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기 "데뷔 25주년, 뮤지컬 없는 삶 생각해본 적 없어"[문화人터뷰]
'7인의 탈출'로 드라마 첫 도전…"매운 맛 봤다"
[서울=뉴시스] 강진아 기자 = "민영기는 대한민국 뮤지컬 배우입니다."
12살 난 아들이 텔레비전 인공지능 스피커에 "민영기가 누구냐"고 물어볼 때마다 돌아오는 답이다. 이 말을 자주 들으며 뮤지컬 배우 민영기는 스스로의 책임감을 되새긴다. 올해 데뷔 25주년을 맞은 그는 자신의 삶에서 뮤지컬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뮤지컬을 빼놓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25년 동안 외길이었죠. 뮤지컬은 제 삶 그 자체에요."
최근 서울 강남구 EMK뮤지컬컴퍼니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25년간 한결같이 무대에 설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한양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1998년 오페라 '돈 조반니'로 데뷔했다. 하지만 곧바로 뮤지컬에 뛰어들어 한길을 걸어왔다. 현재 공연 중인 '레베카'를 비롯해 '모차르트!', '잭 더 리퍼', '더 라스트 키스' 등 굵직한 작품에 다수 출연하며 가창력을 기반으로 '믿고 보는 배우'로 통한다.
10주년 기념 공연 중인 '레베카'는 민영기의 대표작 중 하나다. 그는 2014년 재공연부터 합류해 총 7번 시즌 중 다섯번을 함께했다. 아름답지만 기묘한 맨덜리 주택의 주인이자 남자 주인공 '막심 드 윈터'로, 이 역으로 역대 최다 출연 배우다.
다섯 시즌을 함께해오며 그도 함께 성장했다. "저 스스로도 발전하려고 노력했어요. 원작 소설은 물론 최근에 OTT에 나온 '레베카' 영화도 참고하며 더 세심하게 작품에 접근했죠. 연기적으로나 내면적으로 같이 성장한 만큼 소중한 캐릭터에요. 처음엔 혈기 왕성하게 힘을 강조했다면, 이제는 노련미가 생겼죠."
극 중 막심이 아내인 레베카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털어놓는 넘버인 '칼날 같은 그 미소'는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의외로 가장 어려운 곡으로는 막심이 극 초반에 순수함을 지닌 '나'에게 사랑을 느끼는 '놀라운 평범함' 넘버를 꼽았다.
"처음엔 '칼날 같은 그 미소'를 힘으로 밀어붙였어요. 내 이야기만 하는 막심이었다면, 지금은 '나'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애절한 마음을 표현하죠. (소리를) 내지르는 곡은 오히려 편하게 할 수 있는데, 감성적인 노래는 더 힘들어요. 그래도 강약 조절을 하면서 요즘은 조금 편하게 부르게 됐죠. 소리엔 끝이 없어요. 지금도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중들은 그의 인생 캐릭터로 '이순신'을 떠올린다. 넘버 '나를 태워라'는 지금도 불러 달라는 요청이 많을 정도. 그가 꼽은 인생작은 2006년 초연한 '화성에서 꿈꾸다'다. '정조' 역으로 2007년 제1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작품이다.
"정조대왕의 삶을 좋아하고, 본받고 싶어요. 넘버 '달의 노래'는 3층 무대에 올라가면서 하는 노래였는데 기억에 많이 남아요. 백성을 달에 빗대며 고뇌를 담아내는데 지금도 부르기 힘든 명곡이죠. 대중들에게 제가 알려지고 '노래 잘하는 배우'라고 제시된 작품이지 않나 싶어요."
그는 정조는 물론 '바람의 나라'의 '대무신왕', '사마이야기'의 무령왕, '왕의 나라'의 공민왕 등 중후한 목소리로 유독 '왕' 역할을 많이 했다. 하지만 올해는 뮤지컬 '맘마미아!'의 '해리'로 밝은 캐릭터를 선보이기도 했다. "무거운 작품을 많이 하다가 밝은 역할을 하면서 오랜만에 웃을 수 있었다. 25주년에 쉬어가는 느낌처럼 제가 힐링이 됐다"고 말했다.
더욱이 올해는 드라마에 처음 도전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드라마 '7인의 탈출'에 방다미의 양부인 '이휘소' 역으로 출연했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땐 고사했지만, 아내인 배우 이현경의 권유와 친분이 깊은 배우 엄기준의 출연 등을 고려해 고심 끝에 받아들였다.
"이번에 매운맛을 봤어요.(웃음) 사실 그동안 그 매력을 전혀 몰랐어요. 드라마 섭외가 와도 거절했죠. 예전에 CF나 뮤직비디오도 찍어봤지만, 카메라를 보고 하는 연기에 벽을 느꼈어요. 왜 저를 택했는지 물어봤는데, 김순옥 작가님이 민영기를 무조건 잡아 와야 한다고 했대요. 작가님이 뮤지컬을 좋아해서 제가 기준이랑 같이 무대한 것도 봤고, 비슷한 사람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해서 고민 끝에 수락했죠."
이번 드라마 진출을 계기로 문은 열어뒀다. 하지만 무대는 영원한 우선순위다. "뮤지컬이든 드라마든 새로운 작품을 하면 팬들도 굉장히 반가워한다. 이번에 드라마를 보고 기다렸다는 팬들도 있고, 새로운 모습이 필요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제 원칙은 '무대에서 솔직한 배우가 되자'는 거예요. 슬픈 척, 기쁜 척, 아픈 척…'척'하지 말고 솔직하자고 다짐하죠. 처음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죠."
☞공감언론 뉴시스 aka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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