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케이션] 떠나요~ 일하러~ 전 지금 열일중입니다

지유리 2023. 10. 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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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소멸 해법 ‘워케이션’] 제주 구좌 세화마을서 2박3일 워케이션 체험
질그랭이거점센터 공유사무실로 출근
한결 가벼운 몸과 마음…기사도 술술
능률 향상·스트레스 해소 가장 큰 장점
퇴근후 여행객 모드…지역 활성화 기여

지방소멸이 심각하다. 농촌지역마다 관계인구를 불러 모으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여러 해법 가운데 ‘워케이션’이 눈길을 끈다. 워케이션(Workation)이란 일(Work)과 휴가(Vacation)의 합성어로, 휴가지에서 일하는 근무 형태다. 인터넷·컴퓨터·스마트폰만 있으며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직종이 많아지면서 등장했다. 도시를 떠나 워케이션을 즐기는 이들을 ‘디지털 노마드족’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농촌에 짧게는 하루, 길게는 몇달씩 머물며 지역경제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지방소멸의 대안으로 떠오른 워케이션 유형과 국내외 사례를 톺아봤다. 기자가 2박3일 워케이션 체험에도 나섰다.

일하느라 노트북을 노려본 지 벌써 2시간째다. 목이 뻣뻣하고 졸음이 쏟아진다. 미간에 잡힌 주름은 좀체 펴질 줄 모른다. 머릿속이 어지러운 걸 보니 휴식이 필요한 때인가보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넘실대는 파란 파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곧장 노트북을 접고 일어섰다.

“바다로 가자!”

한창 일에 몰두하다가 잠깐 쉬는 시간. 사무실 문만 나서면 곧장 제주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지끈지끈하던 머리가 금세 상쾌해지고 다시 열심히 일할 힘이 생긴다. 워케이션으로 일과 휴식, 두마리 토끼를 한방에 잡았다. 제주=현진 기자 sajinga@nongmin.com
공유 사무실 창밖 풍경이 그림 같다. 탁 트인 전망이 업무 스트레스를 확 풀어준다.

◆일과 쉼 동시에…능률 업(Up)=최근 2박3일 동안 제주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질그랭이거점센터를 방문했다. 지난해 5월 문을 연 센터는 세화리가 2015년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에 선정되면서 마련했다. 사업비 78억원으로 오래된 예식장을 고쳐 1층에 사무소, 2·3·4층에 각각 세화마을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카페 477+, 공유 사무실, 게스트하우스를 뒀다.

천혜의 풍광을 자랑하는 제주는 워케이션 성지로 꼽힌다. 그중에서도 질그랭이거점센터는 가장 많은 이용객이 찾는 곳이다. 공유 사무실은 일하기 편리하도록 모니터·복사기·프린터 등이 구비됐고 세미나실도 갖췄다. 휴식을 위한 마을 여행 프로그램도 풍성하다. 한 건물에 숙박시설까지 있는 것도 장점이다. 주로 기업에서 워크숍처럼 단체로 방문해 이용한다. 지난해에만 워케이션 목적으로 20개 기업에서 600여명이 찾았고 올해 이용객은 1000명을 넘어섰다. 공항에서 오는 직행버스가 있어 뚜벅이 이용객에게도 안성맞춤이다.

눈치 보지 않고 편한 복장·자세로 일할 수 있는 것도 워케이션의 장점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지난해 시행한 ‘워케이션 시범사업’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8.2%가 업무 수행이 만족스러웠다고 답했다. 그 밖에 회사에 대한 충성심과 애사심을 강화한다는 연구 결과도 뒤따르면서 워케이션을 독려하는 기업이 많다. 이런 변화에 발맞춰 제주도는 워케이션사업 활성화를 위해 힘을 쏟고 있다. 통합 플랫폼을 개설해 민간 사업장 18곳을 선별·중개한다. 내년까지 공공 워케이션센터 3곳도 개소한다. 도 관계자는 “워케이션 이용을 촉진하기 위한 바우처사업도 진행한다”면서 “워케이션을 위해 제주를 찾는 분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는데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워케이션 일과는 오전 9시에 시작한다. 눈을 뜨자마자 모자를 눌러쓰고 밖으로 나간다. 백사장을 거닐며 기지개를 켜고 정신을 차린다. 게으름 피운다고 오해는 금물이다. 맑은 정신으로 스마트폰을 들어 뉴스를 훑어보고 머릿속으로 오늘 할 일을 천천히 정리하는 것도 엄연한 업무다. 철썩철썩 파도 소리를 배경음악 삼는 출근길이라니! 매일 1시간30분씩 지옥철을 타고 가는 서울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오전 10시 정각, 공유 사무실에 짐을 부렸다. 근무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것은 워케이션 성공 팁이다. 휴가 온 기분에 휩쓸렸다간 업무 할당량을 채우기 어렵다. ‘일하기 싫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잠시, 수평선이 한눈에 담기는 자리에 앉으니 일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기사를 쓰기 시작한다. 일하다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자리를 옮긴다. 폭신한 소파에 앉거나 좌식 테이블이 있는 평상으로 가 반쯤 누워 일한다. 카페에 내려가 백색소음 속에서 일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몸과 마음이 편하니 기사가 술술 써진다. 틀에 박힌 사무실에서 벗어나 낯선 환경에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능률이 높아지는 것.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스트레스 해소가 쉽다는 점이다. 서울에서 IT업계에 종사하는 김도연씨(29)는 “꽉 막힌 사무실에선 속이 답답하고 늘 짜증이 났는데 여기선 바다를 보기만 해도 사르르 마음이 풀린다”며 웃었다. 놀고 싶어서 일을 미루게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아무리 워케이션이라지만 해야 하는 일이 정해져 있으니 게으름은 피울 수 없다”고 답했다.

제주 제주시 구좌읍 질그랭이거점센터 2층에 있는 카페. 음료 한잔을 사면 3층 공유 사무실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

◆노마드족 북적이며 지역경제에 활기=워케이션에서 놓칠 수 없는 것이 ‘저녁이 있는 삶’이다. 일을 마치면 곧바로 여행객 모드가 된다. 동네 카페 구경을 해볼까. 해녀박물관에 가볼까.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세화마을협동조합에서 제안하는 여행 프로그램에 참여해도 좋다. 아침에 다랑쉬오름 둘레길을 걷는 노르딕워킹과 퇴근 후 마을을 유람하는 야밤투어 등이 준비됐다. 물때가 맞으면 낮 동안 해녀 체험 프로그램도 할 수 있다. 여러 여행·체험 프로그램은 모두 지역민이 운영하는 것으로, 덕분에 일자리가 생기면서 지역경제에 활기가 돈다.

여행의 묘미 가운데 하나는 맛있는 음식을 맛보는 것일 터. 저녁 일정은 맛집 탐방이다. 카페에 앉아 뭘 먹을까 고민하니 양군모 세화마을피디(PD)가 맛집 엽서를 건넨다. 세화마을협동조합은 워케이션 이용객을 위해 가볼 만한 음식점을 소개하는 다양한 전단을 제작·배포한다. 전단을 들고 식당에 방문하면 소소한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향토음식 전문점인 ‘모다정’을 골랐다. 메뉴는 이름도 생소한 접짝뼈국이다. 돼지고기로 맛을 낸 국물이 일품이다. 슬리퍼를 신고 나온 40∼50대 주민들 사이로 연신 가게를 두리번거리는 청년들이 앉아 있다. 질그랭이거점센터가 생긴 뒤로 동네 식당에 젊은 손님이 꽤 늘었다. 지역민들은 실제 매출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줬다고 입을 모은다.

워케이션 체험 후기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찾은 제주. 조금은 낯설고 기사 마감에 대한 부담은 여전히 컸지만 청정 자연에서 얻는 에너지 덕분인지 어느 때보다 열정이 넘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의 중요성을 실감하는 하루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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