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 남성에게 입양 보내려고 제 입양 서류는 조작됐습니다"
[윌리엄 보르히즈 해외입양인]
제 입양 이야기는 일곱 살이던 1976년에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독신인 미국인 사업가에게 한국에서 입양되었습니다. 양아버지는 1974년부터 서울에 살고 계셨고, 저를 입양한 후 1978년 미국으로 이주할 때까지 2년을 더 한국에서 살았습니다.
저는 고아원에 들어가기 전 대전 근교의 작은 농촌 마을에서 살았습니다. 친어머니와 친아버지는 열심히 일하는 행복한 가정으로 기억됩니다. 초가지붕과 진흙벽, 미닫이 문이 있는 전통 가옥에서 살았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집 앞에 있는 펌프로 물을 길어다 사용했습니다. 다른 아이들과 함께 놀았던 기억이 있는데, 그들이 형제 자매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친아버지의 사진 한 장이 항상 제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는 짚더미를 옆에 두고 집 앞 흙바닥에 앉아 계셨어요. 그 짚으로 밧줄을 만들고 계셨죠. 저는 밧줄을 바라보다가 친아버지의 손을 보고 얼마나 빨리 밧줄을 엮는지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저와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지으셨죠. 친아버지는 키가 작지만 강인한 분으로 기억됩니다. 친어머니는 친아버지와 함께 논에서 자주 일하셨던 것 같아요.
어느 날 어머니와 저는 버스를 타고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버스 안은 사람과 동물로 가득했고 엄청나게 냄새가 나고 시끄러웠습니다. 버스는 어느 순간 다리 앞에서 멈췄습니다. 다리의 모서리가 파손되어 모두가 버스에서 내려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걸어서 강을 건넜고 운전기사가 버스를 조심스럽게 운전해 다리를 건넜습니다. 다리 반대편에서 사람들은 모두 다시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이때 제가 처음으로 자동차를 탔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도시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커다란 둥근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계셨어요. 어머니는 저를 데리고 시장에 농산물을 팔러 가셨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한 손으로 바구니의 균형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제 손을 꼭 잡으셨어요. 함께 걸으면서 어머니는 나를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어요. 그녀는 긴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앞코가 뾰족한 고무신을 신고 있었어요. 이날이 제가 처음으로 도시로 간 날입니다.
그 다음 기억은 한 남자가 저를 길거리로 끌고 간 것입니다. 저는 울부짖으며 어머니를 불렀습니다. 그 남자는 저를 한 아파트로 데려갔습니다. 냉장고와 소파가 있는 현대식 집을 그때 처음 봤습니다. 그 남자는 저를 아파트에 남녀 한 쌍과 함께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다음날 그 남자가 돌아와서 저를 대전 숭실고아원으로 데려갔습니다. 그곳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입양서류에는 거의 1년 동안 있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저는 부모님이 있다는 사실을 속이고 고아로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낯선 사람이 제 이름과 생년월일을 어떻게 알았겠어요. 숭실고아원에서 저는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운영하는 상록보육원으로 옮겨졌습니다. 1976년 12월 10일, 미혼의 미국인 사업가였던 양아버지가 저를 입양하러 오셨습니다. 고아원에서 이 남자와 같이 살지 않겠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다른 아이들에게 "3일만 여기 더 있으면 된다"고 말하며 제 방으로 돌아갔어요. 1976년 12월 13일, 양아버지는 저를 데려가려고 왔습니다. 제가 양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간 지 이틀 후 학대가 시작되었고, 거의 6년 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2005년 말, 아내와 저는 어린 두 아이와 함께 전북 군산으로 이사했습니다. 아내는 부모님을 그리워했고 저는 아이들이 유일한 조부모를 모른 채 자라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저는 비자 신분을 '관광'에서 '재외동포(F-4)'로 변경하기 위해 입양서류가 필요했습니다. 홀트 측에 연락해 서류를 받아 이민국에 제출한 뒤 입양서류를 다시 보지 않았습니다. 우리 가족은 2008년 한국을 떠나 미국 캘리포니아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2017년이 되어서야 옷장을 뒤져 중요한 서류를 찾다가 입양 서류를 발견했습니다. 호기심에 읽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몹시 당혹스러웠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1976년 12월 13일이 아니라, 1977년 2월 23일에 입양 서류가 접수됐다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제 입양 서류에 더 많은 불일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평생 동안 양아버지는 제게 "12월 13일은 우리 기념일이야. 네가 나와 함께 살게 된 날이야"라고 말씀하시곤 하셨죠. 하지만 1977년 2월 23일까지 입양 서류가 접수되지 않은 것을 보고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홀트는 서류가 접수되기 두 달도 전에 아버지가 저를 고아원에서 집으로 데려가도록 허락했습니다.
둘째, 제가 처음 갔던 숭실고아원에서는 "어머니: 알 수 없음", "아버지: 알 수 없음"이라고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홀트는 저의 신분을 "기아"로 변경하고 친어머니는 "미혼 재봉사인 가출 여성"이라고 썼습니다. 고아원에서는 모른다고 했는데, 홀트는 어떻게 친어머니에 대해 알 수 있었을까요?
셋째, 양아버지가 저를 입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홀트가 "입양모"의 이름과 주소를 적었다가 지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홀트는 아버지가 독신으로 입양 승인을 받지 못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아버지가 결혼한 것처럼 보이도록 서류를 위조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버지는 평생 결혼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아는 모든 시간 동안 아버지는 여자친구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홀트 측에 연락한 후 저는 그들이 거짓말을 은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제가 진실을 찾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그때 친구가 아동권리보장원(NCRC)에 대해 알려줬습니다. 저는 그곳에 연락해 친가족을 찾기 위해 입양 서류, 사진, 사연, DNA 등 필요한 정보를 제출했습니다. NCRC로부터 제 DNA가 경찰청(NPA)에 제출되었다는 통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한국의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경찰청에서 가족을 찾는 데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경찰은 일대일 비교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후 저는 한국 입양인들의 DNA 검색을 통한 가족 찾기를 지원하는 단체인 '325캄라(325Kamra)'에 제 DNA를 입력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일치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2022년 말, 한 친구가 입양 산업에 의해 입양 과정에서 인권이 침해된 입양인들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덴마크 한국인 권리 그룹(DKRG)에 대한 기사를 보내왔습니다. "나는 덴마크 출신도 아니고 북유럽 출신도 아닌데 미국인 입양인 문제도 포함될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들을 통해 입양인들이 한국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TRC)에 조사를 요청할 계획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저는 조사를 요청했습니다.
DKRG에 연락을 하고 나서 드디어 제가 혼자가 아닌 것 같습니다. 전 세계에서 저와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수백명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겪은 일을 이해하고 마음의 평안을 추구하는 다른 사람들의 응원과 격려를 생애 처음으로 느낍니다.
2022년 9월, 283명의 해외입양인들이 진실화해위원회에 입양될 당시 인권침해 여부를 판단해 달라는 조사신청서를 제출했다. 지난 11월15일, 12월9일 두 차례에 걸쳐 추가로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372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권위주의 시기에 한국에서 덴마크와 전세계로 입양된 해외입양인의 입양 과정에서 인권침해 여부와 그 과정에서 정부의 공권력에 의한 개입 여부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 다행히 진실화해위는 12월8일 '해외 입양 과정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조사 개시 결정을 내렸다고 발표한 데 이어 지난 6월 8일 추가로 237명에 대한 조사 개시 입장을 밝혔다. 이는 한국이 해외입양을 시작한지 68년만의 첫 정부 차원의 조사 결정이다. <프레시안>은 진실화해위에 조사를 요청한 해외입양인들의 글을 지속적으로 게재할 예정이다. 편집자
[윌리엄 보르히즈 해외입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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