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기억하는 첫 '낚시'는 어떻게 악몽으로 변하나[PADO]

조희정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2023. 10. 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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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다 리몬의 시집 'The Hurting Kind'(2022) 표지. /사진제공=Milkweed Editions


누구에게나 '처음'은 강렬한 경험이다. 처음으로 타인에게 설레는 마음을 느끼던 순간, 처음으로 급여가 통장에 들어오던 순간,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구름 위로 올라 본 순간,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던 순간, 처음으로 누군가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느끼는 순간. 살면서 '처음'은 이렇게 여러 가지 방식으로 우리에게 찾아오고 그때마다 다양한 감정으로 가슴을 뛰게 한다. 하지만 같은 경험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처음'이 가져다준 설렘과 긴장, 기쁨과 슬픔, 그리고 경탄과 공포 등의 느낌은 무뎌지고 일상화된다. 시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우리 안 어딘가에 잠재된 그 '처음'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때때로 시인은 남다른 감수성으로 포착한 경험을 진솔하게 전달함으로써, 우리의 기억 속에 묻혀 삶에서 어느덧 사라져 버린 '처음'을 새롭게 느끼도록 이끌고 그로부터 시작되는 감정의 파장을 다시 체험하게 한다.

'첫 물고기'(The First Fish)는 최근에 미국의 계관 시인(Poet Laureate)이 된 에이다 리몬(Ada Limon)의 2022년 시집 '상처 입은 부류'(The Hurting Kind)에 수록되었다. 이 시집은 여러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특히 '뉴욕 타임즈 서평지'(New York Times Book Review)에 실린 글에서는 "여기에는 훌륭한 시들이 많이 있고 상당수는 진정한 걸작"이라는 극찬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평자들은 이 시집의 시들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채 조금은 어설픈 상태로 보인다는 상반된 평을 내놓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대부분의 서평들이 이 시집에서 공통적으로 주목하는 시는 바로 '첫 물고기'인데, 이 시를 읽어 보면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하게 된다. 이 시는 '처음'의 느낌을 생생하게 재구성하여 우리 안에 되살려 새로운 시각에서 그 '처음'을 바라보고 인식하게 하려는 시인의 노력이 드러난 흔적이며, 그 결과물에 대한 가치 평가는 읽는 사람에 따라 다소 엇갈릴 만한 여지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에이다 리몬 - 첫 물고기 (번역: 조희정)
내가 스키너 호수의 거울 같은 이중의 표면 밖으로 그 거대한
물고기를 끌어 올렸을 때, 나는 그 잡아당기는
짐승을 바로 놓아주고 싶었다. 낚싯대에 걸린 재난,
그 물고기는 알루미늄으로 된 작은 배 전체를
자신의 숨 막히는 세계 바닥을 향해 당겨 내릴 것 같았다.
늙은 나무 같은 아저씨가 버티라고 소리쳤고
나를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 내가 비틀대고 또 비틀대서 마침내 그 까만 잉어가
올라와 나를 만나는 것을 보았을 때, 까만 눈이 까만 눈을 향해.
하얀 아이스박스 안에서 그 물고기는 너무나 난감해 보였다.
여기서 내가 사과해야 하는 것일까? 그 물고기뿐
아니라, 호수와 땅 전체에게, 나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친 약탈과 소멸에 대해서.
나는 그 물고기의 끔찍한 입이 마치 자신이 목숨을 잃도록 만들 야만적인
소녀를 삼키려는 듯 벌어지던 것을 기억한다. 그 금테 두른
눈은 나를 용서하지 않았다, 면죄도 아니고, 유예도 아니었다.
나는 무언가를 잡고 싶었고, 그 물고기는 살고 싶었다,
우리는 결코 그 밑바닥 물고기를 먹지 않았고, 그건 장미 덤불 옆에 묻혔다,
나의 조상들이 그해에는 장미들이 두 배로 크게
피어났다고 선언했던 곳에, 그러라고 시키는 말을 들었기에 내가
어떤 것을 죽였던 그해에, 내가 나의 쌍둥이를 만나
용감하다고 불리기 위해 울지도 않고 그를 묻었던 그해에.

시인 에이다 리몬. /사진=Lucas Marquardt

이 시에서 시인이 회상하는 기억은 어린 시절 첫 낚시에 대한 것이다. "까만 잉어"가 처음으로 낚싯대에 걸려서 아직 조그만 소녀에 불과한 시인과 팽팽한 힘겨루기를 하며 마침내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 시인은 고통스러울 정도의 불편감을 느낀다. 그 거대한 물고기의 "까만 눈"은 원망스러운 듯 소녀를 응시하고, "끔찍한 입"은 소녀를 잡아 삼킬 것처럼 떡 벌어진다. "하얀 아이스박스"에 들어가서까지도 생사를 건 싸움을 멈추지 않는 물고기의 모습을 보면서, 작은 소녀는 다른 존재로부터 생명을 빼앗는 역할을 한 스스로의 행위에 대해 죄의식을 품게 된다. 꼭 낚시가 아니더라도, 이와 유사한 경험을 '처음'으로 하게 된 기억은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 엄마 손을 잡고 시장에 가서 도망 다니는 닭을 잡는 모습을 '처음' 보던 기억, 살아 있는 게를 톱밥에서 꺼내 꿈틀거리는 움직임을 제압하며 '처음' 요리에 돌입하던 기억, 아니면 토막 난 뒤에도 아직 움직임이 남아 있는 산낙지를 '처음' 입 안에 넣어 빠르게 흡입하던 기억. 이런 '처음'의 기억들은 각각 그 나름대로 강렬하며 우리 안에서 꽤 큰 감정의 파장을 일으켰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이렇게 '처음'이 가져다준 날것 그대로의 느낌은 비슷한 사건들이 반복되는 과정을 거쳐 많은 사람의 인식에서 지워지거나 묻히기 일쑤이다. 그에 비해, 리몬이 회상하는 첫 낚시의 기억은 지금도 여전히 그 괴로움이 사라지지 않은 것으로 느껴질 만큼 생생하다. 어찌 보면, "물고기"와 "나" 사이의 관계로부터 시작해서 "호수와 땅 전체"를 향해 "여러 세대에 걸친 약탈과 소멸"에 대한 깊은 죄의식을 경험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이 시의 전개는 다소 당황스러울 만큼 갑작스럽다. 이 시에서 전개되는 사유가 약간 설익은 것으로 느껴진다는 일각의 평가는 아마도 이런 면에서 나온 것이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이 조금 당혹스러운 비약은 "늙은 나무"와 "아저씨"가 그저 닮았다고만 생각하던 어린 소녀의 첫 경험이 오랜 세월에 걸친 복기를 거듭한 후에야 비로소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자연과 인간의 분리에 대해 실감하지 못했던 한 소녀가 '처음'으로 자연과 대립하게 된 기억은 성장 과정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뇌리에 남아 인류가 거듭해 온 "약탈",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된 "소멸"을 아프게 뉘우치도록 만들었던 듯하다.

시의 후반부에서 이 뉘우침은 소녀의 낚싯대에서 희생된 "까만 잉어"가 단순히 "밑바닥 물고기" 한 마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으로 발전해 간다. 리몬은 "우리"가 그 물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표현을 통해 자연물에 대한 약탈의 역사가 반드시 인간의 생존을 위한 절실한 필요 때문에 강제된 것만은 아니었음을 암시한다. 활짝 피어난 "장미"의 이미지는 문명의 찬란한 개화가 이루어졌던 과거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하며, 그 바로 옆에 물고기가 묻혀 있다는 구절은 눈부신 발전의 이면에 언제나 고통받고 희생되는 존재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인간 문명의 진보를 향해 달음질쳐 온 긴 역사는 한편으로 자연물들을 학대하고 공격하고 황폐하게 만든 역사이기도 한 것이다.

더 나아가서, 리몬은 이 시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희생되어 묻혀 있는 "밑바닥 물고기"가 사실은 자신의 "쌍둥이"와 같은 존재였다고 고백한다. 자연물을 향해 휘두른 칼날이 결국 인류에 대한 역공으로 변하고 마는 악몽 같은 상황을 이미 너무 많이 경험한 탓에, 시인의 이런 고백에는 부인할 수 없는 설득력이 실린다. 시의 첫머리에서 첫 낚시의 장소인 스키너 호수를 "거울"에 비유해 표현한 부분, 그리고 "까만 잉어"와의 조우를 "까만 눈"과 또 다른 "까만 눈"이 만나는 장면으로 묘사한 부분을 통해, 리몬은 인간이 자연물을 해치는 것이 결국 거울상 속에 있는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논리를 시 전체에 걸쳐 펼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돌이켜 보면, 한동안 '지속 가능한'이라는 어구가 유행처럼 사용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스러져 가는 지구의 생태계를 어떻게든 다시 어느 정도 복원시킬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남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 '인류세'에 대한 담론이 번져 나가고, 많은 이들은 인간이 지구에서 누리는 삶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얼마나 이어질 수 있을지 의문을 던지는 중이다. 어떻게든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낙관, 어찌 되든 내 알 바 아니라는 무관심, 어떻게 해도 이제 어쩔 수 없다는 비관. 이런 다양한 반응들이 교차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리몬의 이 시는 적어도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 인간과 자연의 뒤틀린 관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라는 점을 말해 준다. 비가역적으로 망가져 버린 생태계를 온전하게 되돌릴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 '망가짐'의 역사가 자연을, 그리고 우리 모두를 함께 파멸시켜 가고 있다는 윤리적 자각은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실천이 시작될 수 있는 최소한의 전제일 것이기 때문이다.

에이다 리몬은 미국의 시인으로 시집 'The Hurting Kind'(2022), 'The Carrying'(2018) 등이 있다. 2022년 라틴계 여성 시인으로 최초로 미국의 계관 시인이 됐다.
조희정은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하버마스의 근대성 이론과 낭만주의 이후 현대까지의 대화시 전통을 연결한 논문으로 미시건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간과 자연의 소통, 공동체 내에서의 소통, 독자와의 소통, 텍스트 사이의 소통 등 영미시에서 다양한 형태의 대화적 소통이 이루어지는 양상에 관심을 가지고 다수의 연구논문을 발표하였다.

조희정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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