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로 알려진 ‘크리스 카일’의 흉상이었거든요. 본인은 영국인인데 카일과 함께 훈련을 받았고 그를 생생히 기억한다며 그를 기억하고 피규어를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인형을 구매하시더라구요. 본인이 잘 칠할수는 없지만 ‘카일’이 내 친구이기 때문에 구매한다고 하시는데 소름이 돋더라구요.”
모형의 시작
“어릴적부터 모형을 좋아했었어요. 초등학교 때 아카데미 콘테스트에 나가 상도 받아보고 모형에 좋은 기억이 많죠.”
“제가 사는 동네에 과학사가 있었어요. RC카, 서바이벌 건, 프라모델을 취급하는 지금의 하비스토어 같은 곳을 과학사라고 했었는데 매일 들려 구경만하는데도 사장님이 그렇게 잘해 주실수가 없었어요. 모형 만드는 방법도 알려주시고 라면도 끓여주시고... 나중에는 가게에 모형작업을 할 수 있게 공간도 제공해주시고 모형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도와주시는 등 친구처럼, 아버지처럼 잘 해주셔서 너무도 감사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렇게 중학생 때까지 열심히 즐기다가 미대 진학준비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손을 놓게 됐죠. 군 전역하고 미술학원강사를 오래했는데 가르치는 일이 너무 질리더라구요. ‘내가 하고 싶은 일, 재밌어 하는 일을 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렇게 모형을 다시 잡았는데 그때 눈에 띈게 인형이었어요.” 수년만에 접한 피규어는 예전과는 수준이 완전히 달랐어요. 가치가 있다고 느껴질 만큼 정교한 것들이었죠. 김만진, 이상언, 윤기열작가의 작품들을 보면서 ‘나도 이거 해야겠다!!이거 하고 싶다!’ 강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됐어요.”
레진피규어
“레진피규어는 30년정도 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것 같아요. 초기는 퍼티를 이용해 손으로 원형조형을 다했어요. 이후에 유토나 스컬피로 제작이 되다가 지금은 3D로 뽑아내기 시작했죠. 3D 프린터로 넘어간지 얼마 안됐어요. 프린터가 상용화되면서 불을 붙였죠. 저희 넛츠도 프린팅을 일찍 시작했거든요. 정부에서 출력센터를 갖춰놓고 3D 프린팅 관련 산업 지원을 많이 했었는데 그 당시 황준하 CTO님이 FDA부터 레이저 고가 장비까지 다 다룰줄 알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도입했죠.”
“10년 전에 프린팅 된 출력물이랑 지금 출력물을 비교해 보면 당시 억대가격의 기계보다 지금 몇 백만원짜리 프린터의 결과물이 훨씬 정교합니다. 비교가 안될 정도죠. 3D프린트 원천기술 가지고 있던 회사들이 있었는데 라이센스가 풀리면서 저가의 보급형 기계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한거죠.”
“3D스캐너로 실물을 스캔하고 정리하고 다듬는 모델링방법을 사용해 생산하는 업체도 많아졌어요. 디테일도 나쁘지 않고 제작시간도 짧죠. 다른방법으로는 3D 프로그램으로 하나하나 그려가면서 만드는 방식도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 조형사나 업체의 개성이 잘 표현되는 것 같아요. 아무리 디테일하게 스캔하고 정교하게 출력해도 작가의 손이 가고 안가고는 페인팅을 해보면 맛이 달라요. ”
“손으로 조형하면 바로 몰드작업을 들어갈 수 있는데 디지털 출력물은 다듬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가몰드는 실리콘을 사용하는데 내구성이 좋지 않아서 오래 못가요. 횟수도 20회 정도로 많이 안 나오죠. 프린팅이 용이한 파팅이 있고 생산에 용이한 파팅이 있어요. 꼭 ‘손으로 조형해야된다.’ ‘프린팅을 해야된다’라고 나누어 지는 건 아니거든요. ”
“한번에 여러개를 뽑을 수 있는 틀을 만들어 쓰기도 하고 한 번 제작공정이 돌아가면 레진의 공기층을 제거하는 탈포시간, 굳히는 시간 등을 계산하면 1시간에서 1시간 반정도의 시간에 한번 생산이 됩니다. 또 레진이 굳으면서 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실리콘 몰드가 식어야 다음 작업을 할 수 있거든요. 타이밍이 시간 순서대로 차곡차곡 돌아야 되는 일이기 때문에 다른 업무와 시간 활용이 유기적으로 돌아가야합니다.”
제품의 기획
“상품을 기획할 때, 예를 들어 히스토릭, 밀리터리 분야에서 ‘어느 시대, 어떤 인물을 아이템으로 하자.’ 의논을 하고 협의해서 진행을 합니다. 인물이 정해지면 거기에 맞춰 원형의 기본 프로포션(scale)부터 디자인하고 수정하고 마무리까지 2~3번의 단계를 거쳐 모델링이 완성 됩니다. 이후 출력하고 후가공으로 분할을 해서 생산이 용이하게 만들어 줍니다. 원형모델로 복제를 할 수 있게 틀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샘플이 나오면 박스아트 페인팅에 해주고 이미지 작업 후 홍보, 판매과정을 거치죠. 이 과정이 계속 반복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모든 작업이 수작업이라 대량생산이 불가능하고 수요 맞추는게 쉽지 않습니다. 감당할 수 있는 적정수량이 있어요. 주문이 일정 수량을 넘어가면 오히려 힘들어지고. 적으면 적은대로 힘들죠. 아이러니 하게도 많이 팔린다고 무조건 좋아할 수가 없죠.”
“제품 하나가 나오면 사이즈나 장르, 라이센스 물인가 아닌가에 따라 수량이 다 다르게 정해져요. 초기제작 비용자체도 다릅니다. 캐릭터 라이센스는 국내는 원천적으로 막혀있어요. 거의 해외시장을 통해서 하죠. 반면 히스토릭 물이나 밀리터리 쪽은 자유롭죠. 예를 들어 ‘마블의 어떤 캐릭터를 기획한다’ 고 하면 동일한 사업이 겹침으로 인한 손실이 명확한 드러나게 되는데 ‘2차대전의 군인, 무슨 장군’ 이런 기획은 2차 창작 영역이거든요. 조금 민감한 부분이긴 한데 그 경계가 있어요.”
넛츠플레닛, NutsPlanet
“넛츠플레닛은 13년도에 처음 시작해서 10년 되었네요. 계속 회사를 성장시키는 것 보다는 어느 정도 규모가 되면서 유지하는게 관건이거든요. 피규어 페인팅 분야에 관심도는 높아진 방면 3D프린터가 상용화 되고 게임쪽이나 미술쪽 인력들이 많이 유입되면서 새로 시작하는 업체나 개인들도 많아 졌어요. 예전보다 진입장벽도 많이 낮아져서 누구나 집에서 피규어를 제작 할 수 있고 조금만 능력이 되면 시작할 수 있는 일이예요 . 그만큼 경쟁도 치열해진 부분도 있구요. ”
“나름 수출업이다 보니 국내보다는 해외시장에 치중되어 있고 해외정세에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아요. 브렉시트 때는 영국 연금 수익률이 줄어들면서 취미활동에 쓰는 돈이 확 줄어드는게 느껴지더라구요. 영국에 기반을 두고 유럽 전역으로 수출이나 영업을 하던 업체는 관세라는게 갑자기 생겨버리니 도매업을 못하게되는 경우도 있었구요. 그만큼 저희도 수출 마진이 안남아 힘들었죠. 환율 부분은 항상 신경써야 되구요. 이게 작은 사업인데 모든 영향을 다 받아요. 또 일본에 수출하는데 지금 엔화가 떨어지고 달러가 올라가 갑자기 일본 소비자들은 두배 가격에 구매를 하게 되니 판매량이 줄기도 하구요. 도매마진이며 관세, 환율 차익도 반영되니 신경쓸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예요. 처음엔 이런걸 몰라서 정말 힘들었는데 하다보니 알게 되더라구요. 잡무가 엄청 많아요. 국내 피규어 시장이 성장했다고는 하지만 해외판매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라 항상 국제정세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전에는 한달에 하나를 칼같이 지키며 신제품 출시 했는데 지금은 주기를 좀 늘렸습니다. 3개월에 하나정도 출시 하고 있어요. 겉으로는 제품만 개발판매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내부적인 업무도 많고 외부 업체 주문도 받으면서 여러분야로 활동반경을 넓히고 있어요. 페인팅 샘플 작업이라던가 업체에서 주문하는 양산 피규어부터 주문 생산품들 의뢰도 있구요.”
“저희가 생산하는 제품들이 장르 특성상 미완성 품이잖아요. 도색을 필요로 하는 킷트. 어떻게 보면 저희는 입체스케치를 제공하고 컬러를 얹는 작업은 유저들이 하는 거죠. 미완성품이니라 시장이 제한되는 것도 있어요. 완성품이면 유통을 해보겠다는 제안도 많았는데 불가능하죠. 페인팅이 하나 완성에도 며칠이 걸리는 작업이니까요. 완성품을 만들기에 가장 어려운 장르의 산업이죠.“
“2차 대전물이 제일 인기가 좋아요. 처음에 SD(Super Deformation, 2~3등신의 귀엽게 표현한 등급)처럼 만들었어요. 초기 컨셉은 그렇게 쭉 가려고 했어요. 컨셉이 있으면 제가 스케치를 그리고 조형해서 제품이 나왔던건데 만들어 놓으면 정말 이쁘거든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아이템인데 판매가 좋지 않았어요. 반응을 보면 다들 볼때는 신선해하고 좋아하는데 구매로 이어지지가 않는거죠. 볼때만 좋은거예요. 어쩔수 없이 기존 유형, 흉상이나 밀리터리, 히스토릭 쪽으로 넓혀나갔죠. 아쉬움에 ‘그래도 가끔 SD타입을 만들어보자’ 했는데 점점 잊혀져가고 있네요.”
취미로서의 피규어 페인팅
“국내는 경제수준이 올라오면서 40~50대 분들이 늦게나마 시작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주말에 이곳에서 강의도 하는데 대부분 직장인 분들이고 연령대가 높은 편이예요. 은퇴하며 즐길 취미를 찾다가 오신 분들도 계시고요. 이 분야가 매니아층이 얇아요. 건프라같은 인젝션 킷이라던가 미소녀피규어 수집이 대중적인 방면 이쪽은 매력을 느끼시고 매력을 느꼈더라도 실제로 페인팅 작업까지 하는 경우는 완전히 다른영역이거든요. 배워보겠다고 오셔서 해보시고 안될 것 같다고 바로 포기하는 분들도 많이 계세요.”
“그래도 이 분야를 파고 있는 마니아분들의 수준은 굉장히 높은 편이예요. ‘삼성전자 동호회 비욘더스’기사 봤거든요. 대부분 다 아는 분들이고 한다리 건너면 전부 지인분들이죠. 그렇게 열심히 하시는 분들도 드물어요. 결과를 내고 끝맺음을 짖는 능력에 있어서는 뭐랄까 삼성맨의 저력이 느껴진다랄까요. 정말 대단한 실력자들이시죠.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해도 끝까지 밀어붙여 하는게 쉬운일이 아니잖아요. 그 수준까지 올라오는게 쉽지도 않구요.”
피규어 페인팅의 본진, 유럽
“이 문화의 본진은 유럽이거든요. 유럽은 공방단위로 모여서 작업하고 배우는 활동들이 오래됐어요. 강의도하고 작품의뢰도하고 작품 판매도 하면서 활발하게 돌아가죠. 유럽내에 관련된 박람회들도 많습니다. 10월 14-15일 네덜란드 아이트호벤에서 SMC(Scale Model Challenge), 스케일모델 첼린지라는 행사가 열렸는데 매년 유럽전역에서 참가자들이 모여요. 메인쇼는 출품대회이고 한 해에 2000에서 2500점의 페인팅 작례나 조형작품들이 전시됩니다. 피규어 뿐 아니라 스케일 모형부터 건프라같은 인젝션 캐릭터까지 꽉 차죠.”
“저희 넛츠플레닛도 참가했는데 유럽행사같은 경우 1년에 한번 가는 것도 쉽지않아요. 일본이나 말레이시아 대만 쪽은 년간 6~7번 정도 참가를 합니다. 유저들에게 사진으로만 볼 수 있었던 저희 작품들을 실물로 선보이는 자리죠. 실물로 보면 또 다른 느낌이거든요. 저희는 시작 때부터 지금까지 행사위주로 홍보를 많이 했어서 항상 준비를 많이 해갑니다. 테이블에 쫙~ 깔고 선보이면 작례가 있는 상품위주로 찾는 유저들이 많아요. 지금은 몇몇 작품들이 일본 매장에 전시 중이라 사무실에 많이 없는 편이네요.”
국가별 시장 현황
“캐릭터의 나라 일본이 이 시장에 클 것 같지만 의외로 히스토릭, 밀리터리 레진피규어 시장에서는 이제 관심을 보이는 정도예요. 일본 모델러들은 붓으로 칠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과거에 좀 있었다고 해요. 인젝션 계열의 스케일 모형을 붓을 대서 칠하면 망친다는 느낌이 있고 유성도료들이 신너에 반응하기 때문에 리터칭이 안되거든요. 먼저 칠한 부분이 녹아버리니까요. 그래서 붓칠에 두려움을 갖고 있었나봐요. 일본 잡지사와 조인해서 기사를 내보낸지 4~5년 됐는데 이제서야 뭔가 천천히 시작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시장 변화가 굉장히 느리죠. 그래도 역시 첫걸음을 내딛으니 붓으로 어마어마한 작례를 내놓는 일본작가 분들이 바로 등장하더라구요.”
“유럽도 워해머 쪽에서 유입된 신규유저들이 정말 많아요. 반대로 히스토릭, 밀리터리 장르에 고여있던 유저들이 판타지계열로 넘어가는 경우도 많구요. 유행이 돌고 도는 것 같아요. 메카닉, 판타지, 미소녀, 건담, 밀리터리 이런식으로 돌고 돌죠. 한쪽만 파면 좀 지겨워지기도 하니까요. 히스토릭물은 인간의 역사가 다 들어가 있는거에 비해 판타지물은 오래 하다보면 세계관이 너무 얕아요. 오크, 고블린, 엘프, 드래곤 등 몇 개 하다보면 다 거기서 거기인 것처럼 느껴지는 시기가 오더라구요. 톨킨(반지의제왕 저자)기반으로 세계관을 파다보면 확실히 인류역사에 비해 이야기가 한계가 있는 느낌이 있어요.”
“워해머는 좀 얘기가 달라요. 스토리가 계속 나오고 있고 작가층도 두텁죠. 그만큼 신제품도 엄청 쏟아져 나오고 있구요. 오죽하면 결제하는 속도보다 신제품 나오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유머도 합니다.”
스토리를 품은 히스토릭 피규어
“아이템마다 스토리가 있어요. 나폴레옹, 카이사르, 한니발, 알렉산더 등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만한 자국의 영웅들을 제작하는 해외 작가들을 보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영웅을 주제로 한국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바로 떠올린 인물이 이순신 장군이었죠. ‘이순신 장군’이라고 하면 보통 광화문에 설치된 동상을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광화문 이순신의 갑옷은 조선의 장수들이 입던 전통적인 ‘두정갑’이 아닌 중국식 갑옷의 형태라고 하더라구요. 이순신 장군 흉상 작품 제작에 사용된 ‘두정갑’은 전투용이 아닌 ‘의장용 두정갑’으로서 그 화려함이 아주 인상적이죠. 이순신 장군이 실제 착용한 갑옷은 현재 남아 있지 않고 고종 황제의 것으로 추정되는 보존상태가 좋은 갑옷이 일본에 전시됐던 사례가 있어 참고해서 제작했습니다.”
“호랑이 사냥꾼도 한국에서 피규어제작하는 사람들이면 한번 씩 생각해본 아이템이었어요. 호랑이 사냥꾼에 대한 기록과 사진이 있는데 스토리가 기가 막히거든요.”
“유명한 러시아 호랑이 전문 사냥꾼이 한국에 와서 호랑이 사냥을 다니면서 쓴 기록인데 거기 보면 한국 호랑이 사냥꾼은 3인 1조로 다니는데 총을 1인에 한발씩 밖에 못 쏜다는 거예요. 총이 구식이라... 호랑이가 2~3미터 거리까지 올때까지 기다렸다가 한발을 정수리에 쏘고 빗맞으면 줄행랑칩니다. 그러면 다음 사람이 시선을 끌어서 호랑이를 유인하고 총을 쏘는 식으로 사냥을 하는데 마지막 사람까지 못 맞추면 다 죽은 목숨이라는 겁니다. 그만큼 대범한 사냥꾼들인데 쓰는 총을 보고 기겁을 했다는 기록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베테랑 사냥꾼의 멋진 모습이 아니라 곰방대 물고 허름해서 꾸질꾸질한 모습이죠.”
“ 2차대전에 관한 피규어를 기획할 때도 의도치 않게 접하게 되고 파고 들어가다보니 여러 이야기가 나왔어요. 이렇게 기록들이나 책을 바탕으로 재밌는 아이템들이 많아요. 그게 히스토릭물의 매력이거든요. 저희 아이템중에 로마군이 독수리 장식을 매고 있는 ‘The Aquila’ 라는 아이템이 있는데 영화 ‘더 이글’을 보고 모티브를 얻어서 만들었어요. 군단상징이 독수리 휘장인데 아버지가 갈리아인과 전투를 하면서 패배해서 그 휘장을 빼았긴 거예요. 그걸 찾으러 가는거죠. 그 독수리 휘장을 찾아오는 스토리를 담은 영환데 역사적 배경이나 그 휘장에 대한 지식을 알고 있는 사람이면 ‘아! 이거구나!’ 한눈에 아는거죠.”
“반면 ‘Broken Spirit’을 보면 독수리 지팡이 들고 있거든요. 뺏은 거죠. 그 당시 로마군은 상당히 갖춰진 고급 장구류와 무장을 한 강력한 군대라 갑옷이 규격화 되어있지만 캘트족은 뺏고 주워서 무장을 하죠. ‘Broken Spirit’의 바바리안은 승전해서 로마군 물품을 노획한 겁니다.”
“‘니네는 갑옷입고 싸우지만 우리는 그런거 필요없어. 이 추운 지방에서도 맨살로! 갑옷없어도 강해!’ 페인트 바르고 맨살로 싸우는 광기를 표현했습니다.“
“피규어 박람회 같은데를 가서 많은 유럽인들을 만나다 보면 ‘고증’에 관한 이런 얘기들을 많이 들어요. ‘Gaius Julius Caesar’는 붉은 망토를 어깨에 걸치고 있거든요. 붉은 망토는 로마 시대에는 5년치의 식량값이 필요할 정도의 고급 천이라 하더라구요. 붉은색 천으로 신분과 부를 과시하는 거죠. 요즘으로 치면 람보르기니를 몰고다니는거죠.”
“한번은 제가 페인팅한 시저를 보고 메세지가 왔어요. ‘너희가 칠한 붉은색 로마 천은 그 색이 아니야. 내가 전통방식으로 염색한 로마시대 붉은 천이 있는데 그걸 샘플로 보내줄테니 앞으로는 그렇게 칠해봐.’ 알고보니 저렇게 새빨간 색은 아니고 약간 검보라 색 같은 색이더라구요.“
“베트남전 아이템에서 참전용사에게서 온 메세지도 기억납니다. 미국분이신데 ‘우리가 전투를 할때는 정글에 풀이 거칠고 가시가 많고 해가 너무 뜨거워서 민소매로 싸울수 없었어. 이건 말이 안돼. 정글에서 이렇게 다니면 죽어’ 물론 설정이긴 하지만 실제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말이 안되는거죠. ‘그 정글에서 민소매로 다닌다고? 미쳤니?’“
“2차 대전물을 보고 우리 참전에 대해 기억해 줘서 고맙다는 메세지도 있었어요. 흉상이라는게 서양사회에서는 기억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작년에 네덜란드 SMC에 갔을 때 중년의 영국인이 오셔서 제 작품들을 유심히 보시더라구요. ‘Devil of Ramadi - Navy SEAL Sniper’라는 작품이었는데 아메리칸 스나이퍼로 알려진 ‘크리스 카일’의 흉상이었거든요. 본인은 영국인인데 크리스 카일과 함께 훈련을 받았었다고 그를 생생히 기억한다고 만들어줘서 고맙다며 킷을 구매하시더라구요. 자신이 만들순 없지만 ‘카일’이 내 친구기 때문에 구매한다고 하시는데 소름이 돋더라구요.“
“또 어떤 분은 손을 떨며 다니실 정도로 연로한 분이셨는데 ‘오~ 내 친구 패튼이잖아~’ 한참을 보시다 구매를 하시는데 뭔가 깊은 감동이 오더라구요. 유럽인들 피규어 문화를 굉장히 높게 평가를 합니다. 행사장에 오면 어깨가 쫙 펴져있어요. 조형가, 페인터들의 자부심이 엄청나요. 저런 스토리들이 그들의 자부심을 올려주는 거겠죠.“
유럽시장에 한국의 피규어를 알리다
“네덜란드 SMC 같은 경우 국내 하비페어의 3배정도 되는 규모거든요. 엄청나죠. 제가 처음 갔을 때 동양인이 없어서 그런지 처음에는 관심도 없더라구요. 그러다 한두사람씩 물어보는데 질문이 이래요. ‘너 뭐 만들어? 무슨작업해? 출품했어?’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작업 그리고 작업의 퀄리티예요. 그러다 작품을 보더니 본적 있다고 하더라구요. 무관심속에 처음 관심을 받으니 너무 좋더라구요. 그 곳에서 작업을 안하는 사람은 할 말이 없어요.”
“30시간씩 운전해서 참가하는 사람들도 있고 해마다 철새처럼 모여서 북적북적하고 헤어지고 또 모이고... 한번 그 문화의 맛을 보면 그 다음해에 계속 같은 고민을 합니다. 갈까? 내가 왜가지? 갈까? 중독성이 있고 굉장히 멋있어요.”
“아시아쪽 대회는 상을 받고 안받고가 너무 중요한 반면 유럽쪽은 문화가 달라요. ‘내가 무슨 상을 어디서 받았어’ 이런얘기하는 사람이 없어요. ‘나는 17년째 참여했어.’ ‘20년도에 심사관으로 참여했어.’ ‘나는 17살때부터 20년동안 매년 참가했어.’ 이런 식이예요. 행사의 기여도가 있고 내가 이 구성원의 한사람이고 내가 이 문화를 끌어가는 사람중의 하나라는게 가장 중요시 되죠. 심사를 하는 사람들도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 계속 출품을 합니다. 내가 지금 너희와 겨뤄도 여전히 건재할 만큼 실력이 있다는걸 증명하는 거죠. 평가받고 떨어지기도 하고 그래도 신경 안써요.”
“그 명예에 아무도 태클을 못 걸더라구요. 좀 삐딱한 시선으로 ‘너희가 심사하면서 너희가 출품하면 상 나워먹기 아냐?’라고 말할수 있기도 한데 실제 가보면 그럴 수가 없어요. 작품을 딱 두개를 놓고 보면 그레이드가 딱 다른게 보이거든요. 빛이 나요. 2000개의 작품중에 골드(수상)가 보여요 . 다이아몬드가 빛이 나듯이 반짝 반짝하거든요. 멀리서 봐도 보여요. 가서 보면 영락없이 골드 마크가 딱 붙어있죠. 그런 맛을 보면 안 가고는 못배기죠. 한국 작업 작가들이 수준이 있거든요. 벌써 사람들이 모여들어요. 기분이 좋죠. ‘이들에게 보여줄게 있구나’“
아시아 권역의 하비쇼
“MALCOM은 싱가폴, 대만, 중국이 메인이죠. 필리핀이나 베트남에서는 모형 취미가 골프보다 비싼 상위권 취미예요. 돈이 더 들거든요. 페어에 오는 사람들 보면 모형하는 사람들이니 우리같은 비슷한 수준이라 생각하는데 가서 보면 상류층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냥 유저들도 상류층과 어울리기 위해 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해요. 젊은 층에 모형문화가 좀 힙한 문화인거예요. 새롭고 잘사는 나라들에서 누리던 취미고 닮고 싶고 흉내내고 싶고 고급문화라는 인식이 있어요. 그만큼 성장도 빠르고 활동도 굉장히 활발해요.유럽, 한국 , 일본은 점점 작은 미니어처 작업을 하는데 오히려 동남아쪽은 더 크고 웅장한 작업들을 선호합니다. 가면 완전 국가대항전이예요. 서로 상받으려는 경쟁이 치열하죠.”
“각 나라별로 색이 정말 달라요. 시장을 즐기는 것도 다르고요. 일본 시즈오카 하비쇼는 40년이 다되어가는 오래된 행사인데 놀랐던게 타미야 사장이 와서 동호회 전시부스를 다니면서 인사하고 같이 어울리고 하더라구요. 참가자들을 위한 파티도 열어주고 지역맥주 스폰서 들어오고 30년씩 행사 참여하는 동호회에 감사패도 수여하고...”
“일본은 세계적인 모형회사들이 많잖아요. 바라보는 시장의 방향이 다르더라구요.한국은 실력, 고퀄리티를 지양하면서 디테일업 아이템을 판매하는 소형 회사들이 많다고 하면 일본은 인젝션이나 대량생산이 가능한 양산회사가 많아서 그런지 ‘모델링이 어려워지면 안된다.’ ‘쉽게 모두가 즐겁게! 경쟁하지 말고!’ 이런 분위기예요. 또 신규 유입에 엄청 신경을 씁니다. 시즈오카 행사때도 학생의 날이라는게 생겨서 지역 학생들 초청해서 만들어보는 경험을 시켜주고 모델러들이 학생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관심을 갖게 하더라구요.”
피규어시장의 나아갈 길
“국내에도 좋은 캐릭터들이 정말 많잖아요. 게임이나 웹툰이나.. 그런데 피규어나 모형쪽 업군으로 활성화가 못되는 이유가 너무 패쇄적이기 때문입니다. 캐릭터는 우리의 저작권이라는 인식이 너무 강해요. 당연하긴한데 라이센스 금액이 너무 터무니 없어요. 그러니 아무도 시도하려하지 않죠.”
“일본은 상대적으로 체계가 잘 되어있는데 라이센스를 한번씩 개방하면서 제작자들에게 기회를 주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니 작업자들이 생겨나고 업체나 유저들도 2차 저작물로 활성화되면서 쭉 발전하더라구요. 국내도 게임업체 같은데서 일시적으로 저작권을 풀어서 제작자들이 달려들어 만들어보게 하고 시장의 활성화를 보면서 키워가면 훨씬 활발하고 재밌는 시장이 될것 같은데 그게 또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가봐요. 미래를 보고 가야되는데 누가 그런 시각을 갖고 시작하느냐가 문제죠.“
“그래도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게 항상 준비는 되어있어요. 한국에서도 피규어의 인식이 높아질 수있게 매 작품 최선을 다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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