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를 찾아서] “행복한 청소년, 정신이 건강한 성인 되려면 영유아 때 ‘감정의 뇌’ 길러줘야”

이정아 기자 2023. 10. 22. 06: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소아우울증 전문가 신의진 세브란스 소아정신과 교수
세 돌 전까지 뇌는 폭발적으로 발달
영유아 때 뇌 발달 문제가 10대 청소년-성인기까지 이어져
학업 성취 인지 능력 뿐 아니라 사회성 ‘비인지 능력’ 기르는 교육 강화가 최선책
신의진 연세대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소아정신과 교수가 비인지 능력을 강화시키는 교육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이정아 기자

최근 불안과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으려면 대학병원은 보통 2~3년, 개인병원은 6개월~1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전문가들은 3년간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어졌던 코로나19 대유행을 지나면서 정신적으로 힘들어진 사람이 많아졌다고 보고 있다. 특히 청소년의 우울감이 심각해졌다. 비대면 수업으로 일반적인 학교 생활, 교우관계를 맺지 못한 데다 학업과 진로 문제, 학교 폭력 같은 스트레스가 더해졌다는 것이다.

청소년 우울증 문제는 통계에도 나타난다. 지난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우울증 진료를 받은 만 6~11세 초등학생이 2018년에는 1849명이었는데 2022년에는 3541명으로 1.9배 늘었다. 만 12~14세 환자는 5893명에서 9257명, 만 15~17세는 1만 5605명에서 2만 4588명으로 증가했다. 초중고등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는 2018년 144명이었는데 2022년 193명으로 1.4배 늘었다. 원인으로는 역시 학업과 진로 문제(167건) 정신건강 문제(161건), 대인관계 문제(134건)가 꼽혔다.

하지만 소아청소년의 우울증이 비단 학업 스트레스와 코로나19 대유행에서 비롯된 문제일까. 신의진 연세대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는 “훨씬 더 어린 연령층, 영유아기 때부터 겪은 뇌 발달 문제가 학업 스트레스, 코로나19에 따른 거리두기가 일종의 트리거로 작용하며 우울증으로 불거졌을 것”이라고 봤다. 이때 감정을 조절하는 뇌의 기초가 세워지기 때문에 튼튼하게 발달하지 않으면 청소년기 때 심각한 증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신 교수는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뒤 학교 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와 박사를 마치고 2년간 소아정신과 트레이닝을 받았다. 이후 미국 콜로라도대에서 영유아 정신건강 임상훈련을 받고 국내 최고 영유아 정신건강 전문가가 됐다. 그는 2009년 2월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인 ‘나영이’의 심리치료 주치의로 유명하다. 전 19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신의진 교수는 “10대 청소년, 이들보다 어린 미취학 아동이 우울한 이유를 찾으려면 ‘행복=정신질환이 없다’라는 공식이 맞는 것인지에 대해 먼저 생각해보자”고 말했다. 다음은 신 교수와의 일문일답.

一정신질환이 없다면 행복한 것 아닌가. 반대로 행복한 사람은 모두 정신질환이 없다고 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정답은 무엇인가.

“정신질환이 없는 것은 행복하기 위한 충분 조건일 수 있지만 필요충분 조건은 아니다. 다시 말해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도 행복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소아청소년들이 행복하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말과 ‘정신질환 문제 없이 자랐으면 좋겠다’는 말은 서로 다른 이슈다.

‘정신이 건강하다’는 말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정신이 회복 탄력성이 좋다는 뜻이다. 나의 환경이 좋아서 편히 사는 게 아니라, 환경이 갑자기 나빠지더라도 무너지지 않고 살아내는 것이다.

대부분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연령과 관계없이 우울증 환자에 대해 치료를 하고 다시 건강해질 수 있도록 재활하는 데 집중한다. 물론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우울증이 발병하고 난 뒤에야 치료하기 전에, 왜 생기는가에 집중할 필요도 있다. 즉, 정신건강한 사람에게 우울증이 발생하는 초기에 일찍 발견해 개입해야 한다. 중증으로 번지지 않게 막아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一그렇다면 건강한 사람이 건강검진을 하듯이 정신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소아청소년도 정신건강검진이 필요하다는 말씀인가.

“그렇다. 특히 코로나19 대유행 동안 많은 사람들이 우울감을 느끼고, 또 실제로 우울증 환자가 늘어났다. 이 기간 동안 우울증 환자가 2021년까지 7배 증가했다. 이 때문에 현재 대학병원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으려면 2~3년을 기다려야 하고, 개인병원에서도 최소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공공적인 측면에서 모두가 행복해지려면 이미 우울증이 발병한 사람을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마음 건강을 지켜야 한다.

특히 영유아들의 마음 건강을 살피는 일이 중요하다. 지난해 1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연구결과에 따르면 어느 하나 제외할 것 없이 모든 국가에서 영유아들에게 발달지연이 나타났다.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내내 사회적 거리두기로 가족 외에는 만나는 사람도 거의 없었던 데다, 만나더라도 서로 마스크를 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유아들은 소리뿐 아니라 입모양과 표정을 읽고 언어와 소통을 배우는데, 마스크로 상대방 얼굴이 가려져 있으니 ‘소통의 뇌’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해 언어 발달이 지연됐다.

국내 데이터는 없어서 우리 연구팀이 직접 영유아 발달조사를 한 결과를 지난해 11월에 발표했다. 서울시 25개구 어린이집에 다니는 만 0~5세 영유아 456명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검진을 해봤더니 약 48%에 해당하는 220명이 ‘전문적 도움이 필요한 아동’으로 분류됐다. 이들 중 약 33%는 발달장애 의심군, 약 48%는 정신건강 위험군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영유아들이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에 태어나 자라면서 뇌가 아주 빠르게 발달하는 시기에 악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친구들과 만나 뛰어놀 기회가 줄어들었고, 마스크를 사용해 의사소통을 배울 기회가 줄어든 데다, 부모 역시 이 기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탓에 아이와의 상호작용 문제가 생겼다.

비슷한 기간 특정 지역의 초등학교 1학년~중학교 3학년 학생 4812명을 대상으로 마음건강 검사를 한 결과, 약 38.5% 학생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은 직접 자기의 우울감을 인지하거나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0~5세 영유아는 표현하기가 어려우니 전문가를 만나보는 것이 좋다. 특히 영유아 대상 트레이닝을 받은 소아정신과 전문의가 아이를 검진해야 한다.”

一영유아라면 아직 학업이나 대인관계 스트레스가 없을 나이인데 어떤 문제가 있을 수 있나. 영유아 때 생긴 정신건강 문제가 10대 이후까지 이어진다는 말인가.

사람의 뇌세포는 평생 개수가 더 늘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특정 사고나 행동을 자주 하면 할수록 관련 뇌세포들끼리의 네트워크(신경망)가 진해진다. 특히 세 돌 전 영유아 시기에는 뇌가 급속도로 발달한다. 6세까지 신경망 발달이 최고조에 이른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면 이중 가장 속도가 빠른 신경망만 남게 된다./Stahl S M, Essential Psychopharmacology (2000)

“영유아들은 주로 양육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수십 년 전에는 엄마와 조부모 등 여러 가족이 집에서 함께 아이를 길렀지만, 지금은 엄마가 혼자 키우거나 또는 맞벌이 부부 가정인 경우 기관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다.

이때 발생한 분리불안 등 애착 문제는 10대 청소년기뿐 아니라 성인기까지 이어진다. 예를 들어 자해나 자살 시도를 하는 10대 청소년이 갑자기 마음에 병이 들어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문제가 있던 것이 이어져 어떠한 트리거가 있을 때 분출되는 것이다.

아이들을 행복하게 키우려면 신경발달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사람의 뇌세포는 평생 개수가 더 늘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특정 사고나 행동을 자주 하면 할수록 관련 뇌세포들끼리의 네트워크(신경망)가 해진다. 특히 세돌 전 영유아 시기에는 뇌가 급속도로 발달한다. 6세까지 신경망 발달이 최고조에 이른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면 이중 가장 속도가 빠른 신경망만 남게 된다. 그래서 이 시기에 오감 자극을 다양하게 주라고 하는 것이다.

세 돌 전까지는 특히 ‘감정의 뇌’라 부르는 변연계가 발달한다. 이 영역은 초기 애착 형성, 정신건강과 관련이 있다. 자기를 조절하고 다른 사람과 유대감 등 감정을 공유하게 한다. 이때 엄마아빠가 애착을 많이 주면 이걸 담당하는 뇌세포끼리 네트워크를 강하게 이루며 그 기능도 풍부해진다. 반면 이 부분이 잘 발달하지 않으면 사회성이 떨어지고, 심각하게는 자폐스펙트럼 장애와 유사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또한 애착 등 정서적인 자극이 없이 스마트폰이나 게임 등 외부 자극만 받는다면 정서 네트워크가 옅어진다. 이렇게 뇌가 건강하지 못하게 발달한다면 사춘기에 호르몬 변화가 생기고, 학업이나 학교폭력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있을 경우 건강한 방법으로 해소하지 못한다. 결국 스트레스가 쌓여 우울증, 중독, 자살, 자해 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렇게 뇌 발달을 고려해 아이를 키워야지 정신 건강이 튼튼해지고 10대 소아청소년기를 비롯해 성인기에도 행복할 수 있다.”

一하지만 요즘은 대부분 맞벌이 부부 가정이다. 당연히 세돌 전, 심지어는 첫돌 전에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는 아기들도 많다. 엄마가 아이에게 애착을 주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신의진 교수는 "영유아들이 5세가 될 때까지 뇌 발달과 정신건강을 보전해주고, 이후 어린이들도 건강한 마음으로 자라날 수 있는 그런 전문기관을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 사진은 어린이집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정아 기자

“전문가의 입장으론 세 돌부터 어린이집을 보내라고 말하고 싶다. 밥을 스스로 먹고 기저귀 없이 배변을 가리고 또래끼리 노는 등 단체 생활을 할 수 있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부모가 아이를 3년 간 키워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엄마나 아빠가 독박 육아를 하는 경우, 양육자의 정신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만큼 아이를 키우는 일이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에는 부모가 다했던 역할을 이제는 사회도 ‘제대로’ 해줘야 한다. 그러려면 교육학자들과 신경발달학자들이 협업해야 한다. 소아정신과 전문의와 의과학자들도 머리를 맞대어야 한다. 이들이 정책에 참여해 아이들을 잘 길러내는 방법을 만들어 실현해야 한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도 가정에서처럼 아이들에게 애착이 잘 형성되도록 ‘비인지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아이들의 능력을 ‘인지 능력’과 ‘비인지 능력’으로 나눠 강화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인지 능력이 언어나 수학 등 학업 성취와 관련된 것이라면 비인지 능력은 호기심과 사회성, 자제력, 열정, 낙관성, 유연성, 감사하는 마음, 회복 탄력성 같은 정신 건강과 관련된 능력이다.

한국 교육에서도 비인지 능력을 강화하는 교육에 투자를 해야 한다. 지금도 학교에 상담 교사는 있지만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문제만 해결하는 데만 그칠 게 아니다. 비인지 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아이들을 이끌어야 한다. 그러려면 코딩 교육이나 영어, 수학 같은 선행 학습보다도 비인지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만들어 도입하고, 이를 할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

一미국에서 비인지 역량 강화에 대해 공부하고 오셨으니 국내에도 잘 구축할 수 있겠다. 혹시 국내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 있는가. 앞으로 하려는 일은 무엇인가.

“2004년부터 어린이 성폭력 피해자를 상담, 치료, 법률 지원, 사건 조사를 모두 처리하는 해바라기아동센터를 성공적으로 운영해왔다. 이처럼 제2의 해바라기센터로 ‘비인지 역량 강화 센터’를 열어주고 싶다.

현재 서울시가 영유아 대상으로 서울아이발달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발달에 문제가 있는 아이를 선별하고 전문가가 도움을 주고 있다. 어린 나이일수록 치료 효과가 높아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가능성이 높다.

또한 경북 교육청이 내년도에 ‘영유아 비인지 역량강화센터 운영 사업’을 하기로 했다. 이 사업이 잘되면 초등학교와 중학교로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지역에까지도 넓히고 싶다.

비인지 역량강화는 쉽게 말해 ‘과학적인 인성교육’이다.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정신이 건강하게 잘 길러내야지, 우울증이 발병한 뒤에 약물로 치료하는 것이 최선이 아니다. 이 부분을 미국이나 영국처럼 인정하고 압도적으로 실현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나라의 미래는 무척 암울하다. 안 그래도 지금 저출산이 문제인데, 귀하게 태어난 아이들이 대부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정신질환이 생기고 행복하지 않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아이들이 5세가 될 때까지 뇌 발달과 정신 건강을 보전해주고, 이후 어린이들도 건강한 마음으로 자라날 수 있는 그런 전문 기관을 만들고 싶다. 또한 비인지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제자들을 많이 키우고 싶다. 병이 생긴 다음에야 치료하는 모델이 아닌, ‘조기 개입-조기 예방’ 모델로 대한민국 어린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클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영유아 비인지 역량 강화를 위한 피라미드 모델. 현재 소아정신과 병원에서는 주로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 발생했을 때 치료하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소아청소년이 건강하려면 정신을 건강하게 보전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마음 건강의 문제를 조기에 발견해 조기에 개입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뇌 발달을 염두에 둔 비인지 역량 강화 교육이 필요하다. /자료=신의진 교수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