝업 스토어 오픈 행사가 열렸다. 시민들이 원소주를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뉴스1

◇ “철강·금융 두 축으로 매출 5조원 기업 만들 것”

박 대표는 현재 부사장으로 있는 모기업 기보스틸에도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힘쓰고 있다. 그는 기보스틸이 운영하는 스틸 서비스센터(SSC·철강 유통·서비스 센터)에 아마존 클라우드 기반 스마트팩토리 시스템을 업계 최초로 도입했다. 기존에는 운영 지시를 수기로 남기거나, 엑셀로 작성해 생산이력을 찾아보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데이터로 기록이 돼 생산 이력이나 과정이 전산화됐다.

기보스틸의 조직문화를 바꾸는 데도 힘썼다. 박 대표는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임원 등 6단계로 나뉘던 직급을 사원·프로·임원 등 3단계로 줄였다. 수평적이고 유연한 기업문화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였다. 또 대내적으로는 직원들이 회사에 건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대외적으로는 고객과의 소통을 강화했다.

최승옥 회장과 임원들은 박 대표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있다. 박 대표는 “평소 모친이 일군 성과를 존경해왔는데, 이제는 사모펀드 운영이나 글로벌 네트워킹 측면에서 부족한 점을 내가 채워주고 있어 좋은 시너지를 내고 있다”면서 “임원들도 ATU파트너스를 설립할 때 주주로 참여하는 등 많은 지지와 격려를 보내주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향후 철강과 금융을 두 축으로 참아 기보스틸을 키울 계획이다. 박 대표는 “포스코도 포스코기술투자를 통해 성장하고 있듯이, 기보스틸도 ATU파트너스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면서 “10년 뒤에는 매출 5조·영업이익 1조를 내는 회사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규제는 과제다. 박 대표는 “가업을 상속받으려는 중견기업 2·3세에 대한 지원보다 규제가 더 많은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산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중견기업이 영속해야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도 가능하다”면서 “최소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유사한 수준으로 세금 등 규제를 완화한다면 2세들도 기업을 탄탄하게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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