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은 필수의료 혁신전략···의대정원 증원 보다 더 중요한 건 [박홍용의 토킹보건]
의사 수 증가와 별도로 초고령사회 진입, 의료비 증가 불보듯
올해만 세수펑크 59조·건보료도 8% 상한에 묶여 옴짝달싹 못해
건보공단, "반드시 특사경 법안 통과해야" 외치지만 의료계 반대 심각
지속가능한 의료시스템 위해 무엇이 최선인지 결론 내야
정부는 19일 23페이지 짜리 ‘필수의료 혁신전략’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충북 청주 충북대학교에서 국립대병원장들과 직접 '의료혁신 전략회의'를 주재했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직접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형태로 이날 대책 발표는 진행됐습니다.
대책 내용은 이미 알려진 그대로 였습니다. 무너진 지역·필수의료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 국립대병원에 예산·인력증원·인건비 규제완화 등 패키지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한마디로 국립대병원에 훌륭한 의사들이 많이 머물 수 있게 지원을 아끼지 않고 이 의사들에 대한 신뢰도를 바탕으로 환자들이 수도권행 KTX에 몸을 싣지 않게 만들겠다는 내용입니다. KTX 출범으로 인해 전국이 일일생활권이 되면서 소위 ‘수도권 빅5 병원(서울아산병원·연세세브란스병원·서울대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성모병원)’으로 불리는 상급 종합병원들에 대한 환자 쏠림현상이 심각하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이날 대책에 포함된 의대정원 확대도 지방에 머물 의사들을 육성해 필수의료 붕괴속도를 최대한 늦추겠다는 정부의 고민 끝에 나온 방안으로 풀이됩니다.
사실 의대정원 확대는 일주일간 온 언론을 도배했던 내용입니다. 국민들도 적게는 300명에서 500명, 1000명 이상, 더 나아가 3000명까지 정부가 의대정원을 확대할 수 있다는 다양한 언론보도를 보셨을 것입니다. 19일 정부가 2025년도 입시에 입학정원 확대를 반영하겠다며 의료계와 소통을 통해 정원을 정하는 것으로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보였지만 말입니다.
저는 이날 대책에서 의대정원도 정원이지만 몇 가지 눈에 띄는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그 중 3가지를 여러분께 소개할까 합니다.
◇국립대병원을 ‘규제프리존’으로=우선 여러분들은 국립대병원이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기타 공공기관’으로 묶여 인력과 예산 조정과 관련해 기획재정부로부터 관리·감독을 받는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국립대병원의 인재 수급 미스매치는 여기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국립대병원은 교수들은 사실상 공무원들로 예산당국의 빡빡한 인건비 규제를 받습니다. 평균 인건비 인상률은 1%에서 2%에 그칩니다 물가가 지금과 같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올해 인건비 인상률은 1.7%에 불과합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민간병원과 사립대병원과의 임금 갭이 더 벌어지며 우수인력을 유치하기도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기존 인력들이 빠져나가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국립대병원 퇴사율은 입이 떡 벌어지는 60%대에 육박합니다. 2020년 국립대병원 근무자 645명 중 418명이 퇴사해 퇴사비율이 64.8%를 기록했고, 2021년 62.5%, 2022년 58.7%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정원증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립대병원은 매년 인력증원을 정부에 요청합니다. 이를 관할하는 부처는 기재부와 행정안전부입니다. 하지면 당국의 승인 비율은 턱없이 낮은 수준입니다. 지난해 전국 14개 국립대병원에서 4799명에 대해 증원요청을 했지만 실제 배정된 인원은 1735명으로 승인율은 36.9%에 그쳤습니다. 그렇다고 기재부와 행안부 등의 부처를 악의 축으로 생각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우선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교수 정원을 대폭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또 국립대병원의 탄력적 인력확충을 어렵게 하는 총인건비와 정원 관리 등 공공기관 규제 혁신하겠다고 했습니다. 기재부 등 관계부처와의 협의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등에서 예외규정을 신설·적용해 민간 못지 않은 인건비를 제공하고 정원 배정률도 늘려나가겠다는 복안입니다. 의대정원을 늘리기 위해 역량이 훌륭한 교수들이 확충돼야 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얘기겠죠.
◇기부금으로 시설투자 가능토록 창구 다양화=환자가 수도권 상급병원으로만 몰리는 탓에 국립대병원들은 만성적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2021년 기준 전국의 17개 국립대병원은 총 6조6858억원의 의료수익을 올렸지만 7조302억원의 비용이 발생해 무려 3443억원 적자를 봤습니다. 곳간이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죠. 이번 대책에서 정부는 국립대병원의 노후화된 의료·연구장비 등 인프라 투자를 강화하겠다며 기부금품 모집을 허용하는 등 창구 다양화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현행은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5조에 따라 국립대병원은 공공기으로서 기부금품 모집이 금지돼 있습니다. 사립대병원은 가능하죠. 법률 변경을 통해 기부를 받고 이를 인프라 투자에 활용하겠다는 것입니다. 정부의 국고지원 비율도 상향하기로 했습니다. 정부는 중증·응급 진료시설·병상, 공공전문진료센터 등 노후 인프라를 첨단화하기 위해 진료시설·장비에 투입되는 현행 25%의 국고비율을 상향시켜 나가기로 했습니다. 현재 교육·연구시설에는 국고지원이 75%까지 가능한데 진료시설 관련 중앙정부 예산도 이에 못지 않게 대폭 늘리겠다는 계획이죠.
◇필수의료를 위한 별도 재원마련 추진=마지막으로 눈에 띄는 정책은 지역·필수 의료 인력 확충 지원을 위해 별도 지원체계를 검토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일본의 경우 2014년 1조6000억원 규모의 ‘지역의료개호 종합 확보기금’을 신설해 인력, 의료서비스 확충 등에 활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재원의 3분의 2는 중앙정부에서 지원하는 개념이라고 합니다.
◇의대 증원보다 더 중요한 건 ‘지속 가능한 의료 체계’=저는 이번 대책을 취재하고 기사를 쓰면서 예산당국과의 협조가 정말 많이 필요하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저성장, 축소지향형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올해 세수결손만 59조원에 달합니다. 하지만 이번 대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예산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내는 세금을 재원으로 활용하는 국가재정뿐 아니라 건강보험료를 활용하는 건보재정, 2가지 재원 모두 말이죠.
이번 대책을 반대하는 의료계에서 의대정원 반대의 논리로 가장 많이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의료비 폭증입니다. 의료비 폭증에 대비하기 위해선 곳간, 즉 건보 재정이 튼튼해야 합니다. 국민들은 의대 정원이 필요하다고 공감만 할 것이 아니라 향후 우리에게 돌아올 청구서 즉 세금 또는 건보료 인상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초고령사회 진입으로 향후 의료 수요 폭증은 불보듯 뻔하기 때문입니다. 의사들이 늘어나면서 발생하는 일부 의료비 증가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죠. 하지만 현재 건보료 상승률은 소득의 8% 상한선에 걸려 있는 상태입니다. 이 규정은 1977년 건강보험 시행 당시 만든 것입니다. 현재와는 인구구조와 경제구조 등 모든 상황이 다른 게 현실이죠.
건보 누수를 막는 것도 필요합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11년간 불법 사무장병원으로 새어나가는 건보재정이 3조원에 달한다며 특별사법경찰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의료계의 강력한 반대로 관련 법안은 국회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예산수요 폭증, 의료비 폭증에 대한 비상신호가 울리고 있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인 것이죠.
결론은 이번 대책이 말의 성찬으로 끝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정권을 떠나서 그동안 대통령이나 장관이 대대적으로 대책 발표를 하고 나중에 흐지부지 되는 정책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입니다. 이번 대책을 실현하기 위해 국회 법안 통과가 필요한 분야도 있는데 여야가 1년 반이란 시간 동안 강대강 대치만 해온데다 국회가 사실상 170여일 앞으로 다가온 내년 총선에 올인하고 있어 넘어야 할 장애물이 한 두 개가 아닌 상황입니다. 의대증원에 대해 반발하고 있는 의료계의 협조도 필요합니다. 대책보다 중요한 것은 그 대책을 실제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생활로 바꾸는 것입니다. 이번 대책이 현실에서 뿌리를 내릴지 모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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